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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nam Kang Nov 23. 2020

개츠비를 만나러 가는 시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는 산책

차를 빌려 아이들 데리고 어디든 주말 나들이를 가자는 맨해튼 친구네 말에, 내가 덥석 여행지로 제안한 곳은 롱아일랜드의 샌즈 포인트 프리저브(Sands Point Preserve)였다. 구겐하임 가문이 소유한 대저택으로 현재는 대중에게 개방돼 있는데, 대저택과 널찍한 정원, 바닷가 산책로에 더해 놀이터도 있고, 놀이터에는 짚라인까지 있어 아이들과 소풍가기에 딱 좋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실은,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뉴욕에 오면 꼭 가고 싶은 곳 중 하나가 롱아일랜드의 그레이트넥(Great Neck)이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모델이 됐던 곳. 실제 피츠제럴드가 아내 젤다, 딸 스코티와 함께 살았던 동네다.


<위대한 개츠비>는 뉴욕에서 20마일 떨어진 곳에 해협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계란' 지역을 무대로 삼는다. 서쪽 계란, 즉 웨스트에그(West Egg)의 대저택에서 개츠비는 동쪽 계란, 즉 이스트에그(East Egg)의 초록 불빛을 바라보며 첫사랑 데이지를 열망한다. 초록 불빛은 데이지가 남편 톰 뷰캐넌과 사는 바닷가 대저택의 선착장에서 나오는 불빛이다.


샌즈 포인트 프리저브는 데이지 저택이 있는 이스트 에그에 위치한다. 이스트 에그의 진짜 이름은 맨해셋(Manhasset)과 샌즈 포인트(Sands Point). 샌즈 포인트 프리저브 가는 길에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웨스트 에그, 즉 그레이트넥을 지나치게 되니, 자연스럽게 '개츠비 투어'를 할 수 있다. 너그럽게도 친구네 가족이 흔쾌히 내 제안에 동의해줬다.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웨스트 에그'




토요일 오전 8시 반, 7인승 SUV에 어른 넷, 아이 셋이 올라 타고 롱아일랜드로 향했다. 첫 목적지는 그레이트넥 시내의 베이글 가게. 샌즈포인트 프리저브가 오전 11시에 오픈하므로, 베이글과 커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며 그레이트넥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베스트 베이글(Best Bagles)이란 가게는 인기 맛집인건지 아니면 이른 아침에 문 여는 가게가 여기 밖에 없기 때문인지 손님이 적지 않았다. 커피와 플레인 크림치즈 베이글을 한아름 샀다.


이 베이글 가게에서 걸어서 고작 7분 거리에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주택이 있다. 피츠제럴드고 개츠비고 관심 없는 초등학생이 셋이나 되기 때문에 걸어가보는 것은 어렵고 차를 몰고 그 주택 앞으로 갔다.


11월 초순, 아직 한창인 가을 단풍나무가 아름드리 펼쳐진 길을 따라 가니 인터넷에서 미리 보았던 2층짜리 주택이 나타났다. 아이보리색 외관에 붉은 기와 지붕을 얹은 지중해풍 주택. 피츠제럴드는 1920년 젤다와 결혼해 이듬해 딸 스코티를 낳았고, 이 집에서 1922년 10월부터 1924년 4월까지 1년 반을 살았다. 그리고 이 집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구상했다. 소설에서 웨스트 에그는 개츠비와 같은 신흥 부자가, 이스트 에그는 전통적인 부호가 사는 지역으로 묘사되는데, 실제로도 그랬다고 한다. 피츠제럴드는 래리 혼(Larry Horn)이라는 신문기자 겸 소설가이자 웨스트에그 주민인 술친구와 어울리며 이 동네의 부잣집 파티를 전전했다고 한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조용한 주택가이므로 우리 일행의 대표로 남편만 차에서 내려 피츠제럴드 집을 카메라에 담았다. 나는 SUV 맨 뒷좌석에 갇힌 채 뒷창문을 통해 집과 동네를 구경했다. 우아한 집 앞 마당으로 낙옆이 우수수 떨어져 있고, 소 한 마리가 서 있다. 뉴욕택시 모자를 쓰고 몸통엔 크라이슬러빌딩 등 뉴욕의 대표 건축물이 그려진 것으로 보아, 세계 각 도시를 돌며 해당 도시 작가들이 소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는 세계적 공공예술 축제 '카우 퍼레이드(Cow Parade)' 뉴욕 이벤트에 나왔던 작품인 듯 싶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개츠비 역을 맡은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본 이후로는 개츠비, 하면 디카프리오가 떠오른다. 피츠제럴드의 집은 개츠비 저택보다 작고 개츠비의 이웃 닉 캐러웨이의 오두막보다는 화려했다. 여러모로 두살 짜리 아이 하나를 키우는 젊은 부부가 살기엔 매우 큰 집이었다. 이 집은 바닷가와는 멀찍이 떨어진 위치라 해협 건너 데이지의 대저택도 보이지 않는다. 래리 혼의 집이 바닷가에 있었고 피츠제럴드는 거기 가서 해협을 바라보곤 했었다고 한다.


