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방학 마지막 조정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 내 마음은 더 분주하다. 오랜만에 글쓰기를 위한 짧은 여행을 떠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검정색 옷가방에 간단한 옷가지 몇개를 넣고 모자만 담아둔 상자 앞을 또 한참을 서성인다. 최근에 산 분홍색 모자부터 손이 먼저 갔다. 무엇보다 이 모자는 가볍다. 그래서 착용감이 무척 좋다. 거기에다 파스텔톤의 은은한 색감까지 더해져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이것만 주구장창 쓰고 있다. 외부를 돌아다니는 일정이 아닌 내부에서 글만 쓰는 계획이라 이번 여행에서 모자는 내게 무척이나 유용한 물건이다. 동네 편의점 가듯이 편한 마음과 옷차림에 야구모자만큼 어울리는 물건이 또 있을까. 왜 이렇게 모자 이야기를 유독 많이 하는지 의아한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모자와 리더십은 꽤나 관계가 많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2024년 9월 1일 현재.
공무원이란 직업인으로 15년이 되었다. 개인적인 리더십에서 지난 15년이란 시간동안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9급 공무원에서 이제는 6급, 바로 팀장이 된 것이다. 리더로써의 첫 공식적인 직책이 주어진 것이다. 2017년 시청 축제부서에서 7급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입학한 MBA 과정. 학부를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마케팅분야로 석사를 꼭 한번 공부하고 싶었던 오래된 계획을 실천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공부를 시작하고 보니 마케팅보다는 조직행동론과 리더십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졸업 후에도 같이 공부했던 MBA 원우들 몇명과 리더십에 대한 스터디모임을 구성해서 현재도 매월 만나서 발표와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그 정도로 리더십에 대해 나는 진심인 사람이다. 과연 실전에서도 잘해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청 팀장이 되어 내가 주도하는 리더십은 실패다.
어설픈 연기로 흉내만 내는 리더로 6개월 정도 살아본 것으로 나는 무척이나 많은 것을 얻었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팀원 각각에 대한 성향을 고려하지 않은 점이다. 팀장인 내가 ‘익숙하고’, ‘좋아하고’, ‘선호하는’ 방식으로 팀을 이끌려고 한 것은 굉장히 오만한 판단이었다. 특히, 팀원마다 제각기 다른 속도를 맞추지 못한 문제는 내게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이끄는 방식은 어쩌면 그 다음 문제다. 팀을 이끈 경험이 없는 신참 팀장인 나는 과한 의욕을 바탕으로 과속을 했고, 그 과정에서 팀원 한 명은 휴직을 했고, 또 한명은 한동안 많이 아팠다.(다행스럽게도 지금은 회복해서 잘 다니고 있다. 감사하다)
예전 MBA에서 공부할 때.
리더십에 대한 이론과 다양한 기업 사례를 처음 접하면서 6급 팀장이 되면 각자 나름의 리더십이 자연스럽게 발휘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건 완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오히려 내가 팀장이 되고나서 리더십에 대해 원래 가졌던 수많은 개념과 틀이 철저하게 깨졌다. 팀리더십의 핵심은 리더에게 있다? 글쎄… 비록 1년이 채 안된 신참 팀장이지만, 이것만은 분명하게 깨닫고 있다. 리더가 리더심에 대한 소유권을 내려 놓을 때 비로소 진정한 리더십이 주어진다는 걸. 그리고 리더십을 줄 수 있는 사람은 팀장이 아닌 팀원이라고. 그걸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현재 내가 팀장으로 있는 시청의 팀조직이 아닐까.
우리 팀은 올해 1월 새로 만들어진 TF팀이다.
TF팀은 정책방향이 바뀌면 내일 당장 해체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조직이다. 그럼에도 나는 영원히 존재하는 팀 마냥 자기최면을 걸면서 1~2년 후의 업무까지 포함해서 다소 ‘공격적’으로 업무를 추진했다.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는 그 마음하고 조금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사실 공무원이 되어 팀장으로 첫 번째 팀을 정규조직이 아닌 임시 조직을 맡은 것이 오히려 내게 리더십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을 던졌다고 생각한다. 이는 동시에 팀원들에게도 다함께 힘을 모아 이 조직을 존치시켜야 한다는 ‘절실함’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도 같다.
