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영지라고 합니다. 이제 공무원 생활 10년을 조금 넘긴 7급 공무원입니다. 인터뷰를 통한 독자들과의 소통은 처음이라 많이 떨리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설레는 일이기도 하네요. ‘공무원’과 ‘작가’라는 두 개의 일 사이에서 여전히 고민이 많지만 이런 만남을 통해 제가 있어야 할 자리를 서서히 찾아가리라 믿고 있습니다.
현직 공무원으로 일하시면서 책 한 권을 써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널리 알리기도 어려우셨을 테고요. 어떠셨나요? 어떤 계기로 글을 쓰시게 되었는지 출간 과정까지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때는 2019년입니다. 2019년 1월부터 6개월 간 육아를 위해 오전에만 일하는 주 20시간 ‘시간선택제’ 근무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퇴근 후에는 아이 손을 잡고 미술관, 박물관 등 전시회를 찾아다녔어요. 그렇게 찍은 사진과 전시 감상평을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전시회나 독서 후기를 올리다가 차츰 동 주민센터에서 일어나는 일상도 쓰기 시작했어요. 즉 반쪽짜리 공무원으로 근무를 전환한 것이 에세이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시간선택제 근무를 시작하고 처음 며칠간은 이제 막 공무원이 된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업무를 다시 배우는 게 부담되었습니다. 제가 선택한 결정에 대한 후회감이 밀려왔지만,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글을 통해 그 감정들을 정리했어요. 글을 쓰다 보니 제 직업인 공무원에 대한 고민도 같이 깊어졌는데요. 특히, 10년 이상 어린 후배 공무원들과 함께 민원업무를 보면서 그 친구들이 10여 년 전 제가 경험했던 시행착오를 똑같이 겪으며 힘들어하는 모습에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문제인걸까?’ 수많은 질문들이 떠올랐고 그때마다 저의 감정과 생각들을 글로 표현했습니다. 오래전 기억 저편에 꾹꾹 눌러놨던 것까지 끄집어내어 한 편의 글로 정리하고 브런치에 발행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6월 어느 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발행한 공무원에 대한 글을 보고 출간을 논의해보고 싶다면서요. 저에게는 제안 자체가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어요. 글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출간이 가능할까 싶기도 했죠. 하지만 출판사와 책에 대한 방향을 논의하고 대략적인 목차를 정리하면서 ‘한번 해보자’라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후 2019년의 절반의 기간 동안 일요일 오후와 저녁시간은 집 근처 카페에서 거의 보냈습니다. 커피 한 잔과 작은 노트북을 앞에 두고 한 편씩 글을 써냈습니다. 그렇게 모은 글들을 정리해 작년 12월 말 최종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그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무척 홀가분한 기억이네요. 다들 일과 글쓰기를 병행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하시는데요. 오히려 제 직업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있었기에 일에 더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직장에서 순간순간 애매했던 감정을 글을 통해 점검하고 성찰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이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애썼다, 오늘의 공무원』이 올해 7월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출처 : 허밍버드 출판사
공직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일반 직장에서 계셨다고요. 십 년여 전 공무원 사회에 처음 발을 들일 때, 일반 회사와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이었나요? 달라서 가장 힘들었던 점에 대해 들려주셔도 좋겠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절대 튀지 마, 여기선 그래야 살아남아!’라는 공무원의 암묵적인 룰이었습니다. 공직 초기 제가 바라본 공무원 조직에서 ‘튀는’ 건 굉장히 위험한 시도처럼 보였어요. 그때의 공무원을 두 부류로 나누면 튀어서 완전 잘 나가든지 아니면 영원히 납작 엎드려 있든지 둘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일반 기업에서 반도체 장비의 해외 수출 업무를 약 7년 정도 했었습니다. 일반 기업에서는 더 많은 물건을 팔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경쟁사보다 더 잘 만들어 구매자의 눈에 띄어야 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이 되고 보니 ‘눈에 띄는 것’은 새삼 다르게 다가왔어요. 눈에 띄는 옷차림과 말투, 남다른 태도는 늘 저를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었습니다. 차라리 능력이라도 뛰어났다면 조금 더 나았을 텐데요. 제가 딱히 뛰어난 능력자는 아니어서 그런 애매한 위치가 오히려 저를 더 힘들게 만든 것 같아요. 공직 초반 몇 년은 늘 그런 애매함이 저를 괴롭혔고 또 방황하게 만든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공무원으로의 이직 초기,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나다움’을 지우며 살아가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사실 ‘나다움’에 대한 고민은 공무원이 된 후 꽤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습니다. 철밥통, 공무원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현이죠. 제가 안타까운 건 이 단어 자체가 가진 고정적인 이미지에 너무도 많은 공무원이 (공직 초반의 혼란기에) 스스로를 가둬버리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나의 정체성은 희미해지고 철밥통 이미지 속 한명의 공무원으로 살아가게 되는 거죠. 저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저를 공무원의 이미지로 보는 게 많이 불편했습니다. 어딜 가든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수많은 편견의 프레임이 저를 둘러싸는 걸 종종 느꼈습니다.
