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떠오르는 이미지다. 이제 4일차를 맞이한 런던 자유여행. 어제 저녁 축구경기까지 보고 난 후 내가 느낀 건 이번 여행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내가 선물한 최고의 시간이 지금 바로 이 시간이라는 것이다. 아직 절반이 채 지나지 않은 여정이지만 이미 충분히 여정에 녹아들었고 즐기고 있고 심지어 여유까지 가진 느낌이다.
두번째 날 갔던 UCL과 런던대학. UCL 학생회관 벽에 붙은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학생들의 사진. 런던대학 내 칼리지 건물에서 'a bit of space'를 발견하고 나눴던 아이와의 대화. 그리고 캠퍼스를 바라보며 함께 마셨던 핫초쿄까지.
매일매일 매순간 나는 아이와 기적을 만들고 있다. 아이는 이미 이곳 런던에 푹 빠진 모습이다. 얼마나 그 마음이 지속될지 또 의지를 어떻게 발휘할지는 아이의 몫이다. 내가 할일은 남은 여정을 더 의미있게 가치있게 즐겁게 자연스럽게 즐길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날씨도 너무 좋다. 어제는 종일 해가 비쳤다. 경기장 스탠드에 앉아서 추위에 떨까봐 가져간 핫팩에 '오이스터 Oyster'교통카드가 쪼그라들었지만 그 나름대로 소소한 이벤트라고 생각하니 재밌기만 하다.
숙소는 비록 겨우 두 사람 누울 정도로 작지만 접근성도 좋고 깨끗하고 직원들은 더할나위 없이 친절하다. 조식이 특히 맛있다. 호텔 레스토랑도 조금 비싸긴 해도 맛이 괜찮다. 무엇보다 나와 아이는 런던의 살인적인 친절에 더 놀라는 중이다.
첫날 호텔을 찾기위해 전철역에서 나와 큰 여행가방과 보조가방까지 메고 근방을 두리번거리며 헤매고 있을때였다. 지나치던 젊은 여성이 길을 잃었냐며 물어봤다. 그녀의 걱정스런 표정과 목소리에서 잠시였지만 진심어린 관심과 여유를 나는 느꼈다. 아이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바빠보인다며, 예전에 우리도 그렇지않았냐며 안타까워 한다. 그렇다.
여유. 런던 그리고 런던 사람들에게는 '여유'란게 느껴진다. 그 느긋함 속에서 타인, 외국인,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남자, 여자, 20대, 30대, 40대, 50대까지. 연령과 성별을 가리지않고 낯선이에게 여기 사람들은 친절을 베풀었다. 심지어 지하철역 유료 화장실을 동전을 넣고 들어가기위해 앞에서 주춤거리는 중학생 아들을 보고 초등학교 1~2학년쯤 되어보이는 아이가 자기가 나오는 참에 같이 들어가라고 재촉하면서 기다려주는것이 아닌가. 약간 당황한 아들은 그 아이가 시키는대로 얼떨결에 화장실 안쪽으로 밀려들어갔다. 그렇다.
여기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타인에 대한 배려가 기본적으로 베인 곳이다. 3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오롯이 직접 모든 여정을 짜고 현지 사람들과 부딪혀가며 여행을 하기에 가능한 경험이었다. 첫날, 공항에 내리자마자 파업으로 예약한 기차를 타지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을때 역무원들은 물어보는 우리에게 '이렇게해라, 저렇게해라' 귀찮아하지 않고 안내해주었다.(결론적으로 효과는 없었지만ㅠㅠ) 그 과정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불편했다면 이렇게 그 순간을 기억하지는 못했을텐데. 최선을 다해 불편을 줄여주려는 노력을 보았던 것일까. 그날 시내로 표를 결국 환불하지는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호텔이 마냥 반갑기만 했다. 그랬다.
사람사는 곳은 비슷비슷하다.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서로 공감하고 배려하는 감정은 공통의 언어다. 어제 토트넘 축구장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와중에 30분을 기다려도 오지않는 149번 버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정류장 앞 아랍 음식점 가게 주인이 갑자기 내게 다갖오더니 몇번 버스 기다리냐고 물었다. 149번이라니까 정류장에 붙어있는 종이 한장이 가리키며 이번달 18일까지 그 버스는 이 정류장을 오지않고 우회한다며 다른 경로로 축구장을 가라고 알려주었다. 그에게 급하게 고마움을 전하며 다시 전철역으로 돌아가서 겨우 시간 내에 축구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영국이라는 나라. 런던이라는 도시. 그리고 이곳을 터전으로 삼고 살고 있는 사람들. 피부색, 문화, 언어, 영어 엑센트까지. 다양함이 과도하리만치 넘쳐나지만 낯선 사람들, 타인여 대한 배려만큼은 비슷하고 또 일정했다. 앞으로 남은 여정. 이 도시는, 이 사람들은, 나를 그리고 나의 아이에게 또 어떤 감동을 선사할지 새삼 궁금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