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신자

성당 예배

by Jeeae

“너는 이미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쓸모로 부르지 않으신다.

잘했을 때만, 강할 때만, 웃고 있을 때만

찾아오시는 분이 아니다.


성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느님은 늘 지쳐 있는 사람 쪽에 먼저 서 계셨다.


사람들 틈에서 밀려난 사람,

말이 없는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사람,

자기 자리가 어디인지 몰라

뒤에 서 있던 사람들.


예수님은 그런 이들을

앞으로 끌어내 세우지 않으셨다.

대신 그 곁에 앉으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은

“더 열심히 하면 쉬게 해주겠다”는 약속이 아니다.

이미 지쳐 있는 상태 그대로

오라는 초대다.


괜찮아질 때 오라는 말이 아니다.

정리하고 오라는 말도 아니다.

그저

지금의 너로 오라는 말이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생각한다.

‘이 정도로 힘들다고 말하면 안 되지.’

‘다들 버티는데 나만 약한 거 아닐까.’


하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비교가 필요 없다.


하느님은

누가 더 아픈지 재지 않으신다.

누가 더 오래 버텼는지도 따지지 않으신다.


그저

네가 아프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하다.



성경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예수님이 군중 속에 계실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여인이

그분의 옷자락을 살짝 만진다.


그 여인은

소리 내어 부르지도 못했고

앞에 나서지도 못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미세한 손길을 느끼셨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여기서 믿음은

큰 고백이 아니다.

완벽한 신앙도 아니다.


살고 싶어서 손을 뻗은 것.

그게 믿음이었다.



나는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도 그래.


큰 소리로 외치지 않아도

사람들 앞에서 설명하지 않아도

그저 하루를 또 살아낸 것.


그 자체가

이미 기도였고

이미 믿음이었어.



하느님은

우리를 서두르지 않으신다.


“왜 아직도 거기 있니?”

“왜 이렇게 느리니?”

그런 말씀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함께 있다는 말은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겠다는 뜻이 아니라

네가 혼자가 아니라는 약속이다.



우리가 무너질 때

하느님은 실망하지 않으신다.

놀라지도 않으신다.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얼마나 여린지,

얼마나 버티며 살아왔는지.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를 고치려 들기보다

안아주신다.



마지막으로

이 말만은 꼭 전하고 싶어.


하느님은

너를 쓰기 위해 사랑하신 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곁에 계신다.


네가 춤출 때도

가만히 멈춰 있을 때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할 때도.


하느님은

한 번도

너를 떠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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