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꿈
나는, 채식주의자다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전날 밤, 그녀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피가 흥건한 마당.
붉은 살점이 햇빛 아래에서 천천히 식어가는 장면.
누군가 웃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칼을 들고 있었다.
아침 식탁에서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제 안 먹을래.”
남편은 웃었다.
농담인 줄 알았다.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는 얼굴을 붉혔다.
고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식단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녀가 속해 있던 세계를 거부하는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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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
처음엔 다들 가볍게 여겼다.
다이어트겠지, 변덕이겠지, 금방 돌아오겠지.
그러나 그녀는 단호했다.
고기의 냄새가 배어 있는 국물도,
기름이 튄 프라이팬도,
냉장고 안의 붉은 비닐도
그녀에겐 폭력처럼 느껴졌다.
“왜 이렇게 예민해졌어?”
남편의 말은 타박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음이었다.
그는 그녀가 예전처럼 조용하고,
튀지 않고,
말 잘 듣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무난한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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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족이라는 이름의 압박
명절 식탁에서 고기를 거부하는 일은
가족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과 같았다.
“세상에 고기 안 먹고 어떻게 살아?”
아버지의 목소리는 높아졌고
어머니는 눈치를 보며 접시를 밀어 넣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거부는 공격이 아니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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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몸이 말하기 시작하다
점점 그녀는 말이 줄어들었다.
대신 몸이 먼저 반응했다.
살이 빠지고
눈빛이 깊어졌다.
피부는 창백해졌지만
어딘가 단단해 보였다.
그녀는 말했다.
“나는 이제 해치고 싶지 않아.”
그 말은 고기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기대,
누군가의 욕망,
누군가가 정해 놓은 ‘정상’이라는 틀.
그녀는 그 모든 것에서
조용히 물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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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는 폭력적이었을까
남편은 점점 그녀가 낯설어졌다.
예전엔 말없이 맞춰주던 사람이
이제는 아무 말 없이 거부하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그저 고기일 뿐인데.’
하지만 그녀에게 그것은
‘고기’가 아니었다.
피와 살과,
억지로 삼켜왔던 시간의 덩어리였다.
어쩌면
그녀는 고기를 거부함으로써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선택한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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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식물이 되고 싶다는 말
어느 날 그녀는 말했다.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어.”
움직이지 않고
누구도 해치지 않고
햇빛만으로 숨 쉬는 존재.
사람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점점
사람의 세계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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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남겨진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왜 평범하게 살지 못하냐고.
그러나 누군가에게 평범함은
숨 막히는 틀일 수 있다.
그녀는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폭력적인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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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매일 무엇을 삼키며 살아가는가.
고기일까.
아니면 침묵일까.
누군가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 순간,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어쩌면
그가 가장 솔직한 사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