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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박 Dec 04. 2020

자괴감

1년 후배가 먼저 상무님이 되었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다. 2015년 당시 팀장님이 병가휴직을 시작하셨을 때, 팀장 대행은 내가 아니라 그녀였다. 이러한 인사 발령을 결정한 당시의 상무님은 당황스러우면서도 말간 눈빛으로 말했다.

“당신이 아니라 K라고 사전에 얘기했어야 했군요.”

나는 당당했다. 상사, 게다가 임원에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큰 소리를 쳤다. 공식적인 팀장 대행 발령 이전까지의 대행 업무는 내가 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억울하고 서운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누구도 나에게 그런 배려를 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조직은 그저 더 적합한 자리에 적합한 사람을 넣으면 그만이었다.


2017년에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넘는 고령 사회가 되었다. (참고로 유엔 등 국제기구는 65세 인구 비중이 7%가 넘으면 고령화 사회, 14%가 넘으면 고령 사회, 20%가 넘으면 초고령 사회로 구분한다.) 그러나 43세라는 내 나이에 대한민국이 고령 사회가 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체감할 수 있는 곳은 파고다 공원이 아니라, 수천 내지는 수만여명이 모여 일하고 있는 사무실이었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에서 대기업 건물 하나만 푹 퍼다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나이 순으로 나래비 하늘 높이 올린 드론으로 내려다본다고 상상해보자. 그 모은 틀림없이 역삼각형일 게다. 아래쪽이 꼭짓점이고 위쪽이 가로변인, 즉 젊은 직원들보다 높은 연령의 직원수가 훨씬 많은 구조 것이다. 직장 내 고령화는 모든 조직에서 동일하게 벌어지지 않는다. 좀 더 빨리 나타나는 조직과 더디게 나타나는 조직이 있다. 내가 일하는 곳은 후자였고, 지난주 나는 그 결정적 체험을 하고야 말았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짧은 후배가 나의 상사, 그것도 나보다 연봉이 3배쯤은 높은 임원으로 진급하는 것을 보는 경험 말이다.


매우 놀랐다. 부러웠다. 그리고 잠시 몇 분간 우울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결혼도, 출산도, 부동산 매입도 하지 않은, 이미 가지고 있는 수많은 것들을 잊게 만드는 가지지 못한 것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가지지 못한 리스트가 한 줄 추가되었다. 임원 진급.


이미 예정되어 있던 직속 상사의 직책 상승에 대한 축하인사까지 잠시 잊었다. 팀원과의 방에서는 맘에도 없는 “ㅎㅎㅎ” “ㅋㅋㅋ”를 날리며, 축하 화분을 보내야겠다는 누가 봐도 어색한 문장을 날리고 있었다. 그렇게 평정을 찾고, 성숙한 사람인양 태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머리와 가슴에서는 답 없는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나는 해둔 게 뭐가 있지... 나는 무슨 낙으로 살 수 있지... 나는 집도, 남편도, 자식도 없는데, 직장에서 성공도 못했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슬슬 철이 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에 아무렇지도 않다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자괴감이나 우울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이것 또한 시간이 지나면 어쩌면 기억조차 나지 않을 것임을, 더 나쁜 일이 생기면 이 일조차 행복했다고 회상할 것임을 알고 있다. 너무 빨리 이 생각과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있었다.


가능하면 왜 K가 상무가 되었냐는 험담은 하지 않기로 했다. 솔직히... 상무가 될법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더 솔직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그 자리에 당당하게 오를 자격도 자신도 없기 때문이다. 본인도 잘하지 못할 자리에 남이 왜 그 자리에 갔냐고 투덜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진급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부정적인 의사를 표현할 때는 약간의 쾌감을 느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당신도 꼭 그 자리에 오르라는 주위 사람들의 격려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가만히 잘 생각해 보기로 했다.


잘 생각해보면 나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내 주변에는 더 많은 경력과 자질이 있어도 내가 앉은 팀장 자리에 도달하지 못한 동료 선후배도 많았다. 학창 시절 소풍이나 수학여행에서 하는 자리 뺏기 게임은 앞으로 겪게 될 현실을 연습해보는 가상 게임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잠시 몸 담았던 어느 사업부에서 40-50대 직원들이 한 방으로 밀려나 중요하지 않은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본 게 벌써 10년 전이다. 다른 조직에서 같은 사람이 위로 올라갔다가 아래로 내려오는 상황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었다. 그것이 그저 타 부서의 선배들 일이지 나에게 칠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화들짝 놀라고, 상심하고, 좌절하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미 많이 겪고 있는 일이었다. 이 상황에 대해 분개하고 원통해하는 것은 내가 특별하다는 자만심과 다를 바 없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애청자였던 내가 반복 시청을 통해 깨달은 몇 가지 중 하나는, 내가 대단하는 생각만 버려도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는 것이다. 임상심리학자 허지원 교수는 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 "우리는 그 정도로 대단하지는 않다"라고 얘기했다. 나는 그저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10년 전에 다소 충격적인 중년 직장인의 뒷방 신세가 이제는 당연한 수순처럼 받아들여진다. 나는 그와는 다른 길을 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자유쯤이야 하느님도 귀엽게 봐주실 것이다. 그리고 진급한 사람들보다 적은 업무와 책임, 조금 더 많은 시간적 자유와 편안한 관계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지혜가 더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허지원 교수는 수많은 신체적, 정신적 질환을 판정받지 않고 사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했다. 그리고 행운을 받은 대가로 조금 더 열심히 살아도 괜찮다고 덧붙였다. 특별해지지 못해 슬퍼하기보다 평범한 일상을 더 열심히 살아내는 나는 위대한 직장인이다.


* 이미지 출처 https://sloanreview.mit.edu/article/rationalizing-yourself-out-of-a-promotion/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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