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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박 Dec 03. 2021

아버지와 등산 사고

"팽~! 흐흥~!"

거실에서 전자책을 읽고 있던 내 귀에 또다시 코푸는 소리가 멀찍이서 들린다. 나는 소리를 지른다.

"아버지! 코 풀지 말라니까요!"

안쪽 서재에서 아버지가 대답하신다.

"요령껏 푸니까 괜찮아..."

나는 다시 전자책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벌떡 일어난다.

"내가 자꾸 잔소리를 해야 하지!"

내 옆 자리에서 TV를 보던 엄마를 지나 아버지 서재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엄마는 지쳤다는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 또 잊고는 또 풀어..."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늦은 퇴근을 한 날이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엄마가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은호야, 아빠가 산에서 넘어졌다는데... 내일 병원에 가자고 하는데 너무 다쳐서... 산에서 넘어졌다고 아저씨들이 5분 전에 데려다주고 갔는데..."

소파에 앉아있은 아버지의 오른쪽 얼굴이 시퍼렇게 멍든 채 반대편의 두 배로 커져있다. 오른쪽 눈은 너무 부어서 떠지지도 않는다. 윗입술은 부어서 오리주둥이처럼 위쪽으로 솟았다. 솟은 입술 아래로 발음이 새는 대로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일단 씻고 내일 병원에 가면 돼."

나는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말이 돼요? 얼른 일어나세요. 엄마! 내가 차 빼서 나올 테니까, 아버지 외투만 입혀서 병원으로 가자!"

엄마는 아버지 외투를 찾아 입히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엄마가 펼친 외투를 뒤로 밀고 욕실로 향했다.

"잠깐만, 얼굴 좀 씻고..."

이 와중에 욕실 거울을 보고 얼굴을 씻으려는 아버지는 엄마와 나는 간신히 말렸다. 얼굴 대신 눈 주위만 물로 씻어낸 후 이번에는 머리를 빗기 시작하셨다. 왼쪽 팔도 다쳤는지 움직이지도 못한 차 모든 걸 오른팔로만 하신다.

"지금 머리를 빗는 게 중요해요?"


화가 난 나는 일단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우리 동 앞으로 가져오려고 나갔다. 내려가는 길에 전화가 울려 꺼내보니 남동생 동진이다.

"어, 웬일이야? 나 지금 병원에 가는 길인데..."

"병원은 왜?"

"아버지가 오늘 산에 가셨었는데, 얼굴이 두 배로 부어서 돌아왔어. 말도 못 하게 멍들고 부었어. 팔도 다친 거 같아. 일단 응급실에 가려고. 가서 상황보고 전화할게. 저번에 상가 앞에서 넘어진 게 얼마나 지났다고... 미치겠어. 그런데 넌 왜 전화했는데?"

"어, 아니 안 쓰는 태블릿 있나 물아보려고 했는데... 병원 가서 알려줘."


그 사이에 엄마가 아버지를 모시고 내려오셨다. 조심스레 차에 타고 엄마에게 물었다.

"아주대병원 응급실로 가면 되지?"

"아니, 분당 서울대병원."

"저번에 넘아지셨을 때 아주대 갔잖아."

"몰라, 오늘은 분당 서울대로 가. 네 아빠 뇌신경과도 다니니까."

"아, 그렇지. 진료 기록이 있는 게 낫겠구나. 알았어요."


분당 서울대로 방향을 잡고 운전하는데 계속 화가 치민다. 왜 우리 아버지는 조심하지 않는 걸까. 왜 평소에도 건강관리라고는 하지 않는 걸까. 왜 이렇게 힘들게 돌보아야만 하는 걸까. 나는 어쩌라고. 나는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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