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홍영지인가요?"로 시작된 공무원피티코칭 협업프로젝트
"샘, 제가 이렇게 웨이트운동을 좋아하고 빠질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말인데요, 저 결심했어요."
(맞은편 의자에 앉은 나의 운동스승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저 이제 남은 생애는 제가 좋아하는 운동하면서 일도 하고 그렇게 재밌게 살기로했어요!"
(6개월 후)
헬스장 입구 데스크 옆, 새하얀 2인용 상담책상을 가운데 두고. 영지와 홍. 벌써 1시간째 운동 관련된 내용으로 상담을 하고 있다.
"그래서말인데... 샘! 저랑 재밌는거 하나 하실래요?"
"어떤거요?"(의아한듯 눈을 크게 뜬다)
"피티와 코칭을 같이 하는거죠. 재능기부 피티코칭. 샘은 피티 나는 코칭이요"
"에이...피티수업도 제대로 안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에다 코칭까지 한다구요?"
"제 말은 공무원들 대상으로요. 그리고 일단 해봐야 아는거잖아요. 파일럿으로 한번 해봐요!"
"파일럿이요? 흠... 그럼 '홍영지'가 되는건가요?"
"아, 홍영지라...그렇겠네요!"
홍영지라는 이름이 세상에 탄생한 순간이다.
영지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홍은 "그럼 홍영지인가요?"라는 대답으로 그 자리에서 바로 수락을 했다.(홍은 그의 성이다) '바로'라고 하기엔 영지의 1시간이 넘는 설득과 설명이 있긴했지만 그럼에도 꽤나 수월하게 협업결정이 내려진 건 사실이다. 2024년 꽤나 더웠던 8월. 피티트레이너와 회원으로 처음 만난 지 딱 1년만에 만들어진 영지와 홍의 재능기부 프로젝트가 바로 '홍영지'다. 비슷한 나이 또래임에도 수년째 다른 트레이너들을 키우고 가르치는데 진심을 다하는 헬스장 대표이자, 매니저 그리고 나의 피티샘이기도 했던 홍. 늘 자신의 업에 대해서 진정성, 자신감 그리고 열정을 다하는 홍의 모습은 공무원이란 직업에 대해서 수년째 혼란스러웠고 또 어떤 모습이 진짜 공무원다움인지 고민했던 나에게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 자기 삶과 업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두 사람이 많이 닮아 있었다.
그래서인걸까.
영지의 뜬금없는 협업 제안을 홍이 거의 망설임없이 수락한 것이다. 나중에 홍은 헬스장 운영에 도움이 된다면 재능기부든 뭐든 할 마음이었기에 그 자리에서 같이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생각을 미화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딱 있는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가식없이 솔직한 답이었고, 사실 나는 홍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에 대해서 포장하지 않는것. 중고등학교 엘리트 운동선수, 체대 입학, 트레이너 생활 그리고 헬스장 창업까지. 홍이란 사람은 운동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또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심 또한 대단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굉장히 솔직하게 살아온 사람이기도 했다. 그렇게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대하는 그의 태도. 반면에, 주도적인 삶보다는 조금은 안전하게 기대되어진 삶을 습관처럼 선택해왔던 내게는 신기함 그 자체였다.
동시에 그것이 나와는 너무도 다른 점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함께 홍영지를 하자고 제안한건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의 30대까지 나는 늘 주변의 기대, 사회적으로 안전한 역할에 따라 살아온 기억뿐이었다. 경영학 전공, 반도체 기업 입사, 공무원 준비와 합격, 결혼, 출산, 승진... 보기엔 그냥 무난한 인생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시 돌아본 나의 삶에서 솔직히 내가 진짜로 원해서 선택한 인생의 시간이 얼마나 될까. 그저 그럴듯해 보이는 인생으로 보여지는 선택들로 그때그때 채운채 그렇게 쉽게 흘러온 것 아니었을까. 내가 스스로 어떤 삶을 원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하면서 주도한 인생의 선택이 과연 몇번이나 되었을지 자문했을때 나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지나온 인생의 대부분의 순간 나는 그럴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짜 내가 어떻게 살고싶은지 몰랐다.
