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넛트리 #brat #khive
바이든 대통령이 용퇴를 결심하고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한지 이틀만에 여론조사에서 약간이나마 해리스가 트럼프를 앞선다는 조사가 나왔다. 이게 무슨 일일까? 해리스가 이틀만에 캠페인 천재만재라도 된 건가??
4년 전을 돌아보자. 2020년 조 바이든이 선거에서 이긴 이유 중 하나는 바이든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1020세대에 어필했기 때문이었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바이든을 지지한 건 그 정점에 있었다.
바이든은 민주당의 넓은 이념적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빅텐트 전략을 통해 대선후보, 대통령이 되었지만 실제 대통령이 되면서 예전에 비해 더 진보적인 정책을 펼쳤다. (특히 환경 정책) 정책적으로 1020세대에 어필하는 방향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든 캠페인이 원래 공화당이 바이든을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냈던 '브랜든'이란 단어를 비틀어 '다크 브랜든'이라는 바이든 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소셜미디어 정책을 세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대선 캠페인으로 접어들자 현실의 바이든이 소셜미디어 밈의 재치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했다. 아무리 선거전략가들이 그럴듯한 밈을 만들어내도, 바이든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지도 않을 뿐더러 등장했을 때 밈과는 정반대의 모습만 보여준다면 진정성 측면에선 마이너스만 될 뿐이다. '다크 브랜든'이란 밈은 이래서 충분히 바이럴되지 못했다.
트럼프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과 X를 통해 선동을 계속하는 가운데, 민주당의 소셜미디어 전략은 이렇게 바이든과 함께 시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7월 21일 전까지는.
지난 일요일, 바이든이 대선캠페인을 중단하고 카말라 해리스를 지지하면서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다.
1. 코코넛 나무 밈
카말라 해리스가 전면에 나서면서 틱톡에는 갑자기 해리스 밈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가장 유명한 밈이 바로 "코코넛 나무"밈이다. 해리스가 2023년 히스패닉 청소년 교육기회에 대한 행사에서 했던 발언이다.
"우리 엄마가 야단치면서 하시던 말인데요. '요즘 젊은 애들은 왜 그런다니. 자기가 코코넛 나무에서 떨어졌는줄 안다'고. **하하하하! ** (잠시 정적) 어떤 사람들이든 존재하려면 맥락이 있기 마련이죠."
히스패닉 청소년들의 학업 성취율 등이 떨어진다면 그냥 그 자체만 볼 것이 아니라 가정환경, 사회적 환경이라는 '맥락'을 같이 봐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 발언은 소위 '짤'이 되어 코코넛 나무 이모티콘과 함께 광범위하게 유통됐다. 해리스 부통령의 다소 과장된 몸짓, 특유의 큰 웃음, 그러나 아무도 따라 웃지 않는 어색함 등등이 얽혀 코믹하게 느껴져서였다.
이렇게 틱톡에서 시시콜콜하게 조롱하던, 웃음소리가 다소 경망스러워 보이는 해리스가 무려 '대통령 후보'가 됐다고? 틱톡 밈이 갑자기 폭발한 이유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2. 인기가수 찰리 XCX의 샤웃아웃
해리스 밈 확산에 불을 지핀게 영국 여성가수 찰리XCX가 자신의 X계정에 올린 한 줄의 글이다.
"Kamala is BRAT" (카말라는 장난꾸러기)
틱톡은 또 한번 난리가 났다. 찰리XCX가 6월에 낸 'BRAT' 앨범은 틱톡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앨범 재킷색인 라임그린을 배경으로, 그의 히트 싱글인<360> 을 배경음악으로 한 비디오가 틱톡에서 대량 양산 중이었는데, 찰리XCX 가 카말라 해리스를 지목하면서 해리스로 관심이 증폭된 것이다.
미국의 모든 정치 방송 진행자들이 'BRAT"의미가 뭐냐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버클리대 뉴미디어센터 애비게일 드 코스닉 교수는 "찰리XCX가 카말라 해리스 캠페인에게 젠지세대 노출이란 어마어마한 선물을 준 셈"이라고 말했다. #kamalaharris 태그는 지난 7일동안 틱톡에서 1억뷰를 달성했다.
해리스 선거본부도 재빠르게 대응했다. 해리스 부통령의 X 계정 대문은 'Kamala HQ'란 라임색 계정의 이미지와 찰리XCX의 앨범 폰트로 신속하게 바뀌었다.
찰리XCX는 'BRAT'이 "약간 정신없고(messy), 파티를 즐기며 가끔 바보스러운 말을 하기도 하는 여자애"라고 정의하고 있다. 찰리XCX는 '앨범 재킷에 성적 어필을 하는 게 싫어서' 이번 앨범 재킷에 자신의 사진을 넣지 않았다. <360>의 가사는 이렇다
. "난 내 길을 걸었고 성공했어. 난 네가 가장 좋아하는 레퍼런스야. 가브리엣이라고 불러줘. 넌 영감을 받았어" (가브리엣: 반항적 이미지의 유명 모델)
여기에 카말라 해리스가 얹혀진 것이다. 그동안 소셜미디어에서 해리스를 조롱하는데 쓰였던 해리스의 특징 -- 호탕한 웃음소리, 뜬금없고 다소 썰렁한 유머, 풍부한 손 제스처와 표정, 춤추는 모습, 칠면조를 요리하는 모습 등 -- 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3. 이제 트럼프는 내가 잡겠다 - 검사 해리스
'브랫' 해리스 밈이 갑자기 폭발한 건 뭔가 유쾌한듯 허술한듯하지만 본업은 엄청 잘하는 ‘갭차이 쩌는’ 이미지가 진짜 해리스와 일치한다는 데 있었다. 전직 검사 해리스는 대선 경선 출마 전 범죄 대응에 대한 책을 냈을 정도로 범죄와의 전쟁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다. 해리스는 바이든의 지지가 있은 후 위스콘신주에서 벌인 첫 대선 캠페인 연설에서 목표물을 아주 정확하게 조준했다.
