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어릴 때 부모님 친구 모임에 가는 게 제일 싫었다. 자주 보지 않아서 낯선 어른들과 그들의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내겐 조금 힘든 일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어딘가에서 놀고 있을 때 낮아있는 엄마의 등 뒤에 엎어지듯 기대에 쉬었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학창 시절에 매번 반이 바뀌는 일도 내겐 고역이었다. 익숙해진 친구들과 이별한 후 새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부담감이란... 그렇게 다시 익숙해진 친구들과 다른 반이 되어서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다시 연락하는 법도 몰랐다. 인터넷도, 삐삐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더했다. 1학년 7반 친구들을 2학년 8반이 되어서 만날 일은 없었다. 집에서 학교 내 교실로 들어가 생활하다 다시 집으로 들어오는 생활이 12년이나 반복되었다. 아빠의 친구나 내 친구가 집으로 놀러 오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던 엄마의 성향도 약간의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남동생이 고등학생인가 대학생이 되던 시절부터였나. 엄마는 어느덧 친구들의 방문을 환영하는 성향으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내향적인 사람에게 긍정적이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앞집에 살던 정희 언니는 숙명여대 화학과 대학생이었다. 그 언니의 엄마와 우리 엄마는 지금도 가끔씩 연락하는 절친이다. 그 시절 우리 반도 아닌 '대화'라는 이름의 친구와 나는 정희 언니에게 영어와 수학 과외를 받았다. (같은 반도 아니고, 어떤 인연으로 대화와 내가 함께 과외를 받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대화는 말씨가 조곤조곤했지만, 유머러스하고 사교적이었다. 정희 언니는 살짝 왈가닥에 유머러스하고 활동적이었다. 영어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다. 정희 언니는 내향적이고 딱딱한 나보다 대화를 더 편하게 여기는 듯했다. 나는 대화랑만 있거나, 정희 언니랑만 있는 상황이 불편했다. 엄마는 정희 언니의 활발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을 종종 칭찬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내게 좀 문제가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특히 정희 언니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언니의 글씨체도 따라 하고 말투도 따라 했다. 그 시절 언니는 종로 파고다학원에서 영어회화를 배웠다. 나는 대학 입학 후 강남 파고다학원에서 영어회화를 배웠다. 정희 언니처럼 되려고 노력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향적인 사람을 꺼리게 되었다. 동성친구든 이성친구든 내향적인 사람은 답답했다. 대학교 1학년 첫 미팅에서 내게 호감을 표현했던 성호도 내향적이었다. 그때 내 눈에 성호는 답답하고 숙맥인 남학생일 뿐이었다. 그렇게 내향성은 좋지 않고, 외향성이 좋은 것인 양 40여 년을 살아왔다.
세상엔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집 안에서 지내야만 했다. 만남도 모임도 줄어들었다. 그렇게 혼자 지내야 하는 시간이 늘었는데, 나는 편안하고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내 본성을 찾은 느낌이랄까? 내 집이 다른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헤매다 내가 있던 곳이 내 집이란 것을 깨우친 듯한 느낌이었다. 세상이 도와주어 내향적이어도, 혼자여도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책을 읽는 시간이 고요하고 행복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18년째 다니고 있는 직장 속에서의 내 모습에도 회의감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 늘 열적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하는지 의심스러웠다. 외부 네트워킹이 리더십의 필수요소인 이유가 궁금해졌다. 오늘 이후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과 더 이상 명함 교환을 하기 싫어졌다. 내 인생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사람들과만 교류하고 싶어졌다.
하고 싶은 일도 달라졌다. 나는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책을 갖고 싶어 해도 읽지는 못했다. 불과 작년까지도 읽은 책 보다 사들인 책들이 많았다. 그저 책을 구입하면 그 안의 정보와 지식이 내 것이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 천천히 책을 읽어보았다. 책을 읽는 내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지 않고, 지금 읽는 부분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책 읽기가 즐거워졌다. 직장에서도 어서 빨리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 책 읽을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다. 이렇게 나만의 세계를 갖는다는 게 즐거울 줄이야. 누군가와 함께하는 세계만이 정답인양 살았다. 그러나 나는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 본성에 충실하게 살려고 하면 할수록 더 내성적이 되었다. 좀 더 알아보고 싶은 사람과 교류할 때도 식사 한번 대접하자는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직장에서 스피치 교육을 받았다. 8주간 애써온 강사는 매사 성심성의껏 교육에 임했다. 마지막 수업에는 수업에 참여한 연구원들에게 책도 한 권씩 선물했다. 얼마 전 강사님을 위한 책 선물을 생각했었다. 문득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녀를 언제 또 만난다고. 내가 선물을 하면, 남들을 어떻게 볼까. 의미 없는 관계에 굳이 선물까지." 그래서 생각했던 선물을 준비하지 않은 게 조금 후회되었다.
퇴근 전에 그녀에게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생각했던 책을 보냈다. 나보다 나이도 경력도 어린 사람이지만 '선생님'이란 표현이 정확했다. 말하기 기술뿐만 아니라, 일에 임하는 자세와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교육받은 기분이다. 매사 꼼꼼한 코멘트로 나의 말하기 향상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감사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내 성향에 충실하느라, 다른 사람에 대한 마음의 문까지 닫아버린 기분이다.
쑥스러운 마음에 마지막 수업을 기념하며 식사하자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이런 내 얘기를 들은 후배들의 표정이 썩 좋지는 않다. '리더면서 네트워킹이 너무 부족해.'라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매년 실시하는 내 리더십 평가 항목 중 외부 네트워킹 점수는 늘 제일 낮다. 그들의 표정 때문에 나의 소극적 행동이 더 후회된다. 그러나 내겐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성향으로 인한 후회와 자책을 많이 하지는 말자. 그렇다고 내 성향을 방어하는 일에 너무 빠져들지도 말자. 세상에 정답은 없으니까.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고, 겪은 상황에서 후회되는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면 된다. 다만 나를 너무 바꾸려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으련다. 어린 시절 나를 바꾸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소진된 에너지보다 내 성향대로 살았으면 다르게 경험했을 시간들이 조금 아쉽다. 있는 그대로, 다만 더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나가도 싶다.
오늘 밤엔 메리 파이퍼의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를 많이 읽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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