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고인 프랑스의 출산율과 그 뒤의 현실적인 이야기 (2)
앞선 글에서는 프랑스가 2000년대 중반부터 유럽 국가 가운데 출산율 선두를 유지할 수 있게 한 제도적,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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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프랑스의 높은 출산율 뒤에 가려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첫째, 프랑스도 나름 출산율 하락으로 고민 중이다.
여전히 한국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이기는 하나, 프랑스의 출산율 역시 2012년을 기점으로 매해 떨어지는 중이다.
올해 초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의 합계출산율 (가임기 여성 일인당 자녀수)은 1.68을 기록했다. (한국은 올해 0.6 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저 수준으로, 2010년보다 20%나 하락한 수치이다.
프랑스 내에서는 상황이 훨씬 심각한 남유럽 국가들(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처럼 되기 전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책을 내놓을 텐데, 이렇다 하게 눈에 띄는 이유도 없다.
결정적인 정치적, 경제적 사건도 없었고, 코비드와의 상관관계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고소득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트렌드가 프랑스에도 포착된다.
여성들의 사회활동 참여 확대로 인해 첫 아이를 갖는 나이가 늦어지고, 경제/지정학적, 기후 문제 등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집값 상승과 취업시장 악화가 특히 청년들의 연애, 결혼, 출산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등 많이 들어본 이야기들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 1월 <인구 재무장> (réarmement démographique)이라는 다소 비장한 이름의 정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엄마, 아빠 모두에게 현재보다 짧지만 돈은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출산 휴직 제공과 불임 퇴치를 위한 지원 등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서도 보았듯이, 출산 장려 정책이 실질적으로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둘째, 이민자 여성의 출산율이 프랑스 출신 여성의 출산율을 크게 웃돈다.
2017년 통계를 보면, 이민자 여성이 평균 2.6명, 프랑스 출신 여성이 1.8명의 아이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전체 출생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 미만이었기 때문에 이민자 여성이 프랑스 전체 합계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파리에서 체감하는 이민자 가정의 스케일은 훨씬 크다.
주변에 일반적인 백인 프랑스인 가정의 경우 대부분 아이 세 명이 최대이지만, 특히 아랍/아프리카계 이민자 가족의 경우 아이 세 명이 기본이다.
프랑스에서는 북아프리카의 아랍 지역인 마그레브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출신이 유럽계 프랑스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민족집단을 차지하는데, 2014년 프랑스에 거주하는 마그레브 출신 여성들의 합계출산율은 3.5명이었다.
십 년 전 데이터이기는 하지만 당시에 태어난 아이들이 학령기에 접어들었으니, 우리 아이들의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친구들이 왜 형제자매가 많은지 설명이 되는 셈이다.
아랍/아프리카의 대가족 문화는 프랑스의 다자녀 지원 정책의 힘을 받아, '아이가 많은 이민자 가족들은 나라에서 나오는 돈으로 기본적인 생활은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민자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 남짓이고, 오히려 이민자들이 프랑스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연구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아랍/아프리카 대가족의 강력한 존재감은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2017년 설문에서는 프랑스인의 86%가 이민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비쳤다.
프랑스의 극우 정치인들은 이러한 민심을 파고들어 이민자들이 사회보장제도 혜택을 받는 것을 제한하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셋째, 프랑스의 양육 지원 제도를 온전히 사용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앞서 말한 마크롱 대통령의 <인구 재무장> 발표로 다시 돌아가보면, 프랑스 육아휴직제도의 빈틈을 알아챌 수 있다.
현재 시스템에서는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지만, 매달 429유로 (한화 65만 원)로 낮은 육아휴직 수당 때문에 여성의 14%, 남성의 1%만이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때문에 마크롱 대통령은 육아휴직 기간을 줄이되 급여를 늘리는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보통 엄마가 언제 복직을 할지 정하기 전부터 아이를 크레쉬 (영유아 보육시설)에 보낼 것인지, 누누(보육도우미)를 찾을 것인지, 아니면 둘 다 필요한지 계획을 짜야한다.
시에서 운영하는 공립 크레쉬 (crèche municipale)는 임신 6개월부터 시청에서 미리 신청해 놓을 수 있고,
비영리 단체가 운영하는 협회형 크레쉬 (crèche associative)에는 개별적으로 신청을 해야 한다.
나라에서 비용이 지원되는 공립, 협회형 크레쉬 모두 상대적으로 더 저렴하고, 검증된 인력들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고, 규칙적인 생활리듬과 조직화되어 있다는 등의 이점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크레쉬를 선호하지만, 베일에 싸인 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임신 초기 때부터 큰아이가 다녔던 크레쉬에 찾아가 임신 소식을 알리거나, 아는 인맥을 통해 원하는 크레쉬와 미리 안면을 터놓는 로비 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크레쉬 불합격의 고배를 마시거나, 좀 더 개별적인 케어를 원하는 등의 이유로 누누를 찾아야 한다면 이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다.
보통 누누를 매칭해 주는 사설업체나 지인 소개 찬스를 이용하는데, 인기가 많은 누누들은 일찌감치 대기자 명단이 있을 정도이다.
어렵게 찾은 누누도 서로 적응기간을 거쳐보니 마음이 안 맞거나, 갑작스레 그만두기도 하는 등 아무래도 개인 간의 일이니 변수가 많다.
아이들이 만 3세가 되어 마테넬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이러나저러나 프랑스 부모들도 현실적인 고민 투성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국가 재건을 위해 적극적인 이민 및 출산정책을 펼쳤다.
여러 조정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출산장려정책의 기조는 흔들리지 않았고, 안정적인 출산율을 유지해 온 성공적인 국가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감히 예상하건대, 위에 언급한 크고 작은 구멍들이 당장 '선진국 중 출산율 챔피언'으로서의 아성을 무너뜨리지는 못할 듯하다.
르몽드지의 말을 빌려 내 자신감의 근거를 설명해 보고자 한다.
"(프랑스는) 아이와 경력을 동시에 갖는 것이 가장 쉬운 나라 중 하나이다 (...) 어린 자녀를 가진 일하는 엄마들은 낙인찍히지 않는다."
<참고문헌>
Le Monde, "Baisse des naissances : un défi pour notre modèle social" (18/01/24)
Le Monde, "Emmanuel Macron annonce un congé de naissance et un plan contre l’infertilité en vue du « réarmement démographique » du pays" (17/01/24)
Le Bras, H., "Should we really be worried about France’s declining fertility rate?" (03/07/2024) https://www.polytechnique-insights.com/en/columns/society/should-we-really-be-worried-about-frances-declining-fertility-r ate/
Volant, S., Pison, G. & Héran, F. (2019). La France a la plus forte fécondité d’Europe. Est-ce dû aux immigrées ?. Population & Sociétés, 56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