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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Aug 20. 2020

<애썼다, 오늘의 공무원> 영지의 고민상담실 오픈!

공시생, 현직자 그리고 공무원이란 직업이 궁금한 분들에게

<애썼다, 오늘의 공무원> 출간을 맞아 허밍버드 출판사에서 이벤트로 진행한 ‘현직 공무원에게 묻다, 고민상담 EVENT! 질문 답변 입니다.


현직 공무원인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민을 주신분들에게 답변을 이미 보내드렸는데요. 내용 공개를 허락하신 분들에 한해서 브런치에도 공유드립니다.
 
혹시라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이 또 있으시면 브런치 ‘제안하기’를 통해 저와 이메일로 소통이 가능합니다. 일과중에는 답변이 어렵지만 퇴근 후 또는 휴일에 시간과 사정이 허락하는 한 정성껏 답변드리겠습니다. 언제나 영지의 상담실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1. 흰**
안녕하세요. 먼저 작가님의 책 출간 축하드리며 좋은 책 만들어주신 작가님과 허밍버드에 감사합니다. 저는 현재 30대 중반의 백수입니다. 작년까지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가 올초 다리를 심하게 다쳐 일도 그만두고 쉰 지가 어느덧 6개월이 훌쩍 넘었습니다. 다리는 처음보다 많이 회복됐지만, 마음이 회복되지 않아 방황 중인, 백수이자 좋게 말해 예비 공시생입니다. 비정규직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보람 있는 날들도 많이 있었지만, 결국 미래에 대한 불안과 비전 없음을 느끼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려 합니다. 제가 하던 일의 비전이 없다는 것은 실제 그렇다기보다는 저에게 비전 없음을 의미해요. 제가 그 일을 지속해서 이어갈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기 때문입니다. 고용불안과 복지, 미래에 대한 불안 등 여러 가지 이유에 더해,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통해 혼자 힘으로 생계를 유지하고(가족의 생계도 더해서요.) 더불어 일에서 보람과 사명감도 느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습니다.
다만, 적지 않은 나이에 제가 공무원(9급)이 되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합격도 안 됐는데 김칫국 마시는 것 같아 민망하지만 저는 합격 이후도 적잖이 걱정이 됩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에 혹은 더 많은 나이에 공무원이 되신 분들과 함께 일하신 경험이 있으신지, 혹 있으시다면 함께 일하시는 동안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공무원도 적성이 맞는 사람이 있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지 : 흰**님, 적어주신 질문을 읽어내려가려니 꼭 제 얘기 같습니다. 예전에 제가 시험 준비를 결심하던 때가 생각났어요. 사실 저도 서른이 넘은 나이에 공무원 시험 준비를 결정했답니다. 그전까지 첫 직장이었던 중소기업을 7년 정도 다녔답니다. 말 그대로 영혼도 없이 ‘꾸역꾸역’ 다녔다고 보시면 됩니다. 대부분이 남자 직원이었고 여직원에게는 회계, 총무 등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은 일이 맡겨졌답니다. ‘제가 하던 일’에 대한 스스로의 비전은 물론 회사에서도 저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는 걸 제가 결혼을 하고 더 뼈저리게 느꼈답니다. 10여 년 전 당시 여자 나이 서른은 뭔가 시작하기에는 꽤 늦은 나이였어요. 그럼에도 (지금 흰**님이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게) ‘오너’라는 한 개인에게 충성하는 사기업보다는 ‘공무원’이란 직업이 더 내게 가치가 있지 않을까라는 느낌을 막연하게라도 가졌답니다. 뭐 그래도 제일 매력적인 것은 결혼을 해도 육아휴직 등 남녀차별이 덜 하리라는 기대감과 안정성이었지만요.
적지 않은 나이는 6개월 정도 경험한 노량진에서의 수험생활에서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시간 관리에 대한 부분도 그렇고 짧지 않은 수험생활에서 게을러지고 싶은 다양한 유혹의 순간들을 나름 슬기롭게 이길 수 있는 ‘노련함’이 빛을 발할 수 있답니다.
그렇게 합격을 하고 발령을 받아보니 동기들보다 많게는 10살 적게는 5살, 저는 무척! 많은 나이의 합격자였습니다. 사실 저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요, 10여 년을 겪어보니 조직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은 ‘나이’보다는 ‘성격’이나 ‘태도’가 더 큰 요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내가 나이가 많고 사회생활을 했다는 이유로 나이 어린 동기들에게 먼저 ‘벽’을 치는 경우를 종종 봤거든요. 오히려, 나이가 많음에도 어린 직원들에게 더 배우려고 하고 먼저 다가가는 분들이 조직에서도 좀 더 ‘대하기 편한’ 사람으로 평가되더군요. ‘나이 많은’ 9급 공무원이었던 제 경험상 ‘나이’는 그다지 높은 벽이 아니었답니다. 더욱이 요즘은 경력직 임기제 또는 전문직 공무원분들이 특별 채용으로 많이 들어오고 있어서, 사실 나이가 많고 적음은 (제 경험에 비추어) 큰 의미가 없었다고 말씀드립니다.


