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말하는 법을 배웠다

국립현대무용단 댄서로 활동했을때

by Jeeae

나는 처음부터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확함과 규칙 속에서 자라난 몸이었다.


어릴 적 발레는 나에게 기준을 가르쳤다.

각도, 선, 중심, 무게.

어디까지 들어 올려야 하고,

어디에서 멈춰야 하며,

어디서 숨을 쉬어야 하는지.


피아노는 시간을 가르쳤다.

박자와 쉼, 기다림과 타이밍.

서두르면 망가지고,

늦어도 흐름이 깨진다는 것.


그 두 세계 속에서 나는

‘정해진 대로 잘 해내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러다 현대무용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당황했다.


거울 앞에 섰는데

정답이 없었다.

발끝을 세울 필요도 없고

팔을 둥글게 만들 필요도 없었다.

음악조차 없을 때가 많았다.


“지금 몸이 하고 싶은 걸 해봐.”


그 말이 그렇게 막막할 수가 없었다.

하고 싶은 게 뭔지,

내 몸이 뭘 말하고 싶은지

나는 한 번도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현대무용은

기술보다 먼저 나를 드러내라고 요구했다.


넘어져도 괜찮았고

흔들려도 되었고

예쁘지 않아도 됐다.


그 자유가 처음엔 두려웠다.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

비워진 공간,

아무도 대신 설명해주지 않는 움직임.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혼란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숨이 편해졌다.


몸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동작 하나에 분노가 실리고

호흡 하나에 슬픔이 실렸다.


그러다 국립현대무용단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전혀 다른 무게를 느꼈다.


그곳은 자유만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자유를 책임질 줄 아는 사람들의 자리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몸을 부수듯 연습했고

작은 동작 하나를 위해

끝없이 토론했다.


“왜 이렇게 움직였는지 말해봐.”

“이 장면에서 네 몸은 뭘 말하고 있지?”


국립현대무용단의 무대는

화려함보다 밀도가 높았다.

관객은 박수를 치기보다

숨을 멈추고 바라봤다.


무대 위에서 나는

더 이상 ‘잘 추는 사람’이 아니었다.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조명이 켜지고

음악이 흐르거나, 혹은 완전히 사라질 때

나는 내 몸을 믿고

그 순간을 통과했다.


발레가 나에게 기준을 주었다면

현대무용은 질문을 주었다.

그리고 국립현대무용단은

그 질문을 끝까지 가져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불안하면 흔들리고

두려우면 굳고

확신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무용수로 활동하며

내 삶도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망치지 않고

버티고

말하지 못한 감정을

몸으로라도 남겼다.


시간이 지나

무대를 떠난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무용수였다.


길을 걸을 때도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도

혼자 조용히 서 있을 때도

내 몸은 늘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의 발레,

건반 위의 손,

현대무용의 바닥,

국립현대무용단의 무대.


그 모든 시간은

내 인생에서

사라진 적이 없었다.


나는 지금도

몸으로 말하는 법을 배운 사람이다.

소리를 내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남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건

아무도 쉽게 지울 수 없는

나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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