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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음 Dec 22. 2020

민음사 방문기 (1) - 가기 전

12월의 어느 날, 내가 민음사에서 책을 내게 될 거라는 메일을 받았다. 제8회 브런치북 출판프로젝트 대상 수상자라는 거였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다가 까매졌다가, 나중엔 미러볼을 떼거지로 굴려놓은 클럽 같이 되었다. 자꾸 밝은데 결국 암전이었다.

꿈인가 싶어 볼을 꼬집는 촌스러운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다만 친구를 은밀히 불러내 메일을 보여 주고, “니 눈에도 민음사라고 보이냐?”라고 물어보았다. 친구가 입을 쫙 벌린 채 나를 퍽퍽 치는 것으로 “민음사라고 보임”을 증명해 주었다. 우리는 네 개의 눈알로 내가 작가가 될 거란 확신을 응시했다. 몹시 큰 영광이 나의 미래이자 현재였다.


영광이 수많은 미래 작가들 속에서 내 멱살을 잡아챘기 때문에, 나의 설렘에 리듬을 헤아릴 수 없는 주먹질을 했기 때문에, 나는 기쁨에 얻어터져 녹다운되고 말았다. 그래서 당선 다음인가 다다음 날에 처연한 개꿈을 꿨다. 지구촌에세이연합에서 나온 곰돌이 푸 요원이 당선 및 출간 취소를 알리며 이런 비웃음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냥 다 일장춘몽이지요. 작가님의 우울한 글을 누가 읽겠습니까? 작가님 주변의 우울한 사람이?”


월트 디즈니 출신이 사자성어를 쓴다는 점부터 비현실적이었지만, 그런 꿈을 꿀만큼 어안이 벙벙했던 건 사실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수상 오류 소식은 도착하지 않았다. 대신 민음사 편집자님의 인사 겸 미팅 요청 메일을 받았다. 날짜를 정한 후엔 시곗바늘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빨리 가라고 재촉을 건넸다. 시간은 내게 30년째 무응답인데도 틈날 때마다 욕구를 털어놓게 된다. 스마트 와치라 째깍째깍 소리도 나지 않으니 내 말은 완전히 씹히는 셈이었다.

회사일이 바쁨에도 눈 코 뜰 새 없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가 수상자라니...... 이 모든 게 소싯적 읽던 인터넷 소설 제목 같았다. [찌질이 회사원, 밤에는 에세이 작가?!], [안경탱이 그 녀석의 이중생활] 이런 표제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작가에 가까운 언어로 기뻐하고 싶었지만 기쁨은 원초적 속성이라 멋대로 재단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제목을 짓는 능력이 미흡했다. 말해도 좋을지 고민되는 발언이지만, 수상작 <젊은 ADHD의 슬픔>도 원래는 <머리털이 풍성한 소녀의 수난>이었다. 괴테가 먼 과거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지 않았다면 대안이 없어서 채택될 제목이었다.


솔직히 당선 직후의 난 알 수 없는 광기에 차 있었다. 늘 침침하던 동태눈이 명징하게 번들거렸고 안경알에 김이 확 끼는 순간마다 무지개를 목격했다. 회사 동료들은 내가 너무 히죽거려 공포에 가까운 의아함을 느꼈을지 모른다. 말하지 않았으므로, 동료들은 내가 뭔가를 응모했다 당선되었다는 것도 몰랐다. 우리가 공기 중으로 모름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나를 신나게 만들었다.

지나치게 격앙될 때마다, 민음사 편집자님이 보내주신 메일을 다시 보았다. 그분의 말씨는 폭주하는 내 머릿속과 다르게 차분했다. 편집자님이 나를 선생님이라 호칭하셔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기분이 되었다. 나중에 민음사 유튜브를 보니 구독자 별명이 ‘선생님’이었다. 출판사는 관계되는 외부인(?)에겐 응당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 같았다.

