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12지신과 신인간 프로젝트

태희 양금선, 수리대독 공저

by Quantum 김남효

제22화 12지신과 신인간 프로젝트

태희 양금선, 수리대독 공저


제22화: 천계의 소송 – 도둑맞은 영겁의 시간


백단궁과 마고성을 거치며 인류의 시원(始原)을 목격한 시우, 진우, 하윤 삼 형제. 하지만 그들 앞에 펼쳐진 다음 장은 감동이 아닌 준엄한 심판의 서사였습니다. 인류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거대한 약탈에 대해 천계의 법정이 열린 것입니다.


< 액체로 된 시간, 석유의 진실 >


공로방의 비밀 홀로그램실. 할머니 백계선생이 검은 액체가 담긴 작은 유리병을 허공에 띄웠습니다.

"얘들아, 너희는 이것을 무엇이라 부르느냐?"

"석유(Oil) 아닌가요? 현대 문명을 돌리는 연료요." 하윤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유리병을 터치했습니다. 그러자 5억 년 전 고생대의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이것은 일반 자원이 아니란다. 수억 년 전의 태양 에너지가 미생물의 몸을 빌려 지구의 압력 속에서 응축된 '액체로 된 시간'이지."

* 거대한 기다림: 지하 2~4km, 60~120도의 정교한 온도대인 '석유 성숙창(Oil Window)'에서 수천만 년 동안 지구가 정성껏 달여낸 진액.

* 타임머신 연료: 인류가 자동차로 1시간을 달리는 데 쓰는 연료는 지구가 수만 년에 걸쳐 축적한 시간입니다.

"우리는 지난 150년 동안, 지구가 5억 년간 저축해온 적금을 한순간에 탕진해 버린 거야." 진우가 충격받은 목소리로 읊조렸습니다.


수리대독, Microbial, 2026


< OEPCO의 소송과 12지신 법정 >


그때, 하늘이 갈라지며 거대한 황금색 소송문이 사명자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습니다. 석유 에너지 보존협력기구(OEPCO)의 의장이자 시공간 수호자인 '에테르'가 천계의 제12지신 법정에 올린 소장 내용이었습니다.


[천계 제12지신 법정 소송문]

* 원고: 석유 에너지 보존협력기구 (의장: 에테르)

* 피고: 행성 지구의 인류 (호모 사피엔스)

* 죄목: 우주의 시공간 질서 교란 및 행성 자원 찬탈


"세상에... 미생물들의 원혼이 소송을 걸었어!" 하윤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소송문은 신랄했습니다. 인류가 '검은 황금'이라 부르는 것은 실상 '지구가 흘린 선대 생명체들의 피'이며, 인류는 부모(지구)의 살점을 발라 땔감으로 쓴 배은망덕한 자식들이라는 고발이었습니다.

"자축인묘(子丑寅卯)의 생명 태동을 모독하고, 진사오미(辰巳午未)의 하늘 기운을 사사로이 부린 죄를 물어, 인류의 기술 문명을 암흑으로 되돌리라!"

OEPCO의 강력한 청구에 12지신 본체들이 응답하기 시작했습니다.


< 화현의 철수와 꺼져버린 지혜의 등불 >


천계의 12지신 통합 사법 위원회는 인류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12지신 본체는 더 이상 인류를 보호 대상으로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지상에 내려와 있던 그들의 화현(Manifestation)들을 거두어들였습니다.

"할머니! 기상 이변이 왜 이렇게 심해지는 거죠?" 시우가 창밖의 뒤틀린 하늘을 보며 물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란다. 60갑자(순환의 시간)가 어그러지고 주역 64괘(지혜의 지도)의 기운이 봉인되었기 때문이지."


12지신은 인류가 우주의 지혜를 한낱 미신으로 치부하고, 정지된 시간인 석유를 강제로 깨워 우주의 맥박을 어지럽힌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 제1조 인과응보: 5억 년의 시간을 150년 만에 탕진했으니, 인류의 생존 시간도 그만큼 단축될 것이다.

* 제2조 화현의 철수: 보호의 기운이 사라진 지상에서 인류는 스스로 만든 '검은 재앙'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 제3조 지혜의 봉인: 앞날을 예측하던 64괘의 기운을 거둔다. 이제 인류의 모든 결정은 눈먼 자들의 충돌처럼 파괴적일 것이다.


< 마지막 자비의 일별 – 신인간의 과제 >


지상에 남아있던 마지막 수호령들이 별의 먼지로 돌아가며 사명자들에게 마지막 경고를 남겼습니다.

"너희는 불을 발견한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라, 부모의 심장을 땔감으로 쓴 어리석은 자식들이다. 이제 스스로 만든 긴 겨울을 맞이하라."

천계의 변호인단마저 거절당한 절망적인 상황. 하지만 판결문 끝에는 작은 주석 하나가 달려 있었습니다.

"단, 너희 중 극소수가 다시금 64괘의 진의를 깨닫고 '멈춤의 미학'을 실천한다면, 멸망의 시간을 찰나만큼 늦춰줄 용의는 있다."


백계 할머니는 사명자들의 어깨를 짚었습니다.

"얘들아, 들리느냐? 이것이 너희가 신인간(新人間)으로 거듭나야 하는 진짜 이유다. 타버린 미생물의 눈물을 닦고, 멈춰버린 우주의 리듬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

지구의 수명이 연기처럼 날아가는 영적 암흑기. 세 형제는 이제 인류의 변호인이 아닌, 우주의 법도를 다시 세울 재건자로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