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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필 Jun 07. 2024

미국 엄마 vs 프랑스 엄마

아이를 아이 취급하지 않는 프랑스 어른들 

한때 파리에 사는 영어권 출신 엄마들 사이에서 미국 엄마와 프랑스 엄마를 비교하는 짧은 영상이 유행했었다.


아이가 엄마 선물이라며 토끼(라고 생각되는) 그림을 내민다.

그린스무디를 마시며 컴퓨터를 하고 있던 미국 엄마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듯한 표정으로 "이거 나를 위한 거니? 정말 뷰우우우리풀해!"라고 외친다.

미국 엄마는 이 그림 좀 보라며 호들갑스레 남편을 부르고, "너를 미술 학교에 보내야겠어" 라며 감동의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본다. 

"이거 냉장고에 붙여 놓을게. 정말 정말 고마워, 나의 작은 아티스트!" 라며 완벽한 마무리 멘트까지.


와인을 마시며 책을 읽고 있던 프랑스 엄마가 무심하게 "무슨 일이니?" 라며 아이를 바라본다.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뭔데? 보여줘 봐"라며 와인과 책을 내려놓고 그림을 받아 든다. 

"귀엽네. 이게 뭐니?... (진심 예상 못한 표정으로) 아, 토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표정이 잠시 스치고 엄마는 말한다. 

"음... 귀가 재밌게 생겼네! 토끼귀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몸은? 그리는 걸 까먹었니?" 

여전히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어간다.

"아니야, 귀여워. 처음치곤 나쁘지 않은데? 연필 한 번 가지고 와봐, 우리 같이 다시 그려보자. (양손으로 머리 위에 토끼귀를 만들며 신나는 목소리로) 진짜 토끼 귀 그리는 것도 가르쳐줄게! 그리고 몸도 그려 넣자." 



 
프랑스에서 아이 둘을 낳고 프랑스의 육아와 교육을 경험하며 개인적으로 특히나 신선하게 다가온 점이 있다. 바로 아이를 아이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부모들도, 크레쉬 (영유아 보육시설)나 마테넬 (3-5세 학교) 선생님들도, 아이들을 대할 때의 자세, 태도, 말투가 따로 있지 않다.

아무리 갓난아기라도 다 큰 어른 대하듯 설명하고, 단지 아이라는 이유로 예쁘고 좋은 말만 늘어놓지도 않는다.

돌 지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가 크레쉬에서 적응기간을 거칠 때, 선생님들은 아침마다 울고 떼쓰는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차분히 설명한다.

"엄마, 아빠는 지금 일을 하러 가셔야 해. 너는 오늘 여기서 노래 부르고, 밥 먹고, 낮잠도 자고, 친구들이랑 놀 거야. 그러면 엄마, 아빠가 5시에 데리러 오실 거야. 아직 처음이라 어려운 걸 알지만 지금은 우는 시간이 아니야."

학교에서 그린 형형색색의 그림을 자랑스럽게 내미는 아이에게 프랑스 부모는 무조건적인 감탄사를 발사하지 않는다.

우선 이게 뭔지 설명해 달라고 부탁한 후, 아이의 설명이 끝나면 다정한 미소로 응답한다. "브라보!"


처음에는 프랑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너무 냉정하고 인색하게 구는 것 아닌가 싶기까지 했다.

자고로 아이들에게 말할 때는 높은음으로 리듬감 있게, 우쭈쭈 오구오구 그래쪄요 해야 하는 것 아니던가.


하지만 곧 깨달았다.

프랑스 사회에는 아이들에 대한 견고하고 깊은 믿음과 존중이 있음을.

어려서부터 독립된 인격체로 대해진 아이들은 정말로 그런 사람으로 자란다는 것을.


토끼 같지 않은 토끼 그림을 그린 아이에게 "그건 토끼 같지 않은데"라고 말하는 프랑스 엄마는 아이가 기죽을까 봐, 실망할까 봐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의 단단하고 강한 내면을 우선적으로 믿는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면, '너처럼 멋있는 토끼를 그린 사람은 처음이야!'라며 환호해 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네가 그린 토끼 그림은 이상해'라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럴 때 크게 상처받거나 좌절하지 않고, 토끼 그림을 다시 그리던지 아예 다른 동물을 그리던지 결정하는 건 아이 자신이다.




앞서 언급한 영상에서 미국 엄마(로 대표되는, 표현과 칭찬이 풍부한 엄마)가 화려한 소리와 동작으로 선수에게 기를 불어넣어 주는 치어리더라면, 프랑스 엄마는 관중석 뒷줄에서 선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조용히 응원하는 팬 같은 느낌이다.


그럼 나는 어느 쪽에 가깝냐고?

나 또한 이랬다 저랬다 하는 보통의 엄마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때로 "네가 최고야!" 하는 함성소리도, "부족해도, 실수해도 괜찮아"라는 다정한 속삭임도 모두 필요하다.

내 아이가 자신의 고유함과 특별함을 믿되, 다른 사람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며, 때로는 그들만의 치어리더가, 때로는 수줍은 열성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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