내가 어떤 인생을 원하는지도 모른채. 그냥 외부의 기대치에 맞춰서 살아온 느낌. 바로 그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나의 일상은 문제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바라는 삶에 대한 '진짜 열정'이 무엇인지 나는 몰랐다. 늘 뭔가 결핍이 있었고 그걸 해소하기 위해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들을 많이도 했다. 그리고 시작된 각성과 도전의 순간들.(어학연수, MBA, 시간선택제, 글쓰기, 출간, 조정, 코칭 등등)
그렇게 시작된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열정'의 뒤늦은 불지핌.
지난해 생일날 우연히 등록한 동네헬스장. 거기에서 시작한 웨이트운동에서 그 불꽃이 본격적으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내 몸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그 출발점이었다. 체지방 3kg 감량이라는 단순한 목표로 시작해서 몸에 근육을 붙이고, 내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들을 본격적으로 관리하는 생활을 수개월간 버텨냈다. 결국 반년이상 이어진 이 경험은 내 일상의 루틴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내가 어떤 삶을 살고싶은지 방향을 잡았던 것 같다. 운동과 함께 하는 일과 일상 그리고 일생...
각성의 결정적인 순간.
올해 2월의 바디프로필 촬영의 날이다. 인생 첫 바디프로필 촬영장 양 옆에 서있는 대형 모니터를 통해, 내 안에서 수십년간 숨죽이면서 살고 있었던 진짜 나를 발견했다. 나는 그 순간 따뜻한 화해의 손길을 나에게 내밀었다. 영지가 제대로 영지의 모습으로 바라보던 그 때. 커다란 스크린에 비친 내 표정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옅은 미소와 자신감에 찬 눈빛이 반짝거리던 진짜 내 얼굴. 지금은 일상에서 더 자연스럽게 더 길게 나는 그 표정으로 살고 있다. 전에 없던 여유와 자신감을 풍기면서 말이다.
홍영지는 그냥 나온 프로젝트가 아니다.
피티샘으로 홍을 처음 만난 후 5개월간 진행된 총 25회의 수업. 짧지않은 기간이다. 아무리 헬스장 대표라지만 그는 단 한번도 수업을 펑크내거나 늦은 적이 없었다. 지하 1층의 탁한 공간에서 늘상 목이 쉬어라 구령과 설명을 열심히 이어가는 그의 모습은 과연 나에게 어떻게 비춰졌을까. 일과 공부의 병행, 워킹맘의 역할까지했던 나. 또래에 비해 나름 열심히 살고있다고 자신했지만, 그럼에도 힘들때 일상에서 게을러지고 싶다는 생각이 사실상 싹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 있다고?', '이 사람은 자기 인생을 여기에 걸었구나...그럼 나는?'. 바로 이것이었다. 홍은 운동을 직업으로 말하지 않고, 삶 그 자체로 살아내는 사람이었다.
남들은 모르겠고.
이제 나는 내 방식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나에게 자기 삶과 업에 대한 진심, 열정, 성실 그리고 책임감이 그때처럼 선명하게 다가온 순간은 없었다. 동네 헬스장이라는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서. 삶에 대한 '간절함'으로 일상에서 그리고 일터에서 실천과 행동으로 진심을 다해 살아내고 있는 어느 헬스장 창업자의 모습을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홍에게 주저없이 운동에 대한 나의 생각과 계획을 말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이 사람이라면! 운동에 대한 내 진심과 열정을 알아줄 것이라는 전문가적 신뢰였다. 그리고 그는 "그럼, 홍영지인가요?"라는 명명과 함께 내 제안을 덥썩 받았다. 그렇게 홍영지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운동에 대한 각자의 진심과 열정 그리고 믿음으로.
홍영지는 두 사람이 만난 이름이 아니라,
각자의 삶이 처음으로 ‘자기 편’을 들기 시작한 순간의 기록이다.
(평일 저녁 퇴근 후 센터를 들러 그날 배운 어깨운동을 혼자 연습하고 있는 영지를 향해)
"회원님은 진짜 운동 좋아하십니다!"
"샘, 저는 운동을 그냥 좋아하는게 아니라 진짜로 사랑한답니다"(웃음)
그러면서 세트 마지막 횟수를 채우기위해 얼굴에 수십개의 주름을 만들며 인상을 쓰기 시작한다.
"회원님, 얼굴에 주름! 주름!"(다급함과 장난을 섞은 말투)
"에잇, 몰라요. 이미 얼굴은 포기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