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육아 도우미 이모님, 누누(nounou)에 대하여
"엄마, 나는 왜 바비시터가 없어?"
첫째가 다섯 살 때쯤이었나,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
바비시터는 베이비시터(baby-sitter)의 불어 발음이다.
"엄마 아빠가 늘 있는데 왜 바비시터가 필요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 나에게 아이는 진지하게 말했다.
"친구들은 다 바비시터가 있어. 다라는 마도가 토요일에 와서 놀아줬대. 루이즈도 맨날 바비시터가 학교로 데리러 와. 나도 바비시터가 있었으면 좋겠어."
엄마, 아빠만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을 줄 알았던 아이가 이런 말을 하다니.
신기하고, 서운하고, 재미있었다.
아이가 말한 바비시터는 부모가 필요한 때에 파트타임으로 아이를 봐주는 사람이다.
보통 어리고 경험이 많지 않은 게 특징인데, 평소 눈여겨보던 이웃집 딸이나, 같은 동네에 사는 학생을 수소문해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바비시터는 아이들을 학교에서 픽업해 공원에 데리고 가거나 집에서 숙제를 도와주기도 하고, 주말에 부모끼리 외출을 해야 할 때 몇 시간 아이들을 봐주기도 한다.
누누의 세계는 훨씬 더 복잡하다.
누누(nounou)는 누리스(nourrice)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원래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여자'라는 뜻으로, 보모 혹은 유모를 칭하게 되었다.
전통적으로는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중년 이상의 여성 누누가 많았다.
한국에서 '이모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비슷하겠다.
파리 외곽의 작은 도시에 사는 친구 하나는 아이가 두 살 때쯤 누누를 구하고 있었는데, 동네에서 인기 많은 백인 할머니 누누는 대기자 명단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부모와 아이 면접까지 보더란다.
파리 같은 대도시는 누누 모시기가 더욱 어려우니, 자연스레 이민자들에게로 문이 열렸다.
파리에서는 흑인 누누들이 백인 아이 하나는 유모차에, 다른 하나는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이 너무나 흔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사하라 이남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국가에서 단기 여행비자로 프랑스에 온 이민자들이다.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되더라도 공적인 사업장보다 적발될 확률이 낮은 가정보육 일을 선호하는 아프리카계 여성 이민자들과, 언어가 통하는 인력을 저렴하게 고용하고자 하는 파리 중산층 부모들의 니즈가 맞아떨어져 활발한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최근 몇 년 간은 누누의 세계에 신흥 플레이어가 등장했는데, 바로 동남아시아계 누누이다.
대부분 필리핀인인데, 영어에 관심이 많은 요즘 프랑스 부모들의 환영을 받는다.
(여기서부터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찰담으로, 최대한 중립적으로 서술하려 노력하겠으나 나의 편견과 일반화의 오류가 담겨있을 수 있음을 고백한다.)
우리 집은 지금까지 누누나 베이비시터를 써본 적이 없다.
나는 박사논문을 쓰던 중에 아이들을 출산했고, 각각 6개월 휴학기간을 가진 후에 육아와 공부를 병행했다.
일정이 비교적 자유로운 시기였고, 너무나 빠르게 자라나는 아이들의 첫 순간들을 직접 보고 싶다는 내 욕심이 더해진 결정이었다.
출산 후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쯤부터, 늘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씩 아이와 외출을 했다.
아기띠나 유모차에 아이를 싣고 공원을 가는 게 일상이었는데, 오전 10시쯤 동네 공원에서 노는 어린아이들 중 열에 여덟아홉은 누누와 함께였다.
1-2년간 이런 생활을 하며 관찰한 누누의 세계에는 몇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었다.
첫째, 누누들만의 커뮤니티가 있다는 것.
같은 시간, 같은 공원에서 모이는 누누 그룹이 있는데, 일단 흑인 누누들이 크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다른 구석에서 필리핀 누누들이 한 자리를 차지한다.
