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생활 삶의 질을 가름짓는 결정적 한수
1.
현재 시각 일요일 새벽 1시 43분.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 친구네 갔다가, 어른 여섯은 와인과 수다로, 아이 셋은 넷플릭스로 졸음을 물리치다 집에 들어온 지 20분 정도 되었다.
아이들보다도 일찍 자는 내가 이 시간에 깨어 있는 게 아주 드문 일이라 스스로 놀라워하는 참인데, 현재 윗집은 한창 댄스파티 중이다.
다들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온 모양이다.
여기서 발 구르고 저기서 손뼉 치고 비트와 함성소리가 엉켜 피곤한 내 몸까지 들썩이게 만든다.
아 맞다, 이틀 전부터 엘리베이터에 쪽지가 붙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희 집에서 토요일 밤에 파티가 있어 시끄러울 예정입니다.
미리 양해를 구하며, 모두에게 너무 방해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개구쟁이 아들 셋을 키우는 우리 윗집이다.
오전에는 정확히 7시 20분에 방과 거실 사이를 다다다다다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고, 낮에는 누가 살기는 하나 싶게 고요하다가, 저녁 6시 15분이 되면 다시 다다다다다 우리 집에 왔어요, 신고를 한다.
엘리베이터 안 쪽지를 보며 '아이들은 할머니네 보내고 어른들끼리 파티를 하려나 보구나- 오랜만에 부부가 기분전환 되겠네' 싶어 대리만족을 느꼈었다.
그나저나 쏟아지는 졸음과 천지를 울리는 음악소리 중에 누가 이기려나.
2.
오늘 우리가 놀고 온 친구네 집은 밑집 이웃이 영 골치다.
젊은 여자 둘이 산다는데, 거의 집에만 있는 것 같다고.
친구네는 아들 하나가 있는데 뛰는 건 둘째치고 걸어만 다녀도 득달같이 올라와 조용히 해달라고 사정을 한단다.
처음에는 경찰을 부르겠다, 부를 테면 불러봐라, 꽤나 험하게 부딪히다가, 연말에 선물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풀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끝이 아니었다.
여전히 정기적으로 올라와 구구절절 감정에 호소를 한다고 하니 난감하다.
오늘도 우리가 노는 동안 기어이 올라와 한마디 하고 갔다.
어른들은 식탁에서, 아이들은 소파에 앉아 수다 떨고 티브이 보고 한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이 친구네 집에 놀러 올 때마다 이런 항의를 받으니, 이제는 우리가 정말 너무 시끄러운 건지, 아래층 사람들이 유독 예민한 것인지, 아파트 자체에 하자가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3.
우리 집 밑엔 할머니 한 분이 사시는데 귀가 잘 안 들리신다.
사실 할머니 귀가 어둡다는 건 이사 오고 일 년이 넘도록 몰랐었다.
같은 동에 사는 이웃들과 안면을 익혀가던 중에 우리 아래층 이웃은 한 번을 만나지 못해서 혹시 빈집인가 생각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옆집 가족을 초대했는데, 우리 밑집에 할머니 한 분이 사신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옆집 엄마 말이, 한 번은 우리 밑집에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벨을 여러 번 눌러도 인기척이 없었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할머니가 잘 듣지를 못하셔서 그런 거였다며 "너네 좋겠다"하는 말을 붙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옆집 가족도 아이가 셋이라 종종 아랫집 눈치가 보인다고 한다.
파리 생활에서 가장 큰 복 중 하나라는 이웃복을 이런 식으로 받을 줄은 몰랐다.
4.
한국에 있는 언니네는 아이가 넷.
아이들이 점잖은 편이고 아무리 조심을 한다지만, 언니와 형부는 늘 아랫집 할머니께 죄스런 모양이었다.
할머니께서 싫은 내색이나 불평하신 적 없는데도, 제 발 저려 때마다 과일을 가져다 드리며 일단 사과부터 박았다.
하루는 형부가 방음매트 시공업체를 불렀다고 했다.
거실전체에 제법 두께가 있는 매트가 깔렸지만, 여전히 조카들이 뛰는 건 금지.
워낙 심성이 바르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언니와 형부는 층간소음도 그들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5.
한국의 층간소음은 언제부터인가 살인, 폭력 같은 단어들까지 동원되는 사회적 문제로 보인다.
파리 또한 이웃 간 소음이 큰 문제인 곳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인 데다가 시민들 대부분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기본 100년 이상된 오스만식 아파트들은 삐걱거리는 나무장판이 기본 옵션이고, 얇은 벽들에 방음장치가 있을 리 만무하다.
금, 토요일이나 휴일 전날에는 수아레(soirée, 저녁파티)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 큰 음악소리나 떠드는 소리가 나도 보통 10-11시까지는 이해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소음이 새벽까지 넘어가면 "거 참 조용히 좀 해요!"라며 창문을 열고 고함치는 아저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쾅쾅쾅!" 직접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경찰이 출동하기도 한다.
엘리베이터에는 "여기는 공동거주공간이니 이웃을 존중하라"는 글이 붙는다.
입주자대표회의에 신고를 하거나 변호사를 통해 항의서한을 보내는 일도 드물지 않다.
아이들 소음은 좀 더 섬세한 문제이다.
높은 출산율을 자랑하는 프랑스인만큼 밤새 우는 신생아와 에너지 넘치는 어린이들이 없는 아파트는 찾기 힘들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 소음에는 관대한 편.
아이가 있는 가족들은 물론이고, 노인분들도 '나도 아이 넷을 키웠으니 이해한다'라고 말씀하신다.
당연히 예외도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1970년대에 지어졌는데, 그때 새 아파트를 사서 지금까지 살고 계신 노인분들이 많다.
당시 공용정원에는 놀이터가 있었다고 하는데, 자식들이 성인이 되어 다 떠나간 후에는 놀이터가 시끄럽다며 없애버렸단다.
뒤늦게 아파트에 들어온 우리 같은 가족들은 아쉬울 뿐이다.
다양한 연령과 문화의 사람들이 빼곡히 자리를 매우며 공존하는 파리에서 이웃 간 소음문제는 그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주변인들 중 힘들게 하는 이웃 때문에 고생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데, 나의 파리 생활 10년간 이웃과 소음문제로 얼굴 붉힌 적 없으니- 내 인생에 감사한 일이 하나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