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희 양금선, 수리대독 공저
제21화: 마고성(麻姑城) – 해저 궁전과 창조의 유산
< 조선 8도를 헤맨 사명자들의 고비 >
공로방의 세 사명자 시우, 진우, 하윤은 수십 일째 해안가와 산야를 뒤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내려진 미션은 바로 인류의 시원 여신이자 창조신인 '마고 할미(할망)'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형, 거제 마고산성부터 충주, 이천, 양주 노고산성까지 다 뒤졌는데 안 계셔. 영덕 마고산이랑 부천 할미산도 허탕이었고..." 하윤이 지친 듯 모래사장에 주저앉았습니다.
"지리산 노고단에서도 기척이 없었지.
" 진우가 지도를 살피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서대문 노고산동, 안동 마고동... 이름에 '할미'나 '마고'가 들어간 곳은 사당이며 바위며 다 가봤는데 말이야. 부산 해운대 마고당이랑 밀양 석굴까지..."
시우가 기록서 『부도지』를 펼쳤습니다.
"기록엔 마고성이 창세의 공간이고, 제주 설문대할망은 치마폭으로 흙을 날라 오름을 만든 거대 여신이라는데... 아무리 깊은 바다도 무릎 높이밖에 안 된다는 그분을 어떻게 찾지?"
사명자들은 처음으로 '실패'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그동안 어떤 수련과 역사적 해법도 척척 풀어냈던 그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허탈감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움직이는 화석산, 바다를 걷는 여신 >
"어? 저기 봐! 저 바위산이 움직이는 것 같아!"
하윤이 수심 200m는 족히 넘는 바다 한가운데를 가리켰습니다.
"야, 거대한 화산이 어떻게 움직여? 네가 너무 힘들어서 헛것을..."
진우가 말을 멈췄습니다. 정말이었습니다. 섬처럼 보이던 거대한 화석상이 아주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일행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진짜다! 무릎이 바다 위로 솟아 있어!"
거대 화석상은 어느덧 해변 200m 앞까지 다가왔습니다. 집채만 한 손을 들어 "그 자리에 기다려라"라는 듯 부드럽게 흔들었습니다. 일행은 공포와 경외감에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을 감았습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가까워질수록 두려움 대신 어머니의 품 같은 포근한 에너지가 전신을 감쌌습니다.
"너희가 나를 의심하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두려움은 접어두거라."
천지를 진동시키는 음성이었으나, 그 안에는 깊은 자애로움이 담겨 있었습니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너희의 스승이자 계곡의 여신인 백계(白溪) 선생의 전갈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너희가 꿈꾸는 신인간의 대건설 사업을 지지하는 할망이니라."
그때 하늘에서 천부인의 관을 쓴 거대한 백색 삼족오가 배만 한 날개를 펼치며 내려앉았습니다. 그 위에서 공로방의 할머니, 백계 선생이 인자하게 웃으며 내렸습니다.
"석계(石界, 마고의 애칭) 자네, 여전하구먼! 우리 아이들을 마중 나와줘서 고맙네."
수리대독, 2026
< 무지개 터널과 해저 마고성 입성 >
거대했던 마고 할망(석계)은 백계 할머니와 대화하기 위해 몸집을 수백 분의 일로 축소했습니다. 두 여신은 마치 친자매처럼 화기애애했습니다.
"석계, 오늘 우리 아이들에게 자네의 보물창고인 해저 마고성을 보여줄 수 있겠나?"
"물론이지요, 백계 선생. 지상에 산맥을 쌓을 때 함께 만든 나의 해저 궁전으로 안내하리다."
시우 일행은 설레면서도 걱정이 앞섰습니다.
"할머니, 해저 수백 미터라면 수압이나 산소 문제는 어떡하죠? 감압병이나 체온 저하도 무서운데..."
마고 할망이 빙그레 웃으며 '무지개 터널'을 열었습니다.
양자 흐름을 제어하는 이 터널은 무중력 진공 상태이자 고밀도 에테르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일행이 발을 들이자 빛의 입자들이 계단처럼 솟아올라 그들을 운반했습니다. 특히 특수 풀스펙트럼 조명이 그들의 몸을 투과하자, 폐는 액체 호흡 시스템으로 변환되었고 신체 밀도가 조절되어 심해의 압력을 전혀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입구에 다다르자, 대륙을 빚을 때 협력했던 12마리의 해룡 석상이 우렁찬 '우주의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마고의 손길이 흙을 빚고 백계의 미소가 빛을 뿌렸네... 유한한 육신에 갇힌 자들이여, 그대 안의 무한함을 보라!"
< 심해의 보석 궁전과 창조의 보물들 >
해저 마고성은 인공 건물이 아닌, 지구 중심에서 솟구친 거대한 에너지 수정체였습니다. 은은한 청백색 진주 빛을 내뿜는 그곳에는 기상천외한 보물들이 가득했습니다.
- 양자의 구체: 만지면 지구 산맥의 형성사와 지각 변동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기록 장치.
- 지구 설계도, 옥수(玉樹): 거대한 옥나무의 가지마다 지상의 대륙들이 매달려 있어, 대륙의 기운에 따라 잎사귀 색이 변하는 설계 모태.
- 성통광명 보주: 천계의 태양빛을 수신해 비추는 보석. 그 빛 아래 서자 일행의 뇌세포에 우주의 지혜가 직접 각인되었습니다.
- 물방울 거울: 흐르지 않는 액체 거울. 앞에 서면 전생과 미래의 '신인간' 형상이 투영되며 순수한 영혼의 기록을 보여주었습니다.
- DNA 전시관: 12지신의 성품이 인간의 DNA에 어떻게 이식되었는지 보여주는 생명공학 기록.
"할머니, 저기 우리 인간의 DNA 지도가 있어요!" 하윤이 경탄하며 소리쳤습니다.
백계 할머니는 마고 할망의 손을 잡으며 미소 지었습니다. "자네의 이 꼼꼼한 지구인 사랑은 수만 년이 지나도 여전하구먼."
석계 마고 할망은 인고의 세월이 담긴 화석 같은 손으로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너희가 '홍익'의 씨앗을 꽃피울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란다."
깊고 깊은 해저 200m 아래, 마고성의 보물들은 신인간의 새벽을 알리는 빛을 내뿜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