공무원이 적성인 사람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적성에 맞는 업무를 ‘운이 좋게’ 계속 맡아야 한다는 조건이 하나 더 붙습니다. 공무원이 되시면 극과 극의 무척 다양한 업무를 해야 합니다. 대민업무, 허가, 인사, 공사, 행사, 예산, 지출, 선거, 홍보 등등. 그만큼 각 업무마다 담당자에게 요구하는 다양한 능력들이 또 있습니다. 문제는 그 업무가 요구하는 능력이나 재능(또는 열정)을 가진 공무원이 그 자리에 가는가 하는 겁니다. 제가 근무하는 조직은 약 3천 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인사부서의 2~3명 정도가 조직 전체 인원의 전보, 승진 등 인사를 급수별로 나눠서 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공무원 개개인의 적성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시스템입니다. ‘적성’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제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그때그때 맡겨지는 업무를 통해 내 안의 ‘적성’은 적극적으로 ‘발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발견 주체는 내가 될 수도 있고 동료나 상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습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해보기도 전에 ‘딱 내가 좋아하는 일이야!’, 또는 ‘내가 이런 건 못하는데...’라는 단정이 아닐까요. 요즘 코로나 시대 공무원들의 업무도 시시각각 없어지거나 또 새로 탄생하고 있습니다. 저는 누구든 공무원 조직 안에서 ‘적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바탕에는 흰**님이 막연하게나마 느끼시는 국가와 시민에 대한 ‘사명감’ 또는 ‘가치 있는 일’에 대한 나름의 소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 답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2.m**
공직에서 일한 지 10년째입니다. 그래서인지 영지님 책 읽으며 공감되는 것들이 더욱 많았습니다. 이젠 제가 여기 발 들였을 때 나름 똑똑하다고 생각해 내뱉었던 말들이 너무 부끄러운 연차가 되었습니다.
제 고민은... 상부에서 내려오는 지침이 불합리하다 여기면 너무 거친 발언을 하는 후배와 함께 일하는 상황이 좀 힘듭니다. 나도 그때는 그랬겠지 뭘 몰라서 아무 말을 하면서도 몰랐겠지라고 생각하려 합니다. 저보다 훨 대선배들도 계신데 묵묵히 일하시는 분들한테 이런 멍청한 지침도 진짜 다들 아무 말 안 하고 따르는 거냐는 식으로 분위기 끌어갈 땐 선을 넘는 거 같아 조마조마합니다. 좀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한마디 하자니 꼰대 될 거 같아 항상 말을 삼키고 또 삼킵니다. 그 사람 개인의 인성문제일 수 있으나 부드럽게라도 같은 공직에서 우리보다 훨씬 오랜 기간 동안 일하시며 많은 것을 겪은 분들께서 결정하신 사안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는 말자고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요.ㅠㅜ 영지님의 코로나 선거를 읽으며 많은 공감이 되어 글 남깁니다.
 
