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아버지 임종실로 가셨어. 임종실로 가시면 대부분 이삼일 안에 돌아가신데...
아버지를 미워만 하고 살아서 돌아가실때 눈물도 안나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네.'
친구의 아버지는 식도암으로 꽤 긴 기간을 고생하셨는데, 이제는 보내드릴 때가 온 것인가보다. 평생 아버지를 미워하고 살아온 친구는 지금 복잡한 심경으로 힘들어 하는듯 하다.
친구는 아들의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만났다.
아들들의 생일이 같은 날이고 엄마들끼리 같은 나이인데다가, 둘다 퀼트를 좋아하는 같은 취미를 가진 터라 금방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 친구는 나중에 나에게 말하기를, 나와는 처음부터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얼굴 표정이 어둡고 땅만 처다보고 다니더라는 것이다. 단번에 자기와 같은 사람종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친구도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아마도 쉽지않은 시집살이와 까다로운 남편과의 갈등 등 나와 여러가지 동질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 친구가 그때 얘기해서 알게 되었는데, 그 당시 나또한 같은 문제로 본의아니게 어두운 얼굴을 하고 다녔던 것 같다.
친구와는 이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부족한 아버지 밑에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것도 공통점이었다.
미워하던 아버지를 먼저 보내드린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렇더라. 그런걸 애증이라고 하는것 같다..'
우연하게도 근무하는 사무실 남자들이, 능력없고 알코올 의존증인 아버지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항간의 편견과는 달리 무척 가정적이고, 가족을 부양할 능력을 갖춘데다가 가부장적이지도 않은 것 같아 보기에 좋다. 아마 자신들의 아버지와 다르게 하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더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태고적에 하나의 세포였던 생물이 암수로 분리되고, 어쩔 수 없이 암컷의 운명을 타고난 개체들은 오랫동안 수컷의 한부분으로 종속되어 살거나, 노예에 가까운 지위로 제대로된 인권을 누리지 못하고 가정이라는 굴레에 안주하면서 살다가, 최근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한 지위의 변화를 겪고 있는것 같다. 이제는 역차별이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는 터다.
수컷들도 지금까지 문화적으로 교육받고 은연중에 주입받은 가치관에 대해서 혼란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아마 우리 아버지의 세대도 삶의 끝자락 즈음에는 이런 혼란을 겪은 낀세대일 수 있다.
이 세상의 아버지 또는 어머니들이, 더이상 돌아가실 즈음에 자식들에게 애증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감정은 너무 혼란스럽고 낮설고 견디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