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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필 Apr 27. 2024

아이가 드디어 틀 안에 들어왔어요!

프랑스 학교의 까드르(cadre)에 대하여  

첫째의 제일 친한 친구 가족은 아빠가 프랑스 외교관이라, 아이도 해외파견 중에 낳았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됐을 때 프랑스로 돌아와 마테넬 학교 그랑반에 들어갔는데, 처음 한동안은 잘 적응을 못했다고 한다.

파견 중에는 베이비시터가 보육을 도와줘서, 기관생활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울기도 많이 울고, 수업시간에 장난도 많이 치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 때도 종종 있었나 보다.

부모는 선생님과 자주 면담을 해야 했고, 물론 맘고생도 많았을 터.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선생님이 웃으며 그러시더란다.

"Elle est enfin entrée dans le moule!"

아이가 드디어 틀 안에 들어왔다라니.

아이의 부모는 안심이 되면서도 찜찜한 마음이었단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moule이라는 건 무엇인가를 똑같이 찍어낼 때 쓰는 거푸집을 뜻하는데,

우리 아이들이 마치 단단한 빵틀에서 균일하게 구워져 나온 머핀들이라도 된 걸까?

아이가 틀 안에 들어가는 게 아이한테 진정 행복한 일일까? 


프랑스는 교육이나 육아에서 까드르(cadre), 즉 단호하게 정해진 규범 혹은 틀을 강조한다.

까드르 안에서는 최대한의 자율성이 보장되지만, 그 틀을 벗어나려 하는 순간 엄한 제지를 받는다.


4-5세 아이들이 모여있는 둘째 아이의 교실은 매일 아침 자유활동 시간을 갖는다.

아이들은 교실에 도착하면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는데,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기하고, 공주 드레스를 입고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이제 정리할 시간!"이라고 말하는 순간, 일사불란하게 본인이 쓰던 모든 물건들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교실 앞에 모여 앉아야 한다.

이때 규칙을 따르지 않는 아이는 틀 밖에 있는 아이가 된다.

말을 하기 전에 손을 들고 허락을 받는 것, 

반 전체가 이동할 때 두 명씩 손을 잡고 걷는 것, 

교실에서 시끄럽게 놀거나 말하지 않는 것... 

모두 틀 안에 있기 위해 아이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들이다.


4-5세면 아직 어린데 너무 엄격한 것 아니냐고?

이보다 더 어린 6개월부터 3세 이전 아이들이 다니는 크레쉬에도 까드르가 있다.

특히 연초에 아이가 부모와 떨어질 때 울고 떼쓰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이의 울음이 지나치게 길어지거나 공격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면 그건 틀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럴 때 선생님은 돌쟁이 아이의 몸을 꼬옥 붙잡고 이야기한다.

"Ça suffit!" 

그 정도면 충분히 했으니 그만하라는 말이다.

식사시간에 음식으로 장난치거나, 다른 친구를 때리는 것도 틀 밖의 행동이다.

선생님은 크게 눈을 치켜뜨고 웃음기 없이 짧게 "안 돼"하고 일러준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인 부모 입장에서는 혹여나 프랑스 학교의 까드르가 내 아이를 그저 선생님의 지시에 잘 따르는 수동적인 아이로 만들고 있진 않은가 고민할 만도 하다.

더 나아가 아이의 잠재적인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가 꽃피울 기회를 빼앗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렀을 때, 나는 까드르 안의 사정을 조금 더 면밀히 관찰해 보기로 했다. 

다행이고 감사하게도 우리 아이들이 만나온 선생님들은 까드르 안에서는 한없이 친절하고 다정했다.

아이가 울 때는 따뜻하게 안아주셨고, 아이의 크고 작은 실수에도 관대했다.

그리고 프랑스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든 대다수의 선생님들이 그러시리라 믿고 싶고 믿고 있다.


또한 까드르 안의 규칙과 약속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학교에서의 일상을 예측 가능하게 한다.

자칫 창의성이라 하면 무질서 속의 자유분방한 예술가를 떠올리기 쉽지만, 질서와 규칙성이 가져다주는 평온함이야 말로 자유로이 생각하고 영감이 찾아들어올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준다. 

비판적 사고 또한 고독히 사유하는 철학자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겠으나, 실은 타인과 교류하며 서로 다른 행동과 생각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때 거침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파헤치기 위해서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환경이 필요하다.

까드르 안처럼 말이다.


내 아이가 까드르 안에서 모나지 않게 둥글둥글 잘 지내면서도, 아이만의 고유한 개성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

이 당연해 보이는 부모의 초조함은 잠시 거두고, 아이가 틀 안팎의 세상을 고루 경험하며 그 사이 균형을 잘 잡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상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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