사실 공무원을 둘러싼 오래되고 뿌리 깊은 조직문화와 직업에 대한 편견들 속에서 나다움을 가지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개인이 오롯이 혼자 감당하기엔 버거운 것이죠. 그렇게 공무원 개인이 가진 ‘나다움’이 점점 사라지는 게 많이 아쉬워요. 특히, 공직에 첫발을 들인 후배 공무원들의 얼굴에서 차츰 생기가 없어져 가는 걸 바라만 봐야 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나다움이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스스로를 공무원 프레임 속에 가둬두었어요. 그래서 스스로 공무원에 대해 가졌던 고정관념과 편견부터 버려야 했습니다. 그 외에도 저를 조직에서 뚝 떼어놓기도 하고 공무원이 아닌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나를 제대로 보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습니다. 제가 나답게 일을 하며 스스로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당당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게 비쳐지는 공무원인 나의 모습도 빛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다움’은 그래서 늘 필요합니다. 많이 힘들겠지만 저뿐만 아니라 많은 공무원이 포기하지 않고 나다움을 찾아 나서길 바랍니다.
‘나는 이 조직을 다니는 게 부끄러웠다’ 에서 일을 시작하던 10년 전과 지금 작가님의 솔직한 심정을 들려주셨어요. 공직이라는 조직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뀌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지난 10여 년의 시간동안 개인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제가 공직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공무원이란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걷어내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저를 바꾼 것은 바로 개방성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수시로 새로운 업무를 맡기도 하고 낯선 사람들과 함께 일할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공무원 조직의 폐쇄적인 특성상 새로운 업무를 맡으면 부담감이나 두려움이 먼저 앞섭니다. 하지만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리고 나니 새로운 것은 일종의 기회라고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늘 하던 업무가 아니었기에 새로운 지식과 경험, 그리고 그 분야 전문가들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바라볼 때, 귀찮은 것이 아닌 뭔가 배울 거리로 본 거죠.
그런 관점의 변화는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과제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준 것 같습니다. 늦은 나이에 홀로 어학연수를 떠난 것, 대학원 공부, 후배들에 대한 멘토링, 아침 스쾃 등. 그런 것들이 제가 일상에서 하나씩 실천해온 결과들입니다. 그리고 저의 소소한 공무원 일상을 글로 쓰기 시작한 것은 수년 동안 머릿속에서만 뱅뱅 맴돌았던 고민과 성찰을 주제별로 하나씩 정리하고 풀어내는 작업이었습니다. 당시 짧은 기간에 꽤 많은 글을 쓸 수 있었던 게 지금 생각해도 좀 놀랍습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제 머릿속에는 꽤 복잡한 생각들이 서로 엉킨 채 들어있었던 거죠. 글쓰기는 생각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과정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네요.
지난 10여 년의 과정을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관점의 변화’ ‘개방성’ ‘실천’ 그리고 ‘정리(글쓰기)’입니다.
