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위에 남은 발자국들》

학창시절 이사

by Jeeae

학창시절의 기억은 늘 장소에서 시작된다.

내가 처음 세상을 배운 곳은 서울 강북구 미아동이었다.

낮은 건물들 사이로 골목이 구불구불 이어졌고, 학교까지 가는 길엔 늘 같은 구멍가게와 같은 횡단보도가 있었다.

아침마다 가방이 몸보다 커 보였고, 신발은 늘 아스팔트에 끌리듯 닿았다.

미아동의 하늘은 늘 조금 낮았고, 그만큼 나도 세상과 가까운 아이였다.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곧장 돌아갔다.

놀이터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했고, 대신 창가에 앉아 밖을 내려다보는 시간이 많았다.

그 시절 나는 말이 많지 않았고, 세상을 조용히 관찰하는 쪽이었다.

친구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서도, 마음은 늘 한 발짝 뒤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안에 박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아이였던 나는 그 박스들이 불안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는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으로 이사했다.


풍무동은 미아동과는 전혀 달랐다.

공기가 넓었고, 하늘이 훨씬 높았다.

아파트 단지는 정돈되어 있었고, 학교 운동장은 커 보였다.

하지만 그 넓음 속에서 나는 오히려 더 작아졌다.


새 학교, 새 교실, 새 얼굴들.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웃는 방식도 모두 달랐다.

나는 그곳에서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말을 아끼는 법, 눈치를 보는 법, 먼저 다가가지 않는 법.

풍무동에서의 나는 조용히 주변을 흡수하며 크는 아이였다.


그러나 또다시, 시간이 지나자 박스가 쌓였다.

이번엔 더 많은 박스, 더 빠른 준비였다.

행선지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동은 이전과 달리 소리가 많은 동네였다.

사람도 많았고, 건물도 높았고, 속도도 빨랐다.

학교로 가는 길엔 늘 많은 학생들이 오갔고, 나는 그 흐름 속에 섞여 있었다.


잠실에서의 나는 처음으로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누가 더 빠른지, 누가 더 잘하는지, 누가 더 눈에 띄는지.

그 속에서 나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썼고, 애쓴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더 애썼다.

이곳에서의 학창시절은 치열했고, 동시에 외로웠다.


밤에 집으로 돌아오면 창밖의 불빛이 많았다.

그 불빛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서울 성북구 돈암동으로 향했다.


돈암동은 묘하게 균형 잡힌 동네였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았다.

오래된 골목과 새 건물이 공존했고, 학교와 집 사이의 거리는 익숙해지기 쉬웠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조금 숨을 돌렸다.

이미 여러 번 이사를 겪은 뒤였기에, 더 이상 울지 않았고 크게 흔들리지도 않았다.

대신 마음속에 조용히 쌓여 있던 감정들이 스며 나왔다.


돈암동에서의 나는 이전보다 단단해져 있었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되, 완전히 닫지는 않았고

말이 적지만 생각은 깊었다.

이사를 많이 한 아이 특유의 감각—

어디에 가든 살아남을 수 있다는, 하지만 완전히 뿌리내리진 않는 감각을 갖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미아동은 시작,

풍무동은 적응,

잠실동은 경쟁,

돈암동은 정리였다.


그 모든 장소들은 지도 위에 점처럼 흩어져 있지만

내 안에서는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다.

나는 이사로 인해 자주 흔들렸고,

그 흔들림 속에서 나만의 중심을 만들어 왔다.


학창시절은 그렇게,

장소가 나를 키웠고

이동이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안다.

어디에 있든,

나는 이미 여러 동네를 지나온 사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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