정말 지적인 집단이군......! 나는 감탄하는 속마음을 담아 정성스러운 답장을 보냈다. 전송을 누르며..... 난데없이 내가 민음사의 직원이 되는 것과 민음사의 작가가 되는 것 중 뭐가 더 불가능했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냉정하게 나의 발자취나 경력으로 입사는 요원해 보였다. 하지만 민음사의 작가라니 더더욱 상상이 안 되는 일이었다. 마음이 간지러우니 선생님 호칭을 거둬주십사 말하고 싶기도 했는데, 아빠가 너무 기뻐하셔서 말았다. 아빠가 본인이 선생님으로 불릴 때보다 좋아해서 루돌프 코를 닮은 내 코끝은 주책맞게 찡해지고 말았다.

12월에 이런 좋은 소식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생이 보낸 크리스마스 선물이 틀림없었다. 루돌프...... 산타의 독과점 체제에서 오래 꿀 빨던 졸개...... 적신호 같은 청신호를 밝히느라 코가 빨개진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루돌프 선생님을 오해하고 있었음이다. 산타 선생님에 대한 존재론적 의심과 비판들도 완전히 해제할 수 있음이다. 수상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생각이 들자, 산타까지 껴 세계 5대 성인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당선 이후부터는 모든 생각이 비행기에 올라타 뗏목으로 환승하듯 흘러갔다. 그야말로 좔좔좔이었다. 매번 남의 잔치 들러리만 서다 내 잔치가 열리니 조절이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어쨌든 시끄러운 내면을 음소거하지 못한 채로 민음사 방문 일정을 잡게 되었다.


민음사에 가면...... 우리는 위대한 계약서를 쓰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보이겠다는 다짐을 나눌 것이었다. 아직 아무도 만나 뵌 적 없지만 우리는 이미 우리였다. 게다가 내 상상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좋아했다(?).


이런 주접은 편집자와 작가의 관계성을 하나도  모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어쩌면 그 사이는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점잖고 공식적인 것일지 몰랐다. 나도 업무상 외주 관계자에게 점잖고 공식적인 태도를 보이니까, 그것과 비슷할지 몰랐다. 하지만 알기 전까지는 몰라도 돼서 신이 났다.

새롭고 공식적이고 조용한 곳에 갈 때 내 긴장은 최대치에 이른다. 그런 스케줄의 전날은 밤을 꼬박 새우는 편이었다. 졸려서 다운되는 게 평소의 실수투성이 상태보다 낫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나의 별명은 ‘뭉치’였다. ‘사고뭉치’...... 사연을 들은 엄마가 슬프다며 행복뭉치라 정정해주었지만, 내 인생을 아우르는 라벨링은 행복보단 사고였다. 내가 사고를 치면 친구들은 “뭉치가 뭉치 했다”라는 괴상한 감탄사를 보내곤 했다. 그 문장은 단순하여 내 가슴에 오래 남았다.

‘내가 내일도 뭉치 하면 안 되는데.......’

친구들의 시선으로 나를 걱정하며 누워 있자니 새벽 세 시가 되었다. 내가 안 자고 푸닥거려서 나의 쿨쿨 고양이도 덩달아 밤을 새우는 중이었다.

“야!”

우리는 몹시 친하여 저런 호칭이 가능했는데, 고양이가 내 말을 듣고 와준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재차 고함을 치자 나를 바라봐주긴 하였다.

“야, 밀스톤!”
“?”
“넌 이제 작가의 고양이다!”
“...”
“그러니까 알맞은 교양과 자애를 갖춰야 돼. 나 좀 그만 깨물고, 그만 할퀴고, 그만 괴롭혀. 알겠어?!”

고양이는 시끄럽다고 생각했는지 단박에 달려와 나를 깨물고 할퀴고 괴롭혔다. 밀스톤은 인생 같은 고양이였다. 절대로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눈물 날 정도로 뜯기고 나서야 고양이 이빨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통증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긴장이라니 이게 긴장이기나 한 건지, 다른 거대한 것은 아닌지 또 걱정이 되었다.


내가 잠을 자거나 말거나 시간은 부지런히 가고 있었다. 빨리 좀 가 달라는 로비를 철회하고, 이제부턴 느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역시 씹히고 말았다. 나의 스마트 와치가 순간이동처럼 해 뜰 시각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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