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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익숙함을 벗어던진 순간, 나다운 방향이 시작된다

제주여행에서 렌터카 선택이 내게 던진 이야기

by 영지
인생을 바꾸는 용기의 근육은 일상에서 키워진다!

영지=현O차만 타는 여자

(영지) "OO아, 현O차 있는지 물어봐줘"
(친구) "어, 알았어."
(영지) "나, 현O차밖에 운전 안 해봤어. 다른 차는 힘들어."
(친구) "마침 한 대 남아 있대."


그렇게 여행 2일 차 늦은 조식을 느긋하게 즐기고, 여행의 두 번째 숙소 근처 렌터카 사무실로 향했다.
12시가 넘은 시간.
사무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후기 사진 속 자동차로 꽉 차 있던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아, 성수기는 맞나 보다 싶었다.


텅 빈 주차장과 나의 불안

문득 드는 생각. 익숙한 현O차는 한 대도 없고 낯선 삼O차 한대만 덩그러니 주차되어 있었다.
‘혹시 상태가 제일 안 좋은 차량만 남은 건 아닐까?’


사무실 번호로 전화를 하니 여자 사장님이 5분만 기다려달라며 곧 온다고 하셨다.
렌터카 사무실 옆 공간은 어묵과 분식을 파는 가게였고, 두 공간은 살림살이 보이는 공간과 함께 연결되어 있었다. 공간이 꾸며진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아, 이 여자 사장님, 생활력 참 강하신 분이네"라는 말이 친구 앞에서 튀어나왔다.


사무실 옆 분식집에 놓인 긴 테이블에 앉자마자 갑자기 더위가 훅 느껴졌다. 깨끗하게 관리된 스탠드형 에어컨을 자연스럽게 켜고, 문을 닫고 자리를 잡았다.


익숙한 차 vs 낯선 차, 그리고 선택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주차장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차량을 한번 살펴보러 가보기로 했다.
가까이서 다시 확인해도 현O차가 아닌, 삼O차였다.

“아, 망했다!”


운전을 오래 했지만 운전 실력에 자신이 없었던 친구는 당연히 내가 운전해 줄 거라고 믿었고, 나도 그럴 거라고 했다. 단, 조건은 ‘내가 익숙한 현O차’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남은 차는 한 번도 몰아본 적 없는 차종이었다. 친구와 나는 조금은 미묘한 걱정스러움의 감정을 공유한 채 주인 없는 에어컨이 시원하게 돌아가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망설임을 넘어서

이윽고 여자 사장님이 나타났고, 렌트 계약서를 쓰며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보험부터 과태료까지, 오랜 경험이 바탕이 되어 꽤 깊은 노련함이 묻어나는 설명이었다.
사장님의 꼼꼼한 안내가 끝나고 그분이 나에게 “질문 있어요?”라고 물었고, 나는 “없어요”라고 간단히 답하며 바로 서명했다.


그때 드디어 친구가 삼O차에 대해 우려를 이야기했다.
사장님은 우리 표정을 읽은 듯 “지하에 다른 차가 몇 대 남아 있는데, 확인해 볼래요?”라고 제안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20분 더 걸린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말했다

친구는 바로 “좋아요”라고 했지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사장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아니요. 지금도 조금 늦은 감이 있는데… 그냥 새로운 차 운전해 볼게요.”


사장님은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표정을 거두고, 내게 “한번 끌고 와보세요”라고 했다.


할만하네요!

나는 바로 일어나 한여름 땡볕으로 뜨겁게 달궈진 자동차로 마음이 그새 바뀔까 다급하게 걸어갔다.
역시 처음 운전석에 앉아 바라본 계기판은 생소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버튼 몇 개를 조작해 보았다. 의외로 단순한 차량 구동에 그걸 금세 익히는 나의 감각에 새삼스럽게 놀랐다. 이런다고?


차량을 조심스럽게 주차장에서 빼서 사무실 입구 앞으로 끌고 왔다. 살짝 후진까지 곁들이며 방향도 바르게 주차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내가 말했다.

“할만하네요!”

내 앞에 선 두 여자의 얼굴에 그 순간 안도감이 번졌다.


과거의 나였다면

예전의 나였다면 아마 정반대의 선택을 했을 것이다.
늘 익숙한 차종을 고르고,
도전은 내 몫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타인의 시선과 인식에 익숙한 테두리 안에 가뒀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달라졌다. 아니 달라지기로 결정했다.
일상의 작은 것에서부터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다.


용기의 근육은 일상에서 만들어진다

렌터카 하나 고르는 걸로 뭘 그렇게까지 과도하게 해석하냐고?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일상의 작은 선택들이 인생의 큰 선택과 선명하게 연결됨을'


내가 사소한 선택에서 ‘영지스러운’(나다운) 결정을 하지 못한다면 인생의 큰 결정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걸 너무도 선명하게 느끼고 있다.


일상에서 작은 무게의 용기의 실천이 조금씩 쌓이고 쌓이면서

인생이라는 큰 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는 큰 ‘용기의 근육’이 결국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 날, 후진은 유연하게

드디어, 렌터카 반납 날.

원래 하루만 계획한 대여일을 하루 더 연장까지 했다.
이틀 동안 제주 여행의 편안한 발이 되어준 삼O차를 유유히 몰고 주차장에 들어섰다.
이미 차가 몇 대 더 돌아와 있었고,
주차장 안쪽의 그늘진 곳에 내 차를 유연하게 후진해서 주차했다.


“하루 만에 베스트드라이버가 탄생했네요!”

나도 모르게 운전석에 앉아서 너스레를 떨었고, 조수석의 친구도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맞장구쳤다.


나는 다음엔 어떤 선택을 할까

렌터카 사무실은 여전히 무더웠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시 에어컨을 켜고 여자 사장님을 기다렸다.
그녀가 들어오고, 나는 '운전 잘했습니다'라고 하며 차키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사장님은 “그럴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며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여자 손님들은 일부러 차를 한번 운전해서 이동해보라고 시킨다고 했다.

일명 '장농면허'인 분들은 잠깐의 운전에서도 티가 난다고 한다. 특히, 후진은 속일수가 없다고.

나의 경우, 유연하게 후진을 해서 차를 세우는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고 그제서야 말해주었다.

렌터카 사장님의 인생 이야기를 몇 분 더 듣고 어묵메뉴 간판이 함께 달린 렌터카 사무실을 나오는 길.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제주를 찾는다면, 이 어묵간판이 적힌 렌터카 사무실을 또 오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현O차도 삼O차도 아닌 또 다른 선택지를 고를 것 같다.

아니면, 여자 사장님이 나를 기억하고 이렇게 묻지 않을까?

“손님, 이번엔 어떤 차로 운전해 보실래요?”

내 인생을 바꾸는 용기의 근육은 그 어디도 아닌,
지금 내가 머무는 일상에서 매일 조금씩 키워진다!




일상을 너머 인생을 바꾸는 선택은 결코 거창하지 않다.

핸들을 잡을 때, 브레이크를 뗄 때,
그리고 “할만하네요”라고 말하는 그 짧은 찰나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나다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부릉부릉~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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