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bbatical Year on the road
오전에 독일에서 온 부산 출신 룸메이트와 볼량 시장을 찾아갔다. 자그마한 키의 ** 씨는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고 독일에서 3년째 체류 중이라 했다. 이번 포르토 여행이 그녀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모양이다. 구경할 곳이 너무너무 많다면서 시장 구경 간다기에 나도 따라나섰다.
시장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전통 시장쯤을 생각하면서 두리번거리며 찾는데 여긴 간판이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금세 찾기가 어렵다. 주부의 감으로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의 비닐봉지를 보고 직감! 가까이 가보니 역시 건물 안에 작은 부스들이 늘어서 있는 전통시장 모습이 보였다. 서울의 광장시장이나 동대문, 노량진 수산시장과 비교하면 턱도 없이 작지만 나름 종류별로 과일, 채소, 생선, 육류, 포도주, 저장식품, 단 과자, 기념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현지인보다 관광객을 주고객으로 장사하는 듯했다.
알록달록 과일 중 눈에 띄는 녀석은 납작한 복숭아였다. 색깔이나 향은 딱 복숭아인데 모양은 약과처럼 납작하다. 정육점에는 바싹 말린 돼지머리 반쪽이 길게 걸려있고 선지, 소시지, 하몽류의 숙성 돼지고기들도 보였다. 살아있는 닭들도 우리 안에 다닥다닥 갇혀 있었다. 우리네 시골 3일장, 5일장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재래 시장에 가면 떡볶이, 순대 등 즉석 음식이 참 많은데 여긴 그런 건 안 보였다.
특이하게도 시장 2층에서 한 무리의 사람이 여기저기 앉아서 시장의 모습을 여러 각도로 그리고 있었다. 하얀 도화지에 그려지는 시장의 모습이 더 흥미로웠다. 거대 자본이 세운 대형 할인마트에 동네 가게들과 재래시장들이 밀려나는 현실은 여기도 다르지 않았다. 현대인의 생활 패턴에 맞지 않는 구식으로 부모 세대와 함께 수명을 다할지 또는 틈새 마케팅으로 살아남을지, 붙잡을 수 없는 삶의 한 편, 사라져 가는 모습을 화가 지망생들은 어떤 느낌으로 화폭에 담을까?
관광 성수기인데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어제보다 사람들이 더 북적인다. 저녁 6시가 넘어서 포르토의 야경을 보러 시내의 가장 높은 곳을 찾아갔다. 철제아치 다리 건너 노트르 헤리티지(Notre Heritage)까지 올라갔다. 널찍한 마당에 이미 차를 주차하고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진을 찍는 이들이 서서히 여기저기 높은 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난간 곳곳에 자물쇠통이 걸려있다. 아마도 연인들이 사랑의 맹세를 약속하며 걸었나 보다. 열쇠는 각자 하나씩 갖는 건가? 없애버리는 건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상상하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 상징으로 자신의 행동을 이론화하고 더욱 강화하는 동물.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종족은 상징과 신화, 때론 미신 같은 비과학적인 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모순 덩어리이기도 하다. 열쇠를 잠그고 거는 의식은 연인들에게 책임과 의무를 각인시키는 강렬한 메시지인 것 같다. 그런데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오니. 그들의 세리머니는 결국, 사람의 마음은 붙잡아 둘 수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 ‘좋을 때다’ 이런 생각도 들고, 나도 한때는....... 그들과 다르지 않았고 시간의 강을 지나보니 또 다른 식의 그 무엇이 되어있음을 발견한다.
높은 곳인지 바람이 너무 세서 더 있지 못하고 다시 아래로 내려와 와이너리 앞 카페 거리를 걸었다. 유명 와인 생산지답게 거대한 와이너리들이 줄지어 있다. 그 와인들을 실어 날랐다는 배들은 강 위에 두둥실 떠 있다. 카페 앞 테이블은 와인과 식사를 즐기며 웅성웅성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 로맨틱하면서도 감성 넘치는 라이브 가수들의 노래와 연주까지 금요일 저녁을 살살 달구고 있다. 갈매기들처럼 강둑에 주욱 앉아 해가 지기를 기다리며 맥주나 와인을 마시는 젊은이들도 꽤 많았다.
드디어 해가 넘어가고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다리에도, 카페 앞 테이블 하나 하나에도, 난로도 켜지고 램프도 켜지기 시작한다. 도시 불빛이 너무나 많아서 파란 하늘빛이 해가 넘어간 뒤에도 어둠 속으로 쉬이 사라지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