피츠제럴드의 집은 2015년 매물로 나와 화제가 됐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1918년 건축돼 침실 7개, 욕실 6개를 갖춘 이 집의 매매가는 380만 달러였다. 우리 돈으로 43억 원이다.


"피츠제럴드는 이 집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구상하고 소설 초반부를 썼대요. 완성은 프랑스 파리에서 했고요. 이 집을 소유한 건 아니고 빌린 거래요. 피츠제럴드는 프랑스와 미국의 여러 도시를 옮겨다니며 살면서 소설을 쓴 노마드였기에 평생 집을 소유한 것 같진 않아요."


가이드가 된 마냥 그간 읽은 책들을 바탕으로 설명하자 친구가 말했다. "그러니까 피츠제럴드는 무주택자였군요." 우리는 웃었다.



아주 짧은 피츠제럴드 집 구경을 마치고 바닷가의 스텝핑스톤 파크(Steppingstone Park)로 갔다. 이 공원 앞 바다는 서쪽, 그러니까 브롱스 쪽으로 향해 있다. '개츠비 투어'라면 응당 동쪽의 이스트 에그가 건너 보이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동쪽 해변은 모두 사유지라서 외부인이 들를 수 있는 곳이 없다. 아쉬운 마음은 기대보다 멋진 공원의 모습에 사그라졌다. 재미있는 놀이기구로 잘 꾸며놓은 공원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아, ‘와 그냥 여기서 하루종일 있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리가 동동 떠다니는 바다 풍경도 아름다웠다.



구겐하임 가문의 여름 별장



샌즈 포인트 프리저브로 가는 길은 네비게이션을 따르지 않고 되도록 해변가를 따라 달려보기로 했다. 비록 안으로 들어가 개츠비가 바라봤던 그 해협 풍경을 볼 순 없지만, 소설의 배경이 됐던 공간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기를 희망하며. 영화에서는 화려한 롤스로이드 자동차가 푸른 가로수가 빽빽한 도로를 달린다. 실제 피츠제럴드도 중고 롤스로이드를 사서 뉴욕과 그레이트넥을 오갔다고 한다. 우리가 달리는 도로 양 옆으로 아까 본 피츠제럴드의 집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크고 화려한 주택들이 쑥쑥 나타났다. "엄마, 집이 궁전 같아. 너무 좋아." 아이들도 두 눈이 동그래졌다. "어떤 집이 가장 맘에 드는지 골라보자. 나중에 우리가 사지 뭐" 하고 허세를 부려봤다.


샌즈 포인트 프리저브는 1920년대 지어진 3채의 대저택과 그 주변 부지를 포함한다. 구겐하임 가문이 여름 별장으로 오래 소유하다 대중에 개방했다. 이스트 에그의 전통 부호 저택인 셈이다. 캐슬 굴드(Castle Gould)와 햄스테드 하우스(Hamstead House)는 외부 구경을 할 수 있지만, 꽤 떨어져 있는 팰레이스(Falaise)는 가이드 투어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대저택이 내부 관람은 중단된 상태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짚라인을 실컷 탔고, 싸갖고 간 초코파이와 과일로 간단히 요기를 한 뒤 정원을 뛰어다니고 돌맹이를 모으고 나무에 기어올랐다.


