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이후 아버지의 두 번째 외래진료를 앞둔 지 일주일 전이다. 대학병원 시스템은 환자 진료에 필요한 모든 행위가 철저히 쪼개져 있다. 오늘 아버지는 엑스레이, 골밀도, CT 검사를 받아야 한다. 골절된 쇄골, 팔꿈치, 손목을 검사한다. 엑스레이실, 골밀도 검사실, CT실 안에서 어떻게 검사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버지가 입장한 후 두꺼운 문은 철저히 닫힌다. 검사 후 나온 아버지는 그 몇 분 동안 어떤 검사를 받았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신다.
경도성 인지장애가 시작된 지 5-6년은 되었나... 조금 전 일도 기억 못 하시는 아버지가 치매일까 안달하는 일은 이제 없다. 아버지가 수술받고 입원하신 동안 남동생과 나눈 대화 덕분이다. 동생의 장인어른은 내로라하는 중소기업 회장님이다. 80대인 지금까지도 사업과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50대 초반 은퇴 이후로 의욕과 기력을 잃으신 우리 아버지와 정반대다. 그러나 그렇게 에너제틱한 그분도 세월의 힘은 거스를 수 없다고 했다. 조금 전에 한 말을 중복하기도, 좀 전에 일어난 일을 잊기도 한단다. 그분까지 그렇다면 노화란 그런 거구나... 이제야 아버지의 증상이 질병이 아닌 노화라고 받아들인다. 질병이라고 생각할 때 한없이 무겁던 일이 노화라고 생각하니 이렇게 가벼울 수가! 그렇다면 나는 노화를 그리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닐까?
엑스레이와 골밀도 검사는 오후 다섯 시, 손목 CT 촬영은 오후 일곱 시 오십 분이다. 오늘은 반일 재택근무와 반차를 동시에 사용하는 근태를 입력했다. 오후 네 시에 집을 나서며 에릭 시걸의 닥터스 2권을 가방에 챙겼다. 두 개 검사 사이에 남는 두 시간 남짓의 시간은 책을 읽으며 보낼 예정이다. 엄마, 아버지는 병원 대기실에 틀어놓는 TV를 보면 되겠지.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엄마의 유방암과 아버지의 골절사고를 치료했다. 꽤 최근에 지어진 이 대학병원은 병원 치고는 실내 분위기가 꽤 따뜻한 편이다. 공간 대부분이 널찍하고, 인테리어도 나쁘지 않다. 투썸 플레이스도 있고, 스타벅스는 두 곳에나 있다. 엄마가 정기적으로 항암주사를 맞던 날, 2시간 정도의 주사 시간 동안 휴대폰으로 법륜스님의 유튜브 방송을 틀어드렸다. 그 사이 나는 잠깐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시거나 엄마 옆에서 책을 보기도 했다. 아버지의 짧은 수술 기간 동안에는 그리 여유가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제한된 면회 시스템은 보호자를 정신없게 했다. 코로나19 검사 결과 없이 보호자는 병실 출입을 할 수 없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첫날밤은 5인 병실에서 아버지 혼자 계셔야 했다. 간호사는 낙상 등의 사고에 대비해 보호자가 공용공간에서 밤새 대기하기를 원했다. 혼자 컴컴한 병원에 남기는 무섭고 억울했다. 남동생을 불러내 병원 지하 1층 식당 앞에서 새벽까지 수다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나는 이 병원을 고통은 있지만 여유를 느끼기에 나쁘지 않은 곳으로 기억한다.
아버지의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회복도 정상적이다. (아버지가 의사 지시대로 매일 해야 하는 재활 운동에 매우 게으른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나이 들면 만사가 귀찮다는 진리를 되뇌며 참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오늘 병원을 방문하는 마음은 가볍게 외출하는 듯한 느낌이다. 엑스레이와 골밀도 검사 후, 지하 식당에서 저녁부터 먹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니 오후 6시. 이제 1시간 30분 정도만 기다리면 된다. 남동생과 밤을 새웠던 바로 그 쉼터에 가서 아버지에게는 아메리카노, 엄마에게는 라테를 사드렸다. 거기서부터 그토록 읽고 싶던 닥터스 2권을 펼쳐 든다. 책을 펼치다 덮고 문득 방금 지나온 복도 벽에 늘어선 전시물들을 생각한다.
