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 성적을 매겨 등수를 정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 획득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혼자 살 수 없고 서로 얽혀 늘 경쟁하기에 무의식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긴급 상황에 작동하는 신경이 작용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보통의 경우 긴급 상황은 짧게 지나간 후 안정을 찾는데 그렇지 못한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이 큰 문제다. 또한, 경쟁이 치열할수록 공포심을 자극하는 마케팅이 잘 먹힌다. 학원, 병원, 종교 등에서 볼 수 있다.
내가 학교에서, 집에서, 사회에서 받은 교육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지 개인의 행복을 찾는 교육이 아니었다. 친구가 갑자기 죽고, 지인이 세상을 떠날 때 비로소 삶에 대해 되돌아본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죽어갈 때가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행복을 찾아야 한다. 내리쬐는 날 아이스크림을 쥐고 핥아먹는 어린애처럼 짧은 생이, 일상생활이 소중해진다.
이제까지 행복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행복과 관련된 철학 책, 성경, 불경 등을 읽었는데 와닿지 않았고, 읽고 난 후 머리에 남지 않았다. 또한, 먼 과거를 배경으로 한 책들이어서 현재의 현실과 딱 맞지는 않았다.
행복을 바르게 인식하기 위해 사회 현상과 관련된 개념을 하나하나 짚어 보고 재조립하는 과정과 실제 경험을 통해 맞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자아가 생각, 감정, 의욕과 몸의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 걱정, 노화, 승자, 강자, 속도, 낮춤, 기대, 목표, 계획, 삼세, 노력, 성실, 공생, 돈 등 일상의 여러 추상적인 개념들에 대해 발가벗겨 본질을 필요가 있었다. 고민할 때 노자, 법륜 스님의 말씀을 참고했다.
행복을 공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행복지수(만족도)= 결과(A)÷결과에 대한 기대(B)
결과(A)=f(노력, 외부환경(남 포함))
행복지수는 결과가 좋고 기대치가 낮으면 올라간다. 행복지수가 높은 상태를 문장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기대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고, 존중하며,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결과는 내 노력, 남과의 관계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노력은 내가 통제 가능한 투입 변수이다. 즐겁게, 한 걸음씩, 오래 노력한다. 남과 환경은 통제 불가능한 투입 변수이다.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의 변화는 빨리 파악하고 적응한다. 환경의 일부인 남에 대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따뜻하게 대한다. 먼저 내 자만심을 낮추고 남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下心) 남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내가 좋고 남이 좋은 일을 선택하고, 남는 쪽이 부족한 쪽에 베푼다. 남만 좋으면 내가 견디지 못하고, 나만 좋으면 다 떠나 남는 사람이 없다.
결과는 내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결과는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산출 변수이다. 이미 발생한 결과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따라서 산출 변수인 결과가 잘 나오면 좋게, 잘 안 나오면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기대치를 낮추려면 기대하지 않고 빈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無心). 나, 남과 환경에 대해, 성과와 보상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다. 성과와 보상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은 노력하는 것과 성과, 보상을 연결시키지 않음을 의미한다. 즉, 성과, 보상에 상관하지 않고 그냥 노력하는 삶이다. 성과나 보상은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요소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성과나 보상에 집착하지 않고 성실하게 노력한다. 동기 부여가 외부(성과나 보상)가 아닌 내부동인에 따라 성실하게 노력하기 때문에 만족도가 올라가며 인생에서 승자가 될 확률이 더 높다.
행복한 사람은 마음이 건강할 뿐만 아니라 몸도 건강하다. 잘 먹고(마음, 공기, 물, 햇볕, 음식), 잘 움직이고, 잘 자고, 잘 싸면 몸이 행복하다. 몸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 스트레스 있으면 소화가 안 되고, 긴장하면 몸이 유연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불안하면 잠이 잘 안 오거나 중간에 깨고, 대변이 묽고 가늘며 냄새가 난다.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나도 존중하고 남도 존중하는 자세(낮추는 자세)를 가지며, 자기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다. 숨을 쉴 때 아랫배까지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는다. 맹물을 자주 마시고, 오갈 때 걸으면서 햇볕을 쬔다. 배고플 때 채소와 과일 등 자연식을 하고, 너무 늦게 자지 않는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직접 추구하는 대신 기대하지 않고 성실히 노력하는 행복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행복을 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는 경우 자본주의 현실에 맞지 않고, 경쟁력이 없어 패자나 약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장하는 그런 행복론이 경쟁력이 없다면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없으며 비현실적인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그런 행복론이 사회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요지는 다음과 같다.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이 진정한 승자다. 인생에서 승자는 강하고 우수한 자가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자다. 오래가는 사람의 특징은 부드럽고 약하며, 나를 낮추어 나도 존중하고 남도 존중한다.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것을 선택하며 남과 다투지 않고 공동 이익을 성실히 추구한다. 부드럽고 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강하고 단단한 사람보다 유연해 순간 가속도를 높일 수 있고, 남을 모이게 하는 매력이 있다. 빠르고 잘 뭉치면 힘이 센 강자다(F(힘)=V(가속도) XM(질량)). 또한, 부드럽고 약한 사람이 탄력성이 뛰어나 상황 변화에도 유들유들 잘 적응해 부러지지 않고 오래간다. 오래가는 일을 즐겁게, 무리하지 않고, 길게 노력하며, 기회도 많이 주어져 최종 승자가 된다. 기대치가 낮고 성실히 노력하는 사람 즉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행복지수(만족도)=결과÷결과에 대한 기대치)이 진정한 강자이자 승자다.