1910년대에 화강암과 석회암으로 튜터 스타일로 지었다는 햄스테드 하우스 정원을 걸으면서 나는 이런 곳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상상했다. 미국 집의 크기는 한국과 차원이 다르게 커서, 이런 곳을 내 집이라고 부르는 게 어떤 것일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위풍당당한 대저택에 내가 주눅들었듯 중서부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이곳 주민이 된 피츠제럴드도 주눅들었을까. 혹은, 작가로 이름을 알리고부잣집 딸 젤다와 결혼한 이후 화려한 삶을 추구했던 피츠제럴드는 이스트 에그의 부자들을 선망하거나 시기했을까.



나비 날개의 고운 가루가 그려내는 무늬처럼


헤밍웨이의 에세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재미있게 읽었다. 헤밍웨이의 소설들은 어쩐지 졸리지만, 파리에서 지내던 젊은 시절을 기록한 이 책은 참으로 흥미롭고 잘 짜여진, 잘 쓴 글이다. 그는 이 책의 상당한 분량을 파리에서 사귄 ‘절친’ 피츠제럴드에 할애한다. 헤밍웨이는 그를 술과 파티에 쩔어지내느라 글 쓰는 데 게으르고, 방탕한 생활을 즐기며 그 방탕한 생활에 드는 돈을 벌고자 저속한 단편소설을 써대고, 술 취하면 기절하고 피해망상에 쩔어 있는 인물로 묘사한다. 미친 여자 젤다와 헤어져야 그가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젤다에 대해서도 악평한다. 피츠제럴드에 대한 헤밍웨이의 글은, 헤밍웨이가 피츠제럴드를 너무나 질투한 나머지 피츠제럴드 사후에 그를 깎아내리기 위해 쓴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헤밍웨이가 뭐라 하든 세상 떠난 피츠제럴드가 반박할 수 없다는 점에서 헤밍웨이가 좀 치사해보인다). 피츠제럴드는 1940년 심장마비로 급작스럽게 사망했고, <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1950년대에 쓰였다.


그러한 헤밍웨이도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서는 주저 없이 찬사를 보냈다.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와 단 둘이 리옹으로 여행을 갔다가 그에게 된통 당한다. 피츠제럴드는 약속 시간에 맞춰 기차역에도 나오지 않았고,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셔댄 뒤 자기가 열이 심하게 난다는 둥, 이제 곧 죽을 거라는 둥, 한밤에 체온계를 구해가지고 오라는 둥 진상을 부린다. 파리의 집으로 돌아온 헤밍웨이는 아내에게 말한다.


"난 중요한 걸 한 가지 깨달았어."

"그게 뭔데요?"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로 함께 여행하면 안 된다는 거."


며칠 후 피츠제럴드가 책 한 권을 가지고 헤밍웨이를 찾아왔다. <위대한 개츠비>였다. 헤밍웨이는 말한다.


책을 다 읽고 난 나는 스콧이 무슨 짓을 하든, 그리고 그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 행동을 하든, 그것은 일종의 병이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그를 도와주고, 그의 좋은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중략) 그가 <위대한 개츠비>처럼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보다 더 좋은 책도 얼마든지 쓸 수 있으리라고 나는 확신했다.


인간 피츠제럴드와 작가 피츠제럴드에 대한 헤밍웨이의 평가는 아름답고 연민이 느껴진다.


