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12지신과 신인간 프로젝트

태희 양금선, 수리대독 공저

by Quantum 김남효

제24화 12지신과 신인간 프로젝트

태희 양금선, 수리대독 공저


< 누에의 고독한 수행과 황금고치 >


“인간다운 삶에 우주정신이 깃들어 있다.”

우주사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경천애인(敬天愛人)과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실천 속에 있습니다. 희노애락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정심(正心)과 정도(正道)를 지키며 인간다움을 펼쳐나간 철희와 연희의 장엄한 서사를 시작합니다.


< 기근과 역병의 땅, 명덕리의 눈물 >

시기: 서기 1444년(조선 세종 26년)

배경: 대기근과 천연두라는 참혹한 재앙이 덮친 산골 마을 '명덕리'.

마을엔 시체 가마니를 덮을 짚단조차 귀해졌고, 황토를 파다 집안에 뿌리는 것이 유일한 방책인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이곳에 천계의 혈통인 박단과 웅족(熊族)의 후예인 하와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박단은 신시 단군의 자손답게 고결한 성품을 지녔으나, 역병과 기근은 그를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첫째 아들 '헌'을 역병으로 잃고, 자신마저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 아내 하와의 복중에는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 "부인, 우리 아이가 태어나면 철희(哲熙)라 불러주오. 밝고 빛나는 존재가 되어 세상을 비추길 바라오. 그리고... 우리 눈먼 어머니를 부탁하오."

>

박단은 아내의 손을 꼭 잡은 채, 푸른 빛으로 변해가는 손을 떨구며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무너져가는 흙벽 집에는 앞 못 보는 노모와 만삭의 하와만이 남겨졌습니다.


수리대독, 2026


< 웅족의 옥패와 기적의 탄생 >


남편을 보낸 지 2개월, 산모 하와에게 극심한 산통이 찾아왔습니다. 먹은 것이 없어 기력이 다한 하와는 흙바닥을 긁으며 통곡했습니다. 앞 못 보는 할머니는 새 짚단을 깔고 삼신할머니께 빌고 또 빌었습니다.

"삼신할매시여, 우리 며느리와 아이를 제발 살려주소서!"

천신만고 끝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절망한 하와는 가문 대대로 내려온, 곰의 발톱으로 만든 신성한 '웅족의 옥패'를 아이의 가슴에 품어주며 오열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싸늘했던 아이의 가슴에서 옥패가 눈부신 황금빛을 발했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아이가 팔을 휘저으며 숨을 크게 몰아쉬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머니 하와는 그 기적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한 채, 사흘 만에 남편의 뒤를 따르고 말았습니다.


< '보야'라 불리는 아이와 비밀의 수호자들 >


그로부터 5년 뒤, 아이는 마을에서 '보야(바보야)' 혹은 '거지 새끼'라 불리며 자랐습니다. 장님 할머니는 손자 철희를 살리기 위해 인근 마을까지 동냥을 나갔고, 홀로 남겨진 철희는 동네 아이들의 고약한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이 비극적인 광경을 가슴 아프게 지켜보던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바로 촌장댁 손녀 연희 아가씨였습니다.

분홍 명주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은 귀한 신분이었지만, 연희는 남몰래 주먹밥을 나뭇잎에 싸서 철희에게 건네주곤 했습니다.

철희는 아이들의 괴롭힘을 피해 마을 어귀의 수백 년 된 당산나무 밑에서 할머니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밤이 깊어 잠이 들면, 나무 옆의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장승이 신비로운 기운으로 아이를 안아 포근하게 보살펴주었습니다. 그것은 천계와 지계가 이 고독한 수행자를 보호하는 무언의 약속이었습니다.


< 죽음을 넘는 질주와 당산나무의 부름 >


어느 날, 할머니가 구걸을 나간 사이 동네 아이들이 철희의 집으로 들이닥쳤습니다.

"야, 이 거지 새끼야! 빨리 나와서 우리랑 놀자!"

철희는 공포에 떨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이들은 다정한 척 철희를 마을 밖 삼거리로 유인하더니, 이내 숨겨둔 막대기와 돌을 꺼내 무차별적으로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내가 죽으면 우리 할머니는 어떡하지?'

순간, 철희의 마음속에서 번개 같은 용기가 솟구쳤습니다. 그것은 박단 아버지가 물려준 '밝은 빛'이자, 하와 어머니가 남긴 '웅족의 강인함'이었습니다. 허기진 몸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철희는 일곱 명의 아이를 따돌리고 삼거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산 할머니, 장성님! 저를 살려주세요!"

눈물과 땀, 땟국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철희는 자신을 지켜주던 유일한 안식처, 당산나무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질주했습니다. 비록 몸은 누에처럼 작고 초라했으나, 그 안에는 세상을 구원할 황금고치의 꿈이 자라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