이 병원 혁신 파트라는 곳이 주최한 자율 혁신과제 전시물이다. 전시물을 만단 사람들은 각종(?) 의사와 간호사들인 것으로 추측된다. 병원에도 혁신 파트라는 곳이 있구나. 마지막 전시물에는 병원장의 인사말이 있다. 자율적인 혁신 과제 참여에 감사한다는 글이다. 과연 이게 "자율적인" 결과물이었을까? 회사라는 시스템이 지시하는 쓸데없는 부산물 중 하나라는 확신이 든다. 환자를 돌보느라 수면시간도 부족한 의사와 간호사에게 이 무슨 시간 낭비란 말인가. 엄마가 병실을 지키는 동안 새벽마다 무의식적으로 붕대를 풀어댄 아버지에게 호통쳤다는 레지던트가 생각났다. 엄마에게 그 레지던트가 저 무용지물을 만드느라 잠을 못 자서 짜증을 냈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엄마와 아버지 모두 웃으신다. 그래, 이제 우리 모두 웃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내일도 인생에 그리 의미 없는 일을 하러 출근하기 괴로운 마음으로 다시 책을 펼쳤다. 병원에서 읽는 소설 닥터스라니! (오가는 의사나 간호사가 제목을 본다면 조금 민망할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다시 읽고 싶어 검색해보니 절판! 다행히 중고서점에서 발견해서 당장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미국 1930년대 태생의 하버드 의대생들의 이야기. 그들이 성장하는 연도마다 미국과 세계 역사가 묻어있고, 인물들이 주고받는 지적이고 유머러스한 대화는 정말 부럽다. 나도 이들처럼 대화할 수 있다면! 나에게도 이들과 같은 사랑과 우정이 있다면! 주인공 바니의 여자 사람 친구 로라가 갑작스러운 이혼 후에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직장(당연히 병원)을 찾는 장면이다. 나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아볼까. 부모님에게 직장에서 내가 기대하지 않던 위치와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고 말을 꺼냈다. 두려운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당당하게 내 발로 걸어 나오면 어떨까? 혼잣말도 해본다. 너만의 일을 찾아보라는 아버지의 짧은 대답에 힘이 난다. 퇴사를 계획적으로 준비했던 번역가 서메리의 책이나 다시 사서 읽어봐야겠다.
아직도 1시간은 남았다. 엄마는 넓은 복도를 오가며 가벼운 걷기 운동을 한다. 나는 다시 닥터스에 빠져든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던 한 달 전은 어디로 갔는지. 너무 불행하고 고통스럽던 순간도 지나고 보면 별 일 아닌 듯하다. 당시의 불행과 고통을 좀 더 현명하게 받아들일 줄 알았다면 지금 덜 민망할 텐데. 남동생 내외는 결혼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본인의 집이나 양 부모님 댁에서 이러저러한 사고를 보기도 겪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나보다 한 살이 어린데도 상당히 의연하다. 메리 파이퍼는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에서 나이 들수록 인생의 모든 사건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40대 중반인데도 "대응력"이 매우 떨어진다.
한 달 전의 행복지수 최저점이 한 달만에 중간 이상으로 올라왔다. 몇 달 전에 봤던 사주에서 올해는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해지는 해인 것 같다 했다. 오늘 병원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두 가지는 분명해졌다. 내 인생의 남은 시간 동안 읽고 싶은 책들을 원 없이 많이 읽고 싶다. 다시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있어도 올해보다는 조금 더 의연하고 싶다. 나머지는 차차 더 분명해지겠지. 오늘의 횡설수설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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