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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종찬 Oct 11. 2015

분권화의 당위성

The purpose of decentralization

분권화 (分權化, decentralization)


중앙 권력의 분산을 뜻하는 분권화는 행정기관이나 정치기관의 권한 분리를 논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다. 정부나 기관은 모든 행정업무를 중앙에서 컨트롤할 수 없기 때문에 분권화하여 효율성을 높인다.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 – Satoshi Nakamoto, inside the genesis block


비트코인 세상에서의 분권화는 조금 다르다. 비트코인의 분권화는 금융거래의 비용적 효율성보다 전통적 금융시스템의 독점 체제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정치적 요소가 강하다. 중앙권력을 분산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애자는 것이다. 즉 비트코인은 무정부적 자본주의(anarcho-capitalism)와 컴퓨터 공학의 만남이라고 볼 수 있다.   


Everything that can be decentralized, will be decentralized. – David Johnston, Founder of Omni


하지만 분권화의 당위성이 더 중요하다. 아무리 이념적으로 뛰어나더라도 현실성을 고려해야 한다. 데이비드 존스턴처럼  분권화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분권화될 것이고, 분권화 시스템이 중앙화(centralized) 시스템보다 낫다는 말은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이념적 주장일 뿐이다.


효율성(efficiency)

먼저 분권화된 시스템 또는 서비스가 중앙화 된  것보다 효율적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비트코인은 분권화된 통화 시스템이다. 비트코인이 일상생활에서 쓰여지려면 확장성과 비용적 측면에서 스위프트, 신용카드, 은행 송금, 여러 신생 핀테크 서비스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

비트코인의 송금수수료는 약 3 원정도기 때문에 송금자 입장에서 굉장히 효율적이다. 또 시간, 공간, 금액의 제약이 없어서 국제송금(international remittance)과 소액결제(micropayment)에 탁월하다. 하지만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실질 비용, 즉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잊어서는 안된다.


매일 채굴되는 비트코인의 양은 3600개, 하루 거래수는 약 100,000번 정도다. 현재 가격인 $240로 계산하면 (240 x 3600 / 100,000) 거래당 실질 비용은 8.6달러, 약 만원이 소요된다. 백 원이든 백만 원이든 국내든 해외든 송금을 하려면 네트워크가 감당해야 하는 실질 비용이 만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만원은 채굴자들의 전기세다.


비트코인의 채굴량은 4년마다 반으로 줄기 때문에 만원을 5천 원으로 줄일 수 있다. 또 거래수가 두배로 증가하게 되면 이 또한  2천5백 원으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 가격이 $720가 되면 다시 네트워크 비용은 만원으로 돌아온다. 즉 비트코인 가격과 채굴량, 거래수가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채굴량이 줄어들게 되면 거래수수료가 채굴자의 인센티브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 채굴자들이 나눠가지는 거래수수료량은 하루 12 비트코인 정도,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즉 송금자가 부담하는 거래수수료를 올려야 네트워크가 유지될 수 있다.


비용뿐만 아니라 확장성 문제도 다분하다. 비자나 마스터카드의 경우 초당 24,000번의 거래를 감당하는 반면 비트코인은 초당 일곱 번이다. 글로벌 금융을 감당할 수 있는 스케일이 아니다.


문제는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유지되느냐가 아니라 기존 시스템보다 비용적 효율성과 확장성 측면에서 우월하냐는 것이다. 만약 거래당 만원을 유지하게 된다면 비트코인은 굉장히 비효율적인 디지털 화폐로 전락한다. 즉 비트코인은 분권화라는 이념적 요소를 제외하면 비용, 효율성, 유저 경험 측면에서 기존의 시스템 보다 낫다고 보기 힘들다.


분권화된 애플리케이션(Dapp, decentralized applications)

많은 개발자들이 블록체인을 이용해 분권화된 애플리케이션(이하 Dapp)을 개발 중이다. 비트코인이 결제시스템을 분권화했다면 오픈 바자(Openbazaar)는 이베이(Ebay)를, 시네리오(Synereo)는 페이스북(Facebook)을, 라주(Lazooz)는 우버(Uber)를, 스톨제이(Storj)는 드랍박스(Dropbox)를 분권화한다. 서비스를  분권화하는 주된 이유는 중앙기관의 검열(sensorship)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로서 다시 기술이 아닌 이념의 문제로 돌아간다.


