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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눈박이엄마 Sep 19. 2020

RBG 타계, 미국의 인권시계는 거꾸로 돌 것인가


RBG.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여성/인권운동의 아이콘이자 미국 대법원에서 가장 진보적인 인물이 오늘 타계했다.


긴즈버그의 타계가 너무나 큰 의미를 갖는 이유?


긴즈버그가 오랫동안 힘들게 쌓은 여성/인권운동의 시계바늘을 트럼프 행정부가 돌려 놓으려는 아주 긴박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가 올린 영상에서 캡처한 사진으로 그의 대단한 삶을 요약해 보자면...


1. 긴즈버그를 세상에 알린 판결 중 하나가, 긴즈버그가 대법관이 되기 전 ACLU(미국시민자유연합) 소속 변호사였을 때 "엄마가 죽은 아이를 혼자 키우는 아빠가 사회보장수당을 못 받아서 제기한 소송"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이다. 당시 사회보장수당은 아빠 없이 아이를 키우는 여성에게만 주어졌다. 즉 아이 키우는 게 여성의 몫이라는 편견에 도전한 것이다.


긴즈버그는 엄마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남성도 보육수당을 받을 수 있는 판결을 이끌었다


2. 대법관이 됐을 때 긴즈버그는 여성이 버지니아군사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게 하는 주 판결에 반대 의견을 냈다. 이 사건으로 그는 Notorious RBG (당시 유명한 래퍼인 Notorious BIG를 패러디)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RBG 티셔츠, 랩음악, 범퍼스티커가 등장하는 등 대중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내며 페미니즘의 아이콘이 됐다.



3. 긴즈버그는 클린턴이 임명하고 대법원에서 진보적 판결을 주로 했지만, 다른 대법관들과 매우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사실 처음 긴즈버그가 대법관으로 임명됐을 때 여성운동계는 긴즈버그가 임신중절 권리에 대해 '너무 빠르게 적용되어서는 안된다'고 과거에 발언한 내용을 들어 충분히 '진보적이지 않다'고 우려를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긴즈버그는 가장 보수적인 판사(스칼리아)와도 함께 협업을 했다.


보수 성향 스칼리아 대법관



이것이 긴즈버그가 수십년 동안 자신의 진보 아젠다를 대법원이란 플랫폼을 통해 조금씩 밀어붙일 수 있었던 자산이었다. 심지어는 대단한 오페라 팬인 스칼리아와 긴즈버그의 우정에서 영감을 얻은 오페라가 나왔을 정도.


스칼리아와 긴즈버그를 모델로 한 오페라


4. 긴즈버그는 고교시절 치어리딩을 했을 정도로 전형적인 ‘여학생’이었다. 그녀를 여성운동, 인권운동으로 이끈 것은 어머니였다. 공부를 잘했지만 남자 형제를 위해 학업을 포기했고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꿈을 이루겠다고 결심한 것.


긴즈버그는 코넬대에서 남편을 만났는데 남편은 긴즈버그의 이런 꿈에 좋은 동반자가 됐다. 남편의 요리 실력이 더 좋아서 남편이 요리를 다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훗날 하버드 법학대학원 시절 긴즈버그는 암투병을 하는 남편을 위하여 학교 수업을 다 노트해 와서 브리핑을 해주기도 했다. 남편은 훗날 세금전문 변호사가 됐고 긴즈버그가 대법관으로 올라가는 데 큰 외조를 했다. 이렇게 남편과의 평등한 관계는, 긴즈버그가 사회적으로도 그런 플랫폼을 법적으로도 만들려는 의지를 더욱 북돋웠다.


5. 진보와 보수 양쪽이 다 존경하는 진보적 대법관 긴즈버그는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자신이 사망하면 즉각 보수 성향 대법관을 임명할 것이라고 생각해 긴즈버그는 자신이 죽는다 해도 대선 이후 대법관을 임명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긴즈버그는 민주 공화 양당이 모두 존경하는 시대의 아이콘이다


현재 미국에서 트럼프에 열광하는 소위 '극우보수'세력, 그 중에서도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오랜 시간 동안 미국 보수정치에 자신들의 의견을 대변할 정치인을 꽂아 넣는 데 공을 들였다. (이 내용은 다른 브런치 글에 정리해 놨다 https://brunch.co.kr/@jeeminstory/11)


보수 세력의 최대 목표 중 하나는 1960-70년대부터 본격화된 인권/민권/여성운동의 주요 판결 -- 예를 들어 로vs웨이드(낙태 합법화) 판결 --을 뒤집거나 그런 판결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미국에서 9명의 대법관은 종신직이고, 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인준한다. 즉 트럼프가 대통령이고 공화당이 상원을 차지하고 있을 때 최대한 많은 보수성향 판사를 임명하려는 게 이들 보수 세력의 목표다.


트럼프는 막말하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이미 2명의 보수성향 판사를 임명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그래서 이들 기독교인 지지세력이 '트럼프는 가장 인권적인 대통령'이라고 하는 것. (낙태에 반대하므로)


긴즈버그가 타계함으로써 트럼프는 당연히 보수성향 대법관을 임명하여 최근 하향세에 접어든 복음주의기독교인 사이에서의 자신의 지지율을 높일 절호의 찬스로 생각할 것이다. 트럼프를 최초로 지지했던 엄청 유명한 복음주의 목사(한국으로 치자면 아버지에게 대형 교회를 세습받은 목사 정도라고만 해두겠다.)인 제리 폴웰 주니어가 성 스캔들로 신학대학 총장에서 물러나는 등 복음주의 기독교의 도덕성에 대한 타격도 있었고, 이들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중 유색인종들의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다는 뉴스도 있었다.


현재 대법관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는 테드 크루즈(지난번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온 텍사스주 상원의원. 극우 보수 성향을 띤다) 같은 꼴통 보수가 정말 대법관이 된다면..? 긴즈버그가 수십년간 여성 권익을 비롯해 소수자 인권을 위해 한땀한땀 노력해 앞으로 돌렸던 미국의 인권시계는 아주 크게 과거로 돌아갈 것이다.


아래 링크는 뉴욕타임즈가 그의 타계에 대비해 미리 만들어 놓은 10분짜리 영상. 긴즈버그의 생애, 영향력을 매우 잘 정리했다(국제부 기자님들 이거보고 요약하시면 됩니다)


https://youtu.be/VRlEFT-44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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