출처 : 허밍버드 출판사
사람들이 공무원에 대해 쉽게 갖는 편견들에 대해서도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철밥통이라 좋겠다’던지, ‘공무원스럽다, 혹은 공무원스럽지 않네’ 같은 말들. 그런 것들에 대처하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과거에 지인들과 함께 밥을 먹는 자리가 있었어요. 갑자기 어떤 분이 저에게 “철밥통”이라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무리에서 유일한 공무원이었던 저는 그 순간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했어요. 솔직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는 게 더 정확하겠죠. 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그냥 어색하게 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1년쯤 지나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는 조금 달랐어요. “공무원 나리”라는 호칭으로 저를 장난처럼 부르는 분이 있었는데요. 처음에는 살짝 언짢은 기분을 표시했죠. 하지만 두 번째 저를 다시 그 호칭으로 불렀을 때는 그분에게 다가가 ‘그렇게 부르지 말아 달라’고 단호하게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저의 반응에 그 분은 당황하면서 바로 사과를 하셨고, 그 후 제대로 된 호칭으로 저를 불러주었죠. 그때 깨달았어요. 상대방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상황에 따라 적절한 방식을 찾아야겠지만) 분명하게 상대가 알 수 있도록 나의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침묵과 회피는 어쩌면 그분들에게는 인정이나 그렇게 계속해도 된다고 허락해 주는 것으로도 비칠 수 있거든요.
때론 타인보다 나의 감정이 더 존중받아야 할 때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저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나를 지키기 위한 작은 용기들이 하나씩 모이다 보면 언젠가는 변화가 보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뭐가 안 되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애썼다, 오늘의 공무원』은 이제 공무원으로 첫발을 뗀 사람, 일과 사람 사이에서 고민을 안고 있을 n년차 공무원, 가까운 지인이 공무원인 사람 등 생각보다 다양한 분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란 생각이 들어요. 영지 작가님은 어떤 분에게 이 책을 가장 권하고 싶은가요?
출간을 제안 받고 가장 먼저 고민을 했던 부분도 ‘누구를 위한 책을 써야 할까’였습니다. 공직에 대한 저의 첫 번째 글, ‘나는 이 조직을 다니는 것이 부끄러웠다’에서 느껴지듯 공무원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기대감이 현실에서 무참히 깨지고 많이 힘들었던 ‘10년 전 나’를 위로하는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가장 먼저 가닿으면 하는 분들은 이제 막 발령을 받은 신참 공무원들입니다. 공무원이 되어 모든 것이 낯설고 혼란스러울 때, 문득 이 책에서 발견한 비슷한 누군가의 모습을 통해 공감하고 조금은 위로받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일 자체가 갖는 의미, 사명감, 사람 등 많은 요소 중에서도 공무원으로 일을 계속하게 하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책에는 유독 제가 공직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관찰과 개인적인 느낌이 상당히 많이 나와요. 공무원의 일이라는 것도 그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다양한 가치, 더 나아가 사명감이라는 더 깊은 의미도 가질 수 있다고 봐요.
공직의 시작점에서는 모두 혼자입니다. 하지만, 걷다 보면 분명 뒤처지는 사람, 앞질러 가는 사람, 동행하는 사람도 생기거든요. 누구나 비슷한 거리를 걷지만 종착점에서는 각자 다른 이야기를 간직한 채 도착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끈끈하게 신뢰를 쌓으며 걸어왔는지 아닐까 생각해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 둘씩 그렇게 쌓아 올린 사람들과의 신뢰와 그것에서 비롯되는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 이것은 그 어떤 것보다 공직 안에서 저를 버티게 하는 든든한 힘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읽고 있을 분들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어쩌면 지금 저는 인생의 또 다른 출발선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애썼다, 오늘의 공무원』의 출간과 함께 ‘글 쓰는 공무원’이라는 가보지 않았던 길을 막 걷기 시작했거든요. 낯선 길의 출발점에서 제가 바라는 건 공직 밖의 사람들이 공무원이란 직업과 그 안의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시선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전국 곳곳의 폭우로 인해 비상상황인 지금 이 시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고 있을 100만 명이 넘는 현직 공무원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님들에게 ‘공무원’이란 세 글자가 ‘공무원스러움’이 아닌 진정한 ‘공무원다움’으로 가닿을 미래의 그날을 기다려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