문제는 무정부주의적 이념에는 관심 없는 대중들이 왜 불편한 유저 경험과 어려운 키를 관리하면서까지 Dapp을 사용해야 하는 가다. 익명 이메일(anonymous email)을 일반 대중이 사용하지 않는 이유와도 같다. Dapp은 비용, 유저 경험, 효율성, 네트워크 효과 측면에서 중앙화 된 서비스들을 따라잡기 힘들다. 구글이 무료로 데이터 제한 없는 사진 보관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당에 누가 클라이언트 다운로드, 키 관리, 화폐 전환(currency conversion)과 같은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분권화된 클라우드 스토리지 서비스를 사용하겠는가. 수백억의 자본과 수천 명의 글로벌 인재들이 일하는 서비스를 단순히 분권화하는 데는 의미가 없다.


다시 말해 기술적으로 구현 ‘할 수 있기’ 때문에  분권화하는 서비스는 필요 없다. 분권화의 가치는 바로 중앙 서버로는 ‘할 수 없는’ 곳에 있다. 즉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서비스 들를 분권화를 통해 구현해내야 한다.


You can basically decentralize anything, but doesn’t mean it’s better than the centralized one


분권화의 가치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Dapp이 사용가치를 지닐까? 이념적 가치를 배제하고도 일반 대중들이 사용할 애플리케이션은 무엇일까? Dapp이 메인스트림에서 성공하려면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1. 불편한 유저 경험을 넘어서는 강력한 기능(compelling feature)  

2.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법적 문제로 운영될 수 없었던 서비스  

3. 중앙 서버를 이용해서는 실현이 불가능한 서비스


블록체인을 이용하지 않지만 위의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애플리케이션은 비토렌트(Bitorrent)다. 하루 3천만 명, 매월 1억 5천만 명이 사용하는 이 분권화 애플리케이션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매일 공유되는 파일의 수만  4천5백만 개 정도. 법적 문제로 인해 중앙 서버로 실현할 수 없는 P2P 파일공유 서비스를 비토렌트는 기술로 가능하게 했다. 인터넷 기술이 법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블록체인 앱의 좋은 예

1. Changetip

체인지팁은 개인적으로 정말 유용하다고 느끼는 몇 안 되는 비트코인 기반의 서비스인데, 기존 시스템에선 불가능한 글로벌 소액 팁 서비스(Global micropayment tipping service)다. 전 세계 언제든 어디든 누구에게나 이메일, 휴대폰 번호, 레딧,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채널을 통해 비트코인으로 소액의 팁을 보낼 수 있다. 즉 인터넷의 소액결제 인프라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서 재미있는 동영상을 본 후 제작자에게 소액의 팁을 보내고 싶다면, 제작자의 아이디, 팁 비용, 그리고 @changtip을 댓글에 적으면 된다. 제작자가 체인지팁의 계정이 없어도 된다. 체인지팁이 이메일을 통해 제작자한테 팁의 송금 여부를 알리고 비트코인 네트워크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2. Augur

어거는 이더리움(ethereum)기반의 분권화 예측시장(decentralized prediction market)이다. 제임스 서로 위키의 책인 대중의 지혜(wisdom of crowds)로 잘 알려져있는 예측시장은 집단적 지혜(다수의 예측)가 미래를 예측할 확률이 높다는 이론에 기반한 시장이다. 한 명의 천재보다 군중이 더 낫다는 것이다.

사실 인터넷 예측시장은 전에도 존재했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intrade.com이 있다. 인트레이드는 미국 대통령 총선 결과를 예측하면서 엄청난 트래픽과 자금을 끌어모았는데, 버락 오바마와 밋 롬니의 대선 때 몰린 자금만 해도 약  2천3백억 원이었다.

문제는 미래를 예측하게 되면 굉장한 정치적 압박을 받게 된다는 것. 인트레이드는 아일랜드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의 압박에 문을 닫고 만다. 인트레이드 이후 실제 돈을 굴리는 예측시장은 대부분 다 사라졌다.


어거는 블록체인을 이용해 예측시장 서비스를 분권화하여 이 문제를 해결한다. 사람들은 이제 서비스 폐쇄의 걱정 없이 P2P로 이벤트를 정하고 대중의 지혜를 이용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어거는 인트레이드가 보유했던 8만 2천 명의 유저와 월 500억 원의 거래량을 가져갈 가능성이 있는 유망한 Dapp이다.


Dapp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블록체인의 성공은 이념이 아닌 당장 필요한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달려있다. 우버(Uber)를 분권화하여 기업을 붕괴시키고 이익 비용을 참여자에게 나누어주겠다는 것 자체가 현실성 없는 이념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블록체인이 인터넷 체계를 뒤바꿀 것이며 모든 중앙 시스템들이 분권화될 것이라는 주장은 한 종류의 종교라고 봐도 무방하다. 분권화와 중앙화 모두 필요한 곳이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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