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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가지현 Oct 19. 2024

고마워요, 하루끼

무라카미 하루끼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당연히 쓰는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국민학교 3학년 때인가. 자고 있는데, 마을 삼촌들이 들어와 나를 둘러업었습니다. "형수, 텔레비전 가지고 나갈까?" 잠결이지만 긴박한 상황은 느껴졌습니다. "아니, 지현이 책을 가지고 나가." 선택이었습니다. 나와 책. 마련한 지 얼마 안 되는, 무려 칼라 텔레비전을 버리고. 책 몇 권과 사람만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  

높은 언덕 위에 할머니의 함바집이 있었습니다. 그리로 갔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급하게 선별했을, 각자에게 가장 소중한 짐이 할머니집  여기저기에 쌓여 있었습니다. 밖을 내려다보니 은행 앞 큰 도로엔  보트가 다닙니다. 온 마을이 물에 잠겼습니다. ‘남한'에  큰 비가 내려 '북한'에서 쌀이며 천이며 보내줬던 '그 해'였어요. 책은 이렇게 소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읽는 나-는 이렇게 선택되었습니다.

책 외판원이 집집마다 다니며 전집을 팔던 시절이었습니다. 다섯 식구가 옴닥옴닥 모여 살던 단칸방에 내 책이 절반이었죠. 책상 아래, 그렇게 책상 아래가 좋았어요. 웅크리고 들어가 내 책을 다 읽고 나면 새 책을 들였다는 양장점 현이 오빠네로, 앞 집 민서네로, 주인집 회인이네로 다니며 책을 읽었습니다. 동화책, 위인전, 과학책, 역사책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우리 집 애들은 도통 안 읽는데 지현이라도 읽어 다행이네-라는 푸념을 에너지 삼아, 마을 모든 집을 도서관 삼아 자랐습니다.

읽기는 자연스럽게  쓰기로 이어졌습니다. 나의 경우는 그랬어요. 크고 작은 백일장에  참가했고, 종종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작문 시간이었어요. 주어진 문장 몇 개를  활용해 소설을 완성하는 수업이었습니다. 마을 외양간에 화재가 났다는 문장이었어요. 대부분 학생들이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한다는 류의 글을 썼는데, 나는 외양간의 소에 꽂혔죠. 갇혀 있기 때문에 불이 나도 피하지 못하고 죽어갔을 소의 운명에요. 꽤 진지하게 소의 입장에서 글을 썼어요. 어설프지만 인간 중심적인 축산업에 대한 비판과 모든 생명이 동등하다는 내용을 썼어요. 선생님이 깜짝 놀라셨죠. 일단 지나치게 성의 있는 분량에요.  원고지 2장 정도, 다소 형식적인 과제였는데 20장 넘게 써서 제출했거든요. 졸업 전에 제게 꼭 소설 한 편을 청탁해 교지에 실겠다는 말씀으로 칭찬을 대신하셨습니다.


이후 원고 청탁은 없었던 걸로 봐서 재능 쪽이라기보다 성실함을 칭찬하신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난  3년 동안 이런저런 글을 구상하느라 설레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곤 잊었네요. 스무 살의 난  바빴어요. 정말 바빴어요. '해야만'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 말고 다른 건 상상해 보지 않았던 나는 잊혔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야구를 보다 "하늘에서 뭔가가 하늘하늘 천천히 내려왔고 그것을 두 손으로 멋지게 받아낸 듯한 기분", "일종의 계시 같은 것"을 받아 첫 소설을  썼다는데 나는 줄곧 쥐고 있던 계시를 시간에 가둔 모양입니다. 물론 애초에 그런 게 없었을 수도 있고요.

다시 쓰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 사이 난 선배들에게 얹혀 논술 책을 한 권 출판했어요.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역사책도 한 권 썼고(출판사 사정으로 출판이 되진 못했어요). 회사 앱에 독서 교육 관련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마을 글쓰기 소모임에도 참가하고요. 그 과정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에게 쓰는 재능이 없다는 걸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나에게 '써야 할것 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알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쓰고 싶은 나를 확인했습니다.  돌아보니, 난 세상에서 고립될 때마다 쓰기로 나를 세웠고, 소통을 시도했고, 다른 삶을 상상했더라고요.  나는 아무래도 쓰지 않는 쪽보다 ‘쓰는 나’가 좋습니다. 가만 앉아 타닥타닥 한 줄 문장을 쓰고 그 문장으로 문단을 엮어 마침내 한 장의 글을 완성하는 시간을 견디는 내가 좋습니다. 실을 꼬고 천을 짜 옷을 지은 양 내 글을 어루만지는 순간이 참말로 좋습니다.

그래서겠죠.  "설령 당신이 가진 것이 '경량급' 소재고 그 양이 한정적이라고 해도 조합 방식의 매직만 깨친다면 그야말로 얼마든지 스토리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이 위로와 응원이 됩니다. "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한 세계를 "알아보는 눈"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 졌어요. 나를 관통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이 쌓여 있는 "창고"를 만들고 싶어 졌고요.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은 균형 있게 양립하"라는 조언과 "어떤 일을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아무래도 세계가 부글부글 끓어서 바짝 졸아"든다는 경계를 꼭 기억하면서 말이죠.

어릴 적  나의 창고를 만들던 책상 아래, 그곳으로 돌아갑니다. 어쩌면 있을 약간의 재능과 성실함으로 매직을 깨치러요. 그리고 이 글은 뭐랄까. 낯간지럽지만 나만의 출사표인 셈입니다.

고마워요,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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