영지 : 저도 여전히 이 부분이 가장 어렵습니다. 그나마 코로나 선거를 쭉 돌아보면서 제가 함부로 뱉은 말 한마디에 대한 부끄러움을 깨달은 정도랍니다. 사실 저보다 저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직원도 있고 또 한편으로 그 말에 ‘사이다’ 같은 톡 쏘는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말씀하셨듯이 공무원 조직에는 20~30년을 말없이 묵묵하게 일해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톡톡 튀는 개성과 함께 개인주의가 익숙한 80~90년대생 젊은 직원들과 집단주의(조직이나 단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분위기) 조직문화에 익숙한 팀장님 또는 과장님들. 그 사이에 낀 7급의 어정쩡한 70~80년대 저 같은 공무원들이 또 있습니다.
사실 세 그룹이 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는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지 않을까요. 그 상황에서는 있는 그대로 상대의 문제를 직시하도록 하는 것도 또 나름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상사 또는 후배와 내가 단둘이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면 기회를 봐서 상대편의 입장을 중간자적 시각에서 던져줄 수는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팀장님 말이야, 내가 알기론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시는 분이야. 그런데, 성격이 좀 수줍어하시는 편이라 앞에다 대놓고 말씀을 못하셔. 표현도 잘 못하시고. 그러니, 우리가 좀 이해를 해야지 않을까?”, “후배 OO이 말이에요. 말은 좀 거칠지만 일에 대한 욕심도 많고 적극적이어서 제가 그 점은 많이 배우고 있어요.” 등등.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이런 말들이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전달되려면, 직원들 사이에서 나란 공무원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터에서 평소 많이 관찰하고 소통을 해서 내가 평가하는 당사자에 대한 나 스스로의 확신이 가장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가 던지는 말이 가지는 무게가 한없이 가벼울 수도 또는 한없이 무겁게 상대방에게 느껴질 테니 말이에요.
 
3.p**
공무원이 되어서 가장 기억에 남고 뿌듯했던 순간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공무원이 편하고 안정된 직업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 실제 공무원의 일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쉽고 편한 일인지 궁금합니다!!


영지 : 사실 지난 12년간의 공무원 생활에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7급 승진을 하고 내려 간 동주민센터에서 주민들과 함께 ‘마을지도’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할 때였습니다. 일명 ‘원룸촌’이었던 그 동네는 불법 주정차와 쓰레기 무단투기로 삭막한 도시생활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동네에서 초등학생부터 마을 어르신까지 10여 명 남짓의 주민들을 모아 마을에 대한 정체성을 찾고 동네 어디를 지도에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주민센터 공무원인 제가 할 일은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또 그걸 구현해 줄 예산이든 전문가이든 자원을 연결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몇 달 후 마을지도는 하나의 그럴듯한 지도로 만들어졌고, 100여 명의 주민들을 모셔놓고 완성된 마을지도를 감상하고 초등학생들이 그린 마을 풍경 전시회를 학부모님들을 초청해서 함께 축하했답니다. 마을 어르신부터 초등학생, 그리고 학부모님들의 뿌듯한 얼굴들까지. 제 공직 생활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공무원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만들어 내는 자리임을 그때 가장 선명하게 느꼈답니다.
공무원이 안정된 직업은 맞습니다. 사람이 아닌 법이 보호하는 자리인 만큼 쉽게 잘리는 자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편한 직업도 아닙니다. 특히, 국가 전체적으로 또는 지역의 비상상황(천재지변 등)에서 시민들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직업이기에 퇴근 후, 주말 그리고 휴일까지 반납하고 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 직장인과 가장 뚜렷하게 구분되는 점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사명감’은 늘 공무원이 가슴 한편에 담아둬야 하는 감정 중 하나입니다. 어찌 보면 좀 더 편하게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받아들이는데 꼭 필요한 감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 선거, 시험감독 등 주어진 고유 업무 이외에 시시때때로 공무원들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요구하는 일이 제 앞에 떨어집니다. 그래서 공무원이란 직업 결코 편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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