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바게뜨와 치즈가 빠지지 않는 프랑스 초등학교 급식 체험
매년 아이들 학교에는 <Portes ouvertes à la cantine> 이라고 해서 부모들이 급식 체험을 할 수 있는 날이 있다.
인원 제한이 있어 미리 신청을 해야하는데, 나는 늘 신청 첫 날 사무실 여는 시간에 맞춰 전화를했었다.
그 열의가 무색하게 첫 두 해는 코로나로 취소됐었고, 아이가 그랑반에 있을 때에는 마스크를 낀 채로 식당 한쪽 구석에 서서 아이들 먹는 걸 구경만 할 수 있었고, 작년에야 드디어 온전하게 급식 체험을 하게 되었다.
내가 오는지 모르고 있었던 첫째는 한껏 신이 났다.
아이의 손에 이끌려 학교 식당으로 가서 아이의 안내 대로 쟁반을 꺼내고, 바게뜨 한 조각과 ("원래 한 조각만 집어야 되는데 두 개가 붙어 있는 건 괜찮아!") 앙뜨레(전식), 치즈와 디저트를 차례로 담았다.
그리고 급식대 끝에서 급식선생님이 주시는 본식을 받는다.
이날의 메뉴는 토마토가 들어간 파스타 샐러드, 푹 익힌 완두콩과 당근, 짭쪼롬한 소스가 올려진 닭다리,
디저트로는 까망베르 치즈와 사과였다.
단순해 보이지만 탄단지 균형이 잘 잡힌 한 끼 식사이다.
대량으로 조리된 음식을 먹는 것이 무척 오랜만이었는데, 가족 수에 맞춰 작게 요리할 때는 느낄 수 없는 깊고 푸근한 맛이 난다.
초등학교에서는 아이가 직접 식사를 가지고 오지만, 마테넬 (3-5세) 학교의 급식 시간은 흡사 식당 같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테이블마다 모여 앉아 있고, 급식 담당 선생님들이 전식, 본식, 디저트 차례로 직접 서빙을 해주신다.
남은 음식은 테이블 중간에 놓아 주시는데, 부족하면 아이들이 각자 덜어서 더 먹을 수 있다.
평소 점심시간이 되면 '지금쯤 아이들은 식사 잘 하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이 들면서도, 내가 학교 다닐 때와는 너무나 다른 환경이라 쉽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었다.
학교 문 앞에 붙여진 금주의 식단표를 볼 때마다 이름도 재료도 생경한 음식들이 많았고, 그 와중에 매일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바게뜨와 치즈에 '여기가 프랑스 맞구나' 했다.
그럼에도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변하지 않는 게 있으니, 아이들이 반은 먹고 반은 수다 떨며, 왁자지껄 즐거운 학교 점심시간이 그렇다.
첫째가 맞은 편에 앉은 남자 아이들을 가르키며 속삭인다.
"엄마, 쟤들이 왜 저렇게 빨리 먹는 줄 알아? 빨리 먹고 나가야 다른 학년 애들보다 먼저 축구공을 가져갈 수 있거든."
그러고 보니 딱 보아도 개구지게 생긴 남자 아이들이 몸의 반은 이미 의자 밖으로 내놓은 채로 닭다리를 뜯고 있었다.
식사시간이 끝나고 주방 견학이 있었다.
같은 건물을 쓰고 있는 마테넬 (3-5세)과 초등학교 (6-10세) 아이들 260명을 위한 식사가 매일 만들어지는 곳이다.
일단 선생님의 지시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닐 헤어캡, 가운, 신발 커버로 완전 무장을 했다.
버스럭버스럭 소리를 내며 우주인이 된 기분으로 들어선 주방은 우주선 안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티끌 하나 없이 청결했다.
프랑스에 살면서 어느 정도의 지저분함 또한 여기 나름의 매력이라 생각하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이 학교 주방은 정말 흠잡을 데가 없었다.
파리 공립학교의 점심 메뉴는 구 단위 교육청, 학교 쉐프, 영양사, 학부모 간 논의를 거쳐 두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커미션에서 승인을 받는다.
프랑스의 여러 기념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권의 큰 명절이 있는 날에는 그에 맞는 메뉴가 나오기도 하고, 1-2주에 한 번은 채식 메뉴가 나온다.
금요일에는 꼭 생선 요리가 나오는데, 오랜 시간 프랑스의 국교였던 카톨릭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쉐프 선생님은 매일 오전 6시에 출근해 무슨 일이 있어도 11시 반에 아이들이 식사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와 조리과정을 책임진다.
연중 행사나 다름 없는 대중교통 파업으로 파리 전체가 마비되었을 때도 우리 쉐프 선생님은 출근하지 못한 주방 선생님들 몫까지 다 소화하며 아이들의 따뜻한 점심을 준비해주셨다.
매일 오전, 신선한 식재료가 학교로 배달된다.
혹시 배달 사고가 있더라도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일이 아닌 그 다음날 사용된다.
이 날 학교 주방을 견학하기에 앞서 구청에서 열린 <Forum du Goût>이라는 행사에 간 적이 있었다.
우리 동네 학교 급식의 모든 것을 소개하는 행사였는데, 식재료들을 납품하는 생산자들이 참여해 프랑스답게 각종 햄, 치즈, 빵은 물론, 신선한 야채와 과일, 디저트까지 직접 소개하고 나누어 주었다.
정부에서 품질을 인정하는 라벨 루즈 (Label Rouge) 제품들이 대부분이었고, 생산자들의 자부심 가득한 설명을 들으며 이미 급식 재료에 대한 믿음과 안심을 가진 터였다.
거기에다가 위생적인 학교 주방, 책임감 넘치는 쉐프 선생님까지 보고 나니 우리 아이들의 한 끼 식사를 위해 들어가는 이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애정에 감사를 넘은 감동이 찾아왔다.
더불어 학교에서 먹는 점심이 얼마나 감사한 식사인지를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부모로서의 책임도 느꼈다.
급식 담당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학교 차원에서 식재료에 대한 이해,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등을 위한 교육이 이루어지지만, 가정에서의 관심이 제일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하셨다.
매 끼니 이 음식을 내가 먹기까지 어떤 사람들의 어떠한 수고가 들어갔는지,
각각의 재료에서 어떤 맛이 나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
내가 남긴 음식이 쓰레기통에 들어간 후 어떠한 처리 과정을 거치는지...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 내 앞에 놓인 식사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달라질 수 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프랑스의 법조인, 정치가이자미식가로 유명했던 장 앙뗄므 브리야-사바랑 (Jean Anthelme Brillat-Savarin)은 말했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보라.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Dis-moi ce que tu manges, je te dirai ce que tu es)"
이 얼마나 지당한 말인가.
아이들에게는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은 점심 한 끼였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 안에 들어간 재료 하나하나가 학교 주방에 도착할 때까지의 여정, 아이들이 곤히 자고 있는 시간에 솥을 불에 올리고 오븐을 켜는 쉐프 선생님, 아이들이 식당을 떠난 후 그곳을 정리하고 쓸고 닦는 선생님들...
이 모든 것을 말해보라.
나는 우리 아이들이 분명 넘치는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고 있는 사람임을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