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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눈박이엄마 Apr 26. 2021

무명의 삶을 사는 모든 이에게 바치는 연가

<미나리> 리 아이작 정 감독 NPR 인터뷰

오스카상 시상식이 시작됐다. <미나리>가 몇 개 부문을 가져갈지 두근두근하다. 한국인의 관심은 온통 윤여정의 수상 여부에 쏠려 있다. 한국에서는 "윤여정의 연기가 우리 기준에서는 평범했다"라던지 "미나리에서 그려진 가부장적 요소"등이 자잘하게 얘기되고 있지만, 미국에서 이 작품이 주목받은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감독의 인터뷰에서 힌트를 찾아 봤다.



미나리가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사점에 방송된  리 아이작 정 (Lee Issac Chung) 감독의

<미나리>인터뷰. 를 발췌해 소개한다.


인터뷰를 한 WNYC(뉴욕퍼블릭라디오)의 아룬 베노고팔(Arun Venogopal)이 '미나리' 발음을 완벽하게 해서 감독의 칭찬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Fresh Air 메인 진행자인 테리 그로스만큼 훌륭한 인터뷰어다) 리 아이작 정 감독은 미나리를 만들면서 '이 단어를 미국인들이 제대로 발음하게끔 그대로 한국어 제목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인터뷰 발췌


“딸에게 자랑스러운 작품을 남기고 싶었다”는 리 아이작 정.


"미나리는 제 딸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영화를 남기고 싶다는 고민을 하다가 구상한 작품이에요. 20세기 초 활동한 미국소설가 윌라 캐서(Willa Cather)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았죠. 윌라 캐서는 뉴욕 상류계에 대한 글을 쓰다가 고향인 네브라스카의 경험을 소설로 써서 호평을 받았어요. 이 이야기에 감명받아 공립도서관에 앉아 제 어린시절 기억을 하나하나 써내려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영화가 탄생했죠."


리 아이작 정 감독에게 미나리 제작 영감을 준 미국 소설가 윌라 캐서


"아버지는 양말공장에서 일하며 가끔 영화관이 많은 종로에 나오셨대요. 당시 상영되는 자이언트, 벤허 등 대작 영화에 나오는 광활한 땅을 보고 미국엔 웬지 넓은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대요. 그렇게 이민을 온 거죠. 부모님은 미국에서 병아리감별을 했어요.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곳에서 장시간 일해야 하죠. 병아리감별은 쉽지 않아요. 나중에는 '그냥 안다'고 하셨죠. 직관(intuition)이 필요한 드문 직업 중 하나에요."


종로는 1960년대부터 영화광들의 로망이 펼쳐진 공간이었다


"부모님은 처음엔 윤여정씨와 작업한다는 걸 알고 환호했어요. 아버지는 윤여정씨 팬이기에 촬영장에 와서 제가 감독으로 일하는 걸 보고 싶어했어요. 촬영장에서 돕고 싶다고 하시기에 거절했어요. 촬영일자가 한달이 채 안되는 빡빡한 일정인데다가 아버지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거든요."


감독의 가족 사진


"이 영화가 우리 가족의 자전적 이야기란 걸 알고 가족 모두 긴장했어요. 2019년 추수감사절, 마지막 편집 끝난 후 가족들이 모두 캘리포니아로 와서 영화를 봤어요. 다들 눈물흘렸죠. 돌아가신 할머니가 제 꿈에만 나온다며 질투하던 어머니가, 영화를 본 후 자신의 꿈에도 나온다며 좋아하셨어요.  누나는 어릴 때 워낙 힘들었기에 기억을 지우고 있었는데, 그 시절의 아름다운 장면을 되살려줘서 고맙다고 했고요."


"할머니와의 추억을 영화에 담았어요. 할머니는 어른을 공경하라던지, 화투를 가르친다던지, 한국에서 가져온 한약을 억지로 먹인다던지... 해서 어린 시절 한국 정서를 전혀 모르던 저와 누나를 당혹스럽게 했죠. 하지만 돌아보면 할머니가 우리 가족에 큰 기쁨을 주셨어요."



