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가지현 Oct 21. 2024

미니 슈퍼 마켓을 아시나요?

<흑백 요리사>, <동전 하나로 행복했던 날들>,  <불편한 편의점>


흑백 요리사를 흥미롭게 시청했습니다. 최종회까지 야무지게 챙겨 봤어요.  모든 미션이 재미있었지만, 그 중 패자부활전-편의점 편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나폴리 맛피아, 아니 권성준 셰프는 시종일관 당당함으로 배틀 식 인터뷰를 했는데, 딱 요즘 청년, 넷플릭스 인재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음식맛을 보지 못해 그런가 초반엔 난 그의 당당한 ‘말'이 좀 헛헛했어요.


편의점 미션 때도 편의점을 잘 안다는 자신감을 드러내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재료 선택부터요. 많은 요리사가 라면을 선택했는데, 그는 연세우유생크림빵과 맛밤을 담더라고요. 와우. 한때 연세우유생크림빵은 품절대란으로 구하기 힘들었잖아요. 유명 빵집에 버금가는 생크림이라고 소문이 돌아서요. 맛밤이야 말해 뭐해요. 밤 100퍼센트!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고급진 재료이지 싶어요.


드디어 완성된 디저트, 밤 티라미슈. 편의점 재료로  밤 티라미슈라. 감탄을 했고만요. 냉장고 앞에 철퍼덕  앉아 초코바를 먹던 그의 모습에 내가 괜히 뿌듯했어요.


하지만 편의점 미션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나폴리 맛피아때문만은 아닙니다. 조은주 셰프. 내게 편의점 미션의 한 축은 그녀였어요. 난 그녀가 있었기에 편의점 미션 서사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편의점을 뛰어 다니며 발사믹 식초를 찾습니다. 우왕좌왕. 웃음이 터졌어요. ‘우리 세대’라는 삘이 강력하게 왔거든요. 아니나 달라 편의점에 가지 않는다는 인터뷰. 직전 미션에서 좋게 말하면 부드러운, 나쁘게 말하자면 우유부단한 리더십때문에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는데 순간 다 풀어졌어요.


반갑다, 친구야~


‘우리 세대’에게 편의점은 낯선 가게에요. 예전엔 요즘 편의점 자리에 구멍가게가 있었어요. 어느 동네에 가든 ‘미니 슈퍼 마켓’이라는 모순적 간판을 종종 볼 수 있었지요. 구멍 가게 사장님은 옆 집 할머니거나 앞 집 아저씨거나 했어요. 직접적인 왕래는 없더라도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였고요. 반면 편의점은 번화가나 동네 큰 길가에 가야 있었고, 비쌌죠. 편의점 직원은 NPC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랬어요.


‘제가 사실은 편의점에 가지 않아요.'라는 조은주 셰프의 말이 훨훨 날아 구멍가게의 추억으로, 다시 날아 책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에 닿습니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은 사라져 가는 구멍가게의 이야기와 그림을 남긴 책이에요. 작가 이미경은 20년 동안 전국의 구멍가게를 찾아 돌아다니며 그렸습니다. 이 책은 작업 20년을 기념하여 그 동안 그린 수백개의 구멍가게 작품 중 80여 점을 엄선해 엮었어요.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펜화와 어울어진 책.


현재이면서 과거인 시간을 경험하게 해주는 묘한 책이었습니다. 미니슈퍼마켓같은? 그래요. 우리 세대는 편의점이 아닌 구멍가게가 있는 골목에서 자랐어요.

성인이 된 후에도 우다다다 생긴 편의점이 낯설었어요. 아주 급할 때 말고는 잘 가지 않다가 발길을 튼 건 수입맥주 할인때문이었어요.


그리고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 큰 역할을 했죠. 아, 편의점에 사람이 있구나. 20대 취준생 알바 이야기, 50대 생계형 알바 이야기 , 참참참(참깨라면, 참치김밥, 참이슬) 세트, 옥수수차.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나무옆의자, 2021


덕분에 NPC같았던 편의점 직원에게 마음담은 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도 나폴리 맛피아 세대 청년들처럼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요. 그래도 집 앞 편의점 사장님이 얼굴을 알아보실 정도는 가요. 짧은 대화도 나누는데 우리집 아이들이 편의점을 구멍가게처럼 드나들고 있다는 것도 사장님 덕분에 알았어요. 교통카드 충전을 자주 하는 느낌이었는데 이유가 있었네요.

조은주 셰프에게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과 <불편한 편의점>을 권하고 싶어요. 구멍가게와 편의점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경연으로 고단했던 마음을 힐링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편의점 친밀도 높이기는 덤!

작가의 이전글 경계에 서있는 당신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