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

피아노 발레를 배웠었다

by Jeeae

어렸을 때의 나는 늘 두 개의 방을 오갔다.

하나는 커다란 거울이 붙어 있고 바닥이 미끄럽게 닦여 있던 발레 연습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햇빛이 창으로 들어오면 건반 위에 길게 그림자가 드리워지던 피아노 방이었다.


발레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내 몸이 이렇게 말을 안 들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머릿속으로는 분명히 예쁘게 그려지는데,

발끝은 늘 조금 늦고, 무릎은 생각보다 빨리 굽혀졌고,

팔은 마음처럼 부드럽게 흐르지 않았다.


선생님은 항상 말했다.

“발끝까지 생각해.”

그 말이 나는 참 어려웠다.

생각이라는 게 어떻게 발끝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그땐 잘 몰랐다.


거울 속의 나는 늘 연습 중이었다.

분홍색 발레복, 하얀 타이즈, 조금은 헐렁한 레오타드.

머리는 단정하게 묶었지만 잔머리는 늘 빠져나왔다.

음악이 시작되면 몸은 자동으로 움직였고,

그 안에서 나는 자꾸만 나를 잊어버렸다.


피아노도 그랬다.

처음엔 도레미파솔, 단순한 음들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악보가 점점 복잡해졌다.

검은 건반이 늘어날수록

내가 틀릴 수 있는 자리도 함께 늘어났다.


피아노 앞에 앉으면 이상하게 조용해졌다.

발레가 몸으로 감정을 쏟아내는 거라면

피아노는 마음을 안으로 접어 넣는 일이었다.


연습하다가 틀리면

선생님은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다시. 처음부터.”


처음부터.

그 말은 발레에서도, 피아노에서도 똑같았다.


나는 그 말이 싫지도 좋지도 않았다.

그냥 익숙했다.

넘어지면 다시 서고,

틀리면 다시 치고,

흐트러지면 다시 정리하는 것.


어쩌면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완벽해지고 싶다기보다

계속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발레 공연이 있던 날,

무대 뒤에서 토슈즈 끈을 묶으며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숨이 가빴다.

조명이 켜지고 음악이 시작되면

무섭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오로지 ‘지금’만 남았다.


피아노 발표회 날에도 그랬다.

건반 위에 손을 올리는 순간

객석은 보이지 않았고

오직 음과 음 사이의 거리만이 느껴졌다.


그 시절의 나는

아직 세상이 어떤 곳인지 몰랐고

사람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지도 몰랐다.

하지만 몸으로, 손으로

꾸준히 무언가를 쌓아가는 법은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발레복은 옷장 깊숙이 들어갔고

피아노 의자는 더 이상 내 자리가 아니게 되었지만

그 기억들은 이상하게도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무대 위에 서지 않아도

건반을 누르지 않아도

그때 배운 감각으로 살아간다.


호흡을 고르는 법,

리듬을 느끼는 법,

넘어져도 다시 처음부터 가는 법.


어렸을 때의 나는 몰랐겠지만

발레와 피아노는

나를 예술가로 만들기보다

나를 나답게 버티게 하는 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아무도 없는 밤에

조용히 음악을 틀어놓고

몸을 조금 움직이거나

상상 속에서 건반을 눌러본다.


그럼 아주 잠깐,

그때의 내가 다시 돌아온다.

발끝까지 생각하던 아이,

처음부터 다시 하던 아이.


그리고 나는 안다.

그 아이는 아직도

내 안에서 계속 연습 중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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