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토박
경기도는 늘 애매한 이름이었다. 서울도 아니고, 시골도 아니고. 지도 위에서는 둘러싸고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늘 경계선에 서 있는 곳. 나는 그 경계에서 태어나 자랐다. 화려하지도, 완전히 조용하지도 않은 동네에서.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는 아파트 단지가 전부였다. 비슷비슷한 색의 건물들, 같은 모양의 놀이터, 같은 시간에 울리는 학교 종소리. 봄이면 벚꽃이 잠깐 피었다가 미세먼지 속으로 사라졌고, 여름이면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계절은 분명히 바뀌었는데, 풍경은 늘 그대로였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나는 항상 같은 길로 등교했다. 편의점 앞을 지나고, 작은 문구점을 지나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그 신호등 앞에서 수없이 많은 아침을 보냈다. 졸린 얼굴로 가방을 끌어안고 있던 나, 엄마 손을 잡은 아이들, 출근에 쫓기던 어른들. 그 모든 장면이 겹쳐져 경기도의 아침이 되었다.
경기도의 시간은 조금 느렸다. 서울처럼 숨 가쁘게 달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멈춰 있지도 않았다. 방과 후 학원으로 향하던 오후, 창밖으로 보이던 회색 하늘, 겨울이면 유난히 일찍 어두워지던 거리. 그 속에서 나는 별다른 사건 없이 자랐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여기서 계속 살면 나는 어떤 어른이 될까?”
중학생이 되었을 때, 경기도는 갑자기 좁아 보이기 시작했다. 지하철 노선도 속에서 내 동네는 항상 끝 쪽에 있었고, 약속을 잡으면 늘 “거기까지 가려면 한참 걸리네”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한참 걸리는 곳. 멀지는 않은데 늘 한 박자 늦는 곳.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밤의 경기도를 더 많이 알게 됐다. 늦은 자습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로등 아래 길게 늘어진 내 그림자, 조용한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던 라디오 소리. 그때의 경기도는 낮보다 훨씬 솔직했다. 화려한 척하지도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어둡고 조용했다.
그곳에서 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막연했지만 분명한 갈망 같은 것.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 경기도가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 익숙해서였다. 모든 골목이 기억 속에 있고, 모든 풍경이 예상 가능한 곳에서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새로워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떠나기 직전, 나는 경기도가 나에게 얼마나 많은 걸 줬는지도 알게 됐다. 튀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 혼자 버스 창가에 앉아 생각해도 되는 시간, 조용히 견디는 법. 경기도에서의 삶은 나를 크게 흔들지는 않았지만, 대신 단단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가끔 그 동네를 떠올린다. 비 오는 날이면 유난히 냄새가 나던 아파트 입구, 겨울 새벽에 얼어붙던 놀이터 철봉, 아무 의미 없이 지나쳤던 수많은 오후들. 그 모든 평범한 날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경기도에서 살아온 시간은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조용한 시간 속에서 나는 천천히 나라는 사람을 키워왔다. 경계에 있었기에 더 많이 바라볼 수 있었고, 중심이 아니었기에 스스로 중심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말할 수 있다.
경기도는 나를 붙잡아 두지 않았지만, 나를 밀어냈다.
조용하게, 아주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