서로 다른 누누 그룹은 절대 섞이지 않는다.
그리고 종종 나 같은 외국인 엄마 몇 명이 개인플레이를 한다.
둘째, 누누들은 육아 도우미 이상의 역할을 한다.
누누들은 육아를 넘어서 가사까지 도와주는 경우가 많다.
요리 실력이 있는 누누들은 아이들의 식사를 직접 준비하고 내친김에 부모가 퇴근하고 먹을 저녁까지 미리 만들어 놓는다.
세탁물을 찾아오거나, 간단한 장을 보고, 집을 정리해 놓는 일까지 하기도 하니, 업무의 스펙트럼이 꽤나 넓다.
셋째, 인종별로 누누들의 특징이 있다.
흑인 누누들은 목소리가 크고 방임형 육아 성향을 보인다.
흑인 누누들이 들어간 풍경은 대충 이러하다.
아직 걷지 못하는 아기들은 유모차에 앉아 있고, 기거나 걷는 아이들은 알아서 놀고 있다.
누누들끼리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이따금씩 아이가 말썽을 피우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주의를 준다.
길에서 보는 흑인 누누들은 아이들과 길을 걸으면서 늘 통화를 하고 있다.
초보엄마였던 내가 누구의 육아를 평할 입장은 아니었고, 때마침 문화 상대성을 공부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흑인 누누의 모습을 아프리카 문화의 특성으로 해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 누누가 아이들을 우악스럽게 끌고 가거나 거칠게 소리 내어 부를 때 눈을 찌푸린 것도 사실이다.
필리핀 누누의 육아는 상대적으로 한국 정서와 더 가깝다.
어린 아기는 안고, 걸어 다니는 아이는 뒤를 따라다니며 눈을 떼지 않는다.
우리 동네 필리핀 누누 모임은 오후 구떼 시간이 되면 각자 만들어 온 음식을 펼쳐놓고 아이들과 함께 피크닉을 하는데, 지나가며 언뜻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는 필리핀 음식에 홀려 슬그머니 그 자리에 끼고 싶다.
누누들끼리 타갈로그어로 신나게 대화하다가, 아이에게는 영어로 말을 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이쯤 되니 흑인과 필리핀 누누에 비해 눈에 띄지 않지만, 소리 없이 강한 누누 집단이 하나 떠오른다.
친구 가족들 중에 누누가 가족의 일부가 되어 수년 간 아이의 육아뿐만 아니라 가정의 대소사를 함께하는 케이스가 간간히 있는데, 흥미롭게도 모두 아랍계 누누이다.
무슬림의 상징인 히잡을 쓴 누누들은 다른 누누들과 달리 한 번에 하나의 가족의 아이들만 돌본다.
우리 가족과 친한 집의 레바논인 누누는 그 집 아이 셋을 다 직접 키우다시피 했다.
집도 가깝고 아이들의 스케줄과 동선도 비슷하다 보니 자주 공원에서 마주치곤 했는데, 그 누누는 아이가 노는 동안 가까이에 앉아 늘 휴대폰과 아이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전화나 문자를 하는 것도 아닌데 늘 무언가를 보고만 있으니 궁금했는데, 다름 아닌 코란이었다.
그 집 아이들은 이제 다 커서 누누가 필요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늘 아이와 코란에만 집중하던 그녀의 모습이 가끔씩 떠오른다.
최근에 6개월 된 셋째 아이를 보낼 크레쉬 찾는 문제로 맘고생을 한 친구에 따르면, 신청자의 단 10프로만이 크레쉬에 입성한단다.
높은 출산율에 비해 보육시설은 부족하고, 워킹맘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파리에서 누누에 대한 수요는 당분간 줄어들지 않을 듯하다.
가족 안에서 어른과 아이의 삶이 각자, 또 같이 조화롭게 균형 잡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프랑스 사회에서 누누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