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먼저 기억하는 것들》

강의실에서 춤연습

by Jeeae



1장. 처음 움직였던 날


그날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다만 확실한 건,

그날 이후로 몸이 가만히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음악이 흐르기도 전에

심장이 먼저 박자를 찾았고

생각보다 먼저

몸이 반응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몸은 알고 있었다.

어디를 펴야 하는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어디까지 가면 무너지는지.


그건 배운 게 아니라

살아오면서 쌓인 감정 같았다.



2장. 말 대신 움직임


지애는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말로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면

오히려 숨이 막혔다.


하지만 춤을 출 때만큼은 달랐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기쁠 때의 움직임은 가볍고

슬플 때의 움직임은 깊었다.


나는 그 차이를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느꼈다.


그래서 춤은

표현이 아니라

번역에 가까웠다.


마음에서 몸으로.



3장. 연습실의 공기


연습실에는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땀, 바닥의 먼지,

오래된 음악 파일 속의 시간들.


거울 앞에 서면

나는 늘 잠깐 멈췄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

부족한 점도,

괜히 미워지는 날도 많았다.


그런 날엔

동작이 잘 안 맞았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그럴 때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몸이 먼저 솔직해지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장. 혼자 만들어낸 동작들


누가 시킨 적은 없었다.

나는 스스로 움직임을 만들었다.


정답이 없는 동작들.

틀렸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처음엔 불안했다.

이게 맞는지,

웃기진 않은지.


하지만 반복할수록

확신이 생겼다.


이건 누군가의 춤이 아니라

내 몸의 언어라는 확신.



5장. 무대 뒤의 자리


나는 항상

조금 뒤에 서는 사람이었다.


앞에 서는 사람이 빛날 수 있도록

각도를 맞추고

호흡을 조절했다.


백라인은

조용한 자리였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가장 안정됐다.


보이지 않는다는 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받쳐준다는 뜻이라는 걸

몸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6장. 카메라와의 거리


카메라 앞은

무대와 달랐다.


카메라는

움직임의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다만

기록할 뿐이었다.


그래서 더 정직했다.


나는 영상을 찍고

다시 돌려보며

자신의 감정을 확인했다.


“아, 이때 힘들었구나.”

“여기선 마음이 풀렸네.”


영상은

춤의 기록이 아니라

마음의 기록이었다.



7장. 흔들리는 날들


늘 잘 추는 날만 있는 건 아니었다.


몸이 무겁고

자신이 초라해 보이는 날도 있었다.


비교는

생각보다 쉽게 찾아왔다.


그럴 때 나는

춤을 그만두지 않았다.

대신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춤을 포기하지 않는 방식은

항상 전력질주가 아니었다.



8장. 그래도 다시 서는 이유


나는 알고 있었다.

춤이 없으면

자신이 너무 조용해진다는 걸.


감정이 쌓이고

말하지 못한 것들이

몸 안에서 굳어버린다는 걸.


그래서 다시 음악을 틀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중앙에 서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춤은

내가 자신을

살아 있게 해주는 방식이었다.



9장. 몸이 기억하는 미래


언젠가

나는 춤을 보고

누군가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잘 춘다”가 아니라

“느껴졌다”고.


그 말 하나면 충분했다.


나는 오늘도

천천히 몸을 움직인다.


말보다 먼저,

생각보다 먼저.


몸은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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