초기 6개월의 어려운 시기를 잘 버텨낸 뒤.
이제 우리팀의 주도권은 내가 아닌 팀원들에게 넘어간 상태다. 매주 월요일 아침 팀회의 시간. 이제는 팀원들이 먼저 제안하고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회의시간 팀원들의 발언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나는 그저 자신의 의견을 자신 있게 말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다. 6개월 전만에도 내가 현재의 팀에 대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당시는 팀원의 갑작스러운 휴직을 시작으로, 기초자료가 거의 전무한 국가 공모사업 신청, 팀원들과의 불협화음 등 여러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그래서 내게는 팀을 끌어가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고,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내가 과연 팀장으로써 역량이 될까’ 자꾸만 위축되는 스스로의 모습에 ‘정신 똑바로 차리자!’고 얼마나 많은 다짐을 했던가.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면서 시간은 흘렀고.
지금 현재 팀의 상황은 거짓말처럼 그때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안정이 되었다. 변화의 중심에는 팀원들이 있었다. 그들 각자가 가진 개성과 함께 자연스럽게 발휘되는 적극성이 팀 분위기를 많이 바꾸었다. 일하는 시간은 일에 대한 고민으로 조용하지만 진지한 분위기, 점심시간은 30대 초반 나이가 가지는 조금은 가볍고 늘어진 분위기로 확 바뀐다. 그렇다.
리더는 모자와 같은 존재라는 말이 있다.
내 머리위에 올라타고 있지만, 가벼워서 계속 쓰고있다 보면 그 존재 자체 잊어버리는 존재. 하지만 모자는 따가운 햇살을 가려주고 머리를 감지 못하는 날 외모까지 보완해 주는 정말 요기한 물건이다. 등산, 조정, 웨이트 등 개인적으로 운동을 무척 좋아하는 나도 야구모자를 여러 개 가지고 있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옷차림에 따라 색상도 재질도 모양도 다른 모자를 번갈아 가면서 쓰고 있다. 팀장이 되고 10개월이 넘어가는 지금. 이제 나는 각 팀원의 모자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 머리위에 있으면서 팀원들의 약한 부분을 채워주고 가려주지만 일단 쓰고나면 있는지 없는지 잘 느껴지지 않는 그런 존재.
리더십의 발휘는 팀원들의 머리에 모자를 씌우는 일과 같다.
모자의 종류, 색깔, 기능은 또 달라져야 할 것이지만, 자외선 차단과 장신구로써 모자가 가지는 기능은 명확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모자는 무겁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한없이 가볍게 가볍게 그렇게 팀원들의 머리 위에 얹혀 있는 존재가 바로 진정한 리더가 아닐까. 그리고 리더의 무게감을 줄이는 데 핵심은 어쩌면 리더십에 대한 소유권을 내려놓는 것이 아닐지. 가볍고 편해서 늘 즐겨 쓰는 모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무겁고 불편해서 머리를 쪼이는 느낌때문에 썼다가도 금방 벗어 던져버리는 모자가 될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모자를 쓸지 말지에 대한 결정은 팀장이 아닌 팀원의 몫이다. 그래서 리더십의 주도권이 팀원에게 있다는 의미다. 현실에서는 종종 모자가 필요없는 팀원도 있기에, 팀장은 모자가 필요한 팀원에게 도대체 어떤 모자가 좋을 것인지 고민해 보는 것이다. 모자 좀 사본 경험자로써 조언을 보태자면 가격이 좀 나가도 최대한 가벼운 것이 좋다!
아, 이렇게 원고를 마무리했으니.
오늘 오후는 헬스장에 가서 운동으로 땀을 한번 흘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색깔의 모자의 써볼까? 하늘색, 검정색, 분홍색 모자… 이렇게 일상의 작은 활동에도 선택지가 많은 데 조직의 리더십은 오죽할까 싶다. 아무튼, 오늘은 바깥으로 보이는 하늘이 유난히 파랗기에 하늘색 모자로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