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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종찬 Mar 07. 2017

분산원장의 가치

Value of distributed ledgers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술에 대한 인식은 항상 변화한다. 모든 신기술이 마찬가지지만, Hype cycle은 항상 존재한다. Hype이 높을수록 현재의 가능성보다 미래의 잠재적 혁신에 더 집중하기 때문에 현실성과는 멀어지고, Hype이 낮으면 기술의 가능성 자체를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적용이 어려워진다.  



이러한 시장 타이밍의 불확실성은 모든 산업에서 나타난다. 꼭 선도자(first mover)라고 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늦게 뛰어들었다고 해서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타이밍(시장의 니즈)과 기술력, 문제 해결 능력이 얼마나 잘 맞아떨어졌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나뉜다. 일례로 클라우드 컴퓨팅이 있다.


클라우드 기술이 모든 산업에 적용될 것만 같은 Hype의 최정점이었던 때가 있었다. 이를 당시 "Cloudwashing"이란 단어로 표현했는데, 즉 Cloud를 아무 데나 가져다 붙여 세탁(washing)해버린단 뜻이다. 기술에 대한 기대치는 오르는데, 이를 해소할 시장의 니즈와 기술력이 없었고, 몇 년 뒤 아마존이 AWS를 통해 클라우드 시장을 잡게 된다.


블록체인 산업도 이와 같은 현상을 보인다. R3의 마켓 리서치 디렉터인 Tim Swanson은 "Chainwashing"이란 용어를 사용해 현 상황을 비판했는데, 블록체인이 금융, 무역, 공공, 예술, 모든 영역에서 파괴적 혁신을 할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미래의 유토피아를 기준으로 기술의 개념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이 기술이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지 명확하게 제시하고, 현실성을 감안한 일관된 인식이 있어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다.




분산원장기술 자체로는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애초부터 새롭게 등장한 혁신(breakthrough)은 없었다. 비트코인만 봐도 알 수 있다. 비트코인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이미 30년도 넘은 기술들이다.


- PKI (1976)

- Merkle Tree (1979)

- Eliptic Curve Cryptography (1986)

- SHA (1994)

- PoW (1997)


단순히 기술의 정교한 조합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 것뿐이다. 우버(Uber)가 스마트폰과 택시의 조합인 것처럼, 스냅챗(Snapchat)이 메시지 + 프라이버시 + 카메라의 조합인 것처럼 말이다. 즉, 기술 자체가 파괴적 혁신을 지닌다기보다 존재해왔던 기술의 정교한 조합을 통해 새롭게 구현된 그 "개념"이 파괴적 혁신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범용(commoditization)이 이루어져야 그 혁신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더 복잡해지는 건 새롭게 도입된 "개념" 조차도 진화하면서 다양한 사례를 만들기 때문에,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분산원장기술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 비트코인 : 서로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 간의 온라인상에서 P2P로 가치를 전달하게 하는 디지털화폐

- 이더리움 : 전 세계에 분포된 컴퓨터가 인간의 운영 없이 스스로 구동할 수 있게 하는 애플리케이션 플랫폼

- 코다 : 기관 간 거래되는 금융계약의 진화에 대한 공유 컨트롤(shared control over evolution of data)


위 세 개의 개념은 충돌되는 개념도 아니고, 그저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됐다. 이렇게 기술에 대한 접근 인식이 바뀌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블록체인/분산원장은 OO기술이다"라는 잘못된 주장을 하게 된다. 블록체인/분산원장은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이거나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지 "OO기술이다"라고 정의 내릴 수 없다.





그럼 코다(Corda)와 같은 분산원장이 가져온 새로운 개념은 무엇일까? 왜 기존의 시스템이나 분산 DB가 아닌 분산원장을 사용해야 할까?



앞서 언급했듯이, 분산원장이 가져온 과거에 없던 "새로운" 개념은 데이터의 진화에 대해 공유된 컨트롤(Shared control over evolution of data)이다. 여기서 자칫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데이터의 공유(Shared data)"와 데이터 컨트롤의 공유(Shared control of data)"인데, "데이터의 공유"는 분산원장 없이 기존 API를 통해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


"데이터 컨트롤의 공유"는 데이터를 읽고(read), 입력하고(write), 처리하는(process) 과정을 다수의 독립된 기관들이 상호 간 공동으로 진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기관들이 단일의 공유된 데이터(=Shared facts)에 대한 합의(consensus)를 이루고 유지하는 것이다. 분산원장의 등장 이전에는 이러한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또 분산원장에서 데이터의 컨트롤은 권력(power)이 아닌 법칙(rule) 기반이다. 분산원장 이전에는 모든 데이터가 한 관리자에 의해 컨트롤되었고 (분산 DB라 하여도), 이 관리자가 데이터를 입력/변조/삭제가 가능했다. 가치를 지니는 금융자산의 경우 독립된 기관끼리 자산을 주고받을 경우 이를 임의로 변조하거나 삭제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 권력(power)을 제3의 기관이 대신 가진다.


분산원장은 지정된 법칙에 의해 거래의 유효성(validity), 단일성(uniqueness)과 거래상대방과의 관계 및 거래 대응(react) 등이 정해지게 된다. 물론 참여자는 이러한 법칙을 무시하고 유효하지 않은 정보를 보낼 수 있지만, 합의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



종합하면 분산원장의 새로운 가치는

법칙 기반의 단일 데이터의 진화에 대한 공동관리
Rule-based shared control over evolution of shared facts


라고 볼 수 있다.




블록체인/분산원장에 대한 Hype이 꺼지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좋은 징조다. 시장의 기대치와 별개로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잡는 금융의 아마존, 구글이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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