그의 재능은 나비 날개의 고운 가루가 그려내는 무늬처럼 자연스러웠다. 한때 그는 나비가 제 날개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듯이 자신의 재능을 깨지 못했고, 심지어 그것이 약탈당하거나 파괴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중에야 상처 입은 날개와 무늬의 상태를 자각한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국, 그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비록 인생의 황금기는 아니더라도 작가로서 황금기에 있던 그를 만난 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So we beat on


사실, 롱아일랜드의 웨스트에그에 사는 제이 개츠비는 그가 꿈꾸던 자기 자신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이었다. 만약 이 문장에 뭔가 의미가 있다면, 문자 그대로 바로 그런 의미였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일, 즉 거대하고 속되며 겉만 번지르르한 아름다움에 봉사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열일곱 살짜리 소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제이 개츠비 같은 인물을 꾸며내어, 그 이미지에 끝까지 충실했던 것이다. -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위대한 개츠비>는 읽으면 읽을수록 매력적인 소설이다. 남자들은 "남자라면 누구에게나 마음 속에 데이지가 있다"며,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뻔한 레토릭을 구사한다. 하지만 이 소설을 처음 읽었던 20대의 젊은 내게 데이지는 평생 마음에 품을 만한 가치가 없는 세속적인 여자였다. 개츠비가 부자가 돼 나타나지 않았다면 데이지가 개츠비를 쳐다보기나 했을까. 자신의 죄를 개츠비에게 뒤집어 씌우고, 개츠비의 장례식장에 나타나지도 않은 데이지는 순수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여자였다. 왜 그런 여자 때문에 목을 매는 것인지, 개츠비가 한심해보였다.


좀더 나이가 들어 다시 읽은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아이러니함 자체가 이 소설의 매력이라고 느꼈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이상향처럼 간직한 순수한 개츠비지만, 그가 부를 쌓은 방식은 불법과 사기가 첨가된 더러운 방식이었다. 이상향을 향해 전력투구하고, 살아남고자 타락하거나 최소한 치사해지고, 그러다 현실에 부딪혀 고꾸라져버리고 마는 인생. '재즈 시대'라 불리는 피츠제럴드와 개츠비의 시대에도, 그리고 지금도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니까. 29살의 젊은 작가가 그러한 인생의 본질을 꿰뚫고 훌륭한 문장으로 이야기로 엮어낸 것이 <위대한 개츠비>라고 느꼈다.

            

이제야 나는 그 모두가 결국 서부의 이야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톰과 개츠비, 데이지와 조던과 나는 모두 서부 사람이었고, 우리에게는 다 같이 뭔가 부족한 점이 있어서 묘하게 동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모양이다.  -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개츠비가 죽고 난 뒤, 소설의 화자 닉은 '두 개의 에그'에서 벌어진 비극이 그들 모두가 서부인이었기 때문이라고 깨닫는다. 자신과 개츠비, 데이지와 데이지의 남편 톰 모두 서부 출신이다. 뉴욕과 롱아일랜드로 온 서부인들은 결국 동부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만다. 미네소타 출신의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에 녹여낸 것이 외지인으로서의 자각이라면 이것은 인생의 한 부분을 할애해 뉴욕에 와서 지내는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개츠비 투어'는 샌즈 포인트 프리저브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이왕 롱아일랜드까지 온 김에 뉴욕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피터 루거(Peter Luger) 스테이크 하우스의 그레이트넥 분점에서 오후 4시에 이른 저녁을 먹고, 차 없이 뉴욕에 사는 한국인들이라 H마트로 가서 잔뜩 장을 봤다.


우리집 거실 창밖으로는 이스트  위를 가르는 퀸즈보로 브릿지가 보인다. 어둑해진 밤에 돌아온 이날도 퀸즈보로 브릿지는 오가는 차량이 쏟아내는 불빛에 반짝였다. 다리 위에선 맨해튼으로 가는 , 맨해튼에서 빠져나오는 차들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리듬처럼 일정하게 움직였다. 개츠비와 데이지도  다리를 건너 뉴욕과  개의 에그를 오갔었지. <위대한 개츠비> 꺼내  유명한 마지막 문단을 다시 읽었다. 이상향이 무엇이든,  결말이 어떻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믿음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고  또한 그렇게 살아가는 거겠지, 하면서.


개츠비는 초록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물러나는 환희의 미래를 믿었다. 그것은 우리를 피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일이면 우리는 더 빨리 달릴 것이며,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러면 어느 맑은 날 아침에는...

그래서 우리는 조류를 거슬러 가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나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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