"검사 시절 저는 많은 범죄자를 상대했습니다. 여성을 괴롭히는 약탈자(환호), 소비자를 등쳐먹는 사기꾼(환호), 자기 이익을 위해 법을 어기는 범법자(환호). 자, 주목하십시오 저는 도널드 트럼프 같은 타입을 잘 압니다.(엄청난 환호)"
물론 해리스 부통령에겐 바이든 행정부의 일원이었다는 짐이 계속 존재한다. 트럼프 캠페인은 해리스를 '무능력한 바이든 행정부의 무능력한 부통령'으로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해리스에겐 몇 가지 장점이 있다.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유색인종 여성이라는 점이다. 만약 트럼프가 지난 대선 경선 때처럼 인종, 성별을 조롱하는 멸칭을 해리스에게 붙이거나 이를 겨냥한다면 지지세를 중도층으로 확대할 수 없다.
가뜩이나 트럼프 캠페인은 부통령 후보까지도 자신과 똑같이 '기존 질서 존중하지 않는/근본주의 기독교 신념의/후기자유주의 이념의/백인(우월주의)/(마초냄새 가득한) 남성'이다.
(공화당 전당대회를 상징하는 순간이 바로 헐크 호건이 나와서 셔츠를 찢으며 트럼프를 지지했을 때였다는걸 기억해보자)
트럼프 캠페인은 웃음기 없는 어두운 캠페인이 됐다. 게다가 이번에 암살미수사건을 겪은 이후 스스로를 '신이 지켜주는 거룩한 존재'로 격상시키면서 더이상 예전의 코믹한 농담따먹기 이미지는 많이 사라졌다. 표정이 풍부한 '행복한 투사' 카말라 해리스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물론 틱톡에서 카말라 밈이 계속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지금 현재는 해리스가 트럼프/바이든과 이미지 측면에서 너무 선명한 대조를 이루기 때문에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는 게 사실이다. 언제든 해리스가 말실수를 통해 가뜩이나 짧은 캠페인 기간 동안 잘 쌓아놓았던 이미지를 우루루 무너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원래 선거 캠페인이란 '프레임 싸움'이며 '기세'다. 그동안 미 대선은 트럼프 캠페인이 짠 전략대로 '늙고 약한 바이든'이 초점이었다. 이제 민주당은 그 초점을 바꾸려 한다. 검사 해리스, 젠지에게 인기 있는 밈 캐릭터 해리스, 임신중단권에 목소리를 높이는 해리스, 유쾌한 '당돌한 여자' 해리스의 대선후보 격상은 캠페인 초점을 원래 민주당 전략대로 '범죄자 트럼프가 우리의 권리를 뺴앗아 가지 못하게 하자'는 프레임으로 다시 극적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됐다.
4. 정치의 '엔터테인먼트화', 대선에 영향 줄까?
트럼프의 등장은 정치가 엔터테인먼트에 잡아먹히는 기이한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한 일대 사건이었다. 이제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에서 '컬트 종교' 지도자 이미지로 진화한 트럼프를 과연 '코코넛나무' 밈을 업은 여성 검사 카말라 해리스가 대적하는 드라마가 펼쳐질 예정이다.
해리스의 존재감이나 호감도가 바이든보다도 떨어진다지만, 이제 '트럼프가 미 대선 역사상 가장 나이많은 후보'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해리스의 생기발랄함이 드러나게 됐다. 적어도 '바이든도 트럼프도 싫어서 투표하기 싫었다는' 상당히 많은 미국 유권자(35세 이하 27%)들에게는 다시 대선에 관심을 갖게 되는 탐색의 기회다.
바이든이 올 초 일찌감치 재선출마를 포기하고 민주당이 경선으로 대통령 후보를 선출했다면, 부통령으로서 변변한 업적이 없던 해리스에게 기회가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바이든은 취임 초기 자신이 '과도기(transition)'대통령이라고 말함으로써, 재선을 노리는 대신 후대 세대에 리더십을 이양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긴 적이 있다. 그러나 바이든은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고, 민주당 경선 룰까지 바꾸어서 대선후보자리를 거머쥐었다. 대선 100일 전까지 이 대선후보자리를 바이든이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해리스에게 기회가 온 셈이다. 2016년 선거에서 '똑똑한 여성 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는 민주당에게 여성 대통령 후보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를 안겼다. 그러나 지금은 해리스 말고는 실제로 선거를 치르기 어렵기도 하고 트럼프 캠페인이 극도의 마초전략으로 가면서 해리스를 대항마로 세우기 적절한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정치는 이미 좋든 싫든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포함하게 됐다. 만약 해리스가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다면 대단한 드라마가 될 것이고, 전세계 수많은 미디어 연구자들의 논문 주제가 될 것이다.
이쯤에서 카말라 해리스가 무려 20회나 토씨도 틀리지 않고 되뇌어 밈이 된 문장 하나를 소개한다.
"과거의 짐을 벗어버리고 미래에 무엇이 될 수 있을지를 상상할 수 있다: I can imagine what can be, unburdened by what has been."
이게 오바마의 'Yes we can'급으로 올라갈지 지켜보자. 꿀잼이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