"할머니는 한국전쟁에서 20살에 남편을 잃고 딸인 제 어머니를 혼자 키웠어요. 인천 갯벌에서 조개를 캐서 생계를 꾸렸고, 미국에 온 어머니가 병아리감별 일을 나가셔야 했기 때문에 우릴 돌보기 위해 다른 한국전쟁 미망인과 차렸던 작은 가게를 다 처분한 돈을 갖고 미국에 오셨죠. 할머니는 영어를 못하는 채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삶 자체가 '무명'이었죠. 자식들은 자신처럼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는 데 온 힘을 바친... (흐느낌)"


"윤여정의 할머니 캐릭터는, 거칠고 무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떻게든 삶을 살아내고 답을 찾아가죠. 인생이 그렇잖아요. 저는 그런 캐릭터에 끌려요."


미나리를 찾으러 가는 할머니와 손자


"스티븐 연이 연기한 제이콥 캐릭터는 우리 아버지를 그렸다기보다는 제 자신을 그린 거에요. 제이콥은 세상을 보는 시각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그런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죠. 제이콥을 묘사하면서 그 캐릭터를 판단(judge)하는 식으로 그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스티븐 연이 연기한 제이콥


"미나리는 할머니가 키우던 기억을 떠올려 제목으로 삼았어요. 반드시 한국어로 제목을 달아서 미국인들도 제대로 발음하는 법을 알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미나리는 생명력이 있어요(hearty). 특징 자체가 시적(poetic)이에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토양은 기름지게, 주변 물은 깨끗하게 만드는 작물이죠."


"극중 모니카(한예리 분)가 친정엄마가 한국에서 싸온 고춧가루와 멸치를 보고 눈물을 터뜨리는 장면이 나와요. 한국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그 장면에서 한꺼번에 터진 거죠. 한국분들 말고도 이민자 모두, 이민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장면이 와 닿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음식은 강력하게 기억을 소환하죠."


윤여정과 한예리


"미나리를 만들기 전... 르완다 학살을 다룬 '문유랑가보(Munyurangabo)' (로저 이버트가 '걸작'이라고 극찬한)를 만든 이유 중 하나는, 르완다가 남북한과 비슷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후투족과 투치족이 서로 분쟁한 곳이잖아요. 가족이 분열되고 상처받은 곳이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한국 역사와도 맞닿아 있어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서방 시각'이 녹아들어가기보다는 사실 그대로를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사실 그게 쉽지가 않죠. 서구세계에서 펀딩 받기도 어렵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7I5fbUuho-I



인터뷰를 들은 후 느낌...


리 아이작 정 감독은 인터뷰에서 조심조심 자신의 기억을 꺼내놨다. 확신보다는 겸손하게 모든 컨텐츠를 만들 때 접근하는 게 그의 예술가로서의 태도란 생각이 들었다  이민자로서 '낯섦' '스며듦' '겉돎'이라는 경험을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던 힘을 그의 인터뷰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민자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소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기에 많은 노미네이션을 얻지 않았을까. 올 초 아시아 여성을 살해한 총기난사를 비롯해 아시아 이민자에 대한 증오범죄가 늘어나고 있고, 조지 플로이드를 죽인 경찰 데릭 쇼빈 공판에서 유죄판결이 나는 등 미국은 인종갈등, 특히 복잡다단하고 다층적 차별의 후유증을 세게 겪고 아프게 봉합 중이다. 이민자들이 느끼는 미국에 대한 보편적이면서도 소수자적 특별한 정서를 담은 미나리. 이번 오스카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대해 본다.


* 업데이트. #윤여정 배우의 여우조연상 수상을 축하하며!


윤여정 배우 수상소감

https://youtu.be/wrMxfLgb9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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