행복은 상대적이다. 돈이 100억 원이 있더라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으며, 1억 원이 있어도 행복할 수 있다. 행복지수는 기대치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기대치가 높은 사람은 행복함을 느끼기 어렵고, 결과가 남들이 보기에 괜찮더라도 자기 예상보다 낮게 나오면 불행해진다.
행복은 목적지에 도달해야 달성되는 그런 게 아니다. 행복은 과정이다. 벨기에 출신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쓴 《파랑새》가 떠오른다. 행복이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짜 거기로 가서 그것을 하면 그 자리에 행복은 없다. 행복을 가두어 붙잡아 둘 수 없다. 마치 밤의 궁전에서 파랑새를 잡아 새장 속에 넣었지만 밤의 궁전을 떠나는 순간 파랑새가 햇빛을 받아 죽는 것과 유사하다.
행복의 목적지는 우리에게 강렬한 자극을 주는 그 무엇이나 그 어떤 곳이 아니다. 행복은 일상에 널려 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행복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뜨면 행복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틸틸 남매가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왔을 때 세상은 꿈꾸기 이전과 달라 보였다. 세상을 대하는 틸틸 남매의 마음의 눈이 바뀌었을 뿐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매일 행복 연습이 필요하다. 나에게 행복을 주는 행복 연습은 결혼 생활, 걷기, 일, 교육과 청소다. 걷기는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행복 연습이고, 결혼, 일, 교육과 청소는 관계 맺는 것과 잘 어울려 지내기 위한 행복 연습 수단이다. 나를 낮추고 남을 존중하기(下心), 자기 생각 없이 빈 마음으로 바라보기(無心),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특성이 있는 말을 줄이고 듣기(不言), 의도로 하지 않고 기다리며 간섭하지 않고 3인칭 관점으로 바라보기(無爲) 연습을 매일 했다.
이제 몸 건강을 챙길 나이다. 나이 드신 분들 중 허리가 굽은 분, 걸을 때 총총걸음 하시는 분, 잘 못 걷는 분 등 신체 이상이 있는 분들을 자주 본다. 나이 들면 죽어간다. 몸이 뻣뻣하고, 건조하며, 차갑다. 매일 걸으면서 몸의 건강과 마음의 평온을 얻는다.
결혼 생활은 나와 아내의 관계, 일은 나와 고객, 교육은 나와 자녀의 관계를 원만히 하기 위한 행복 연습이다. 또한, 청소는 나와 관계 맺는 가족이 즐겁게 생활할 공간을 만드는 행복 연습이다.
배우자가 나를 원하면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내버려 두고 간섭하지 않는다. 아내가 엄마가 되면 엄마가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애들은 매년 나이가 한 살씩 늘어날 때마다 5%씩 의사결정권을 인정한다. 20살이 넘으면 실패하더라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게 한다. 애들이 결정하며, 부모는 도우미 역할에 만족한다. 부모는 가정의 환경 조성자다. 아빠가 청소를 하면 엄마도 애들도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다. 공간은 사람의 마음 상태를 반영한다. 이리저리 옷과 양말이 널려 있고, 수납장, 옷장 문이 열려 있는 경우 마음이 정리되지 않고 어수선할 확률이 높다. 또한 청소할 때 넘치는 것을 버리기에 있는 것의 가치가 살아난다. 허리 숙여 청소할 때 낮춤으로써 겸손과 안정감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나, 남과 환경을 있는 그대로 인식해야 결과가 좋고 만족도가 높아진다. 그것들이 인식 속의 존재, 확률적 존재, 에너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 남과 환경은 인식해야만 느낄 수 있는 존재이다.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머리를 통해서만 그 존재를 느낄 수 있고, 인식할 때 생각, 도덕 등 주관이 개입된다는 의미이다. 나, 남과 환경은 내 머릿속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주관이 개입되기 때문에 왜곡하여 인식할 수 있다. 나, 남과 환경은 내 머릿속으로는 편집하여 변화시킬 수 있으나 그 존재 자체를 단기간에 내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없는 존재들이다. 마음을 다음과 같이 단단히 먹는다. 낮추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빈 마음으로 바라본다. 말하기 전에 먼저 듣는다. 말이란 자기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 남과 환경은 확률적 존재이다. 한 측면으로 고정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모습은 인연법칙에 따라 한 측면만 드러난 것이다. 현재 상태로만 나, 남과 환경을 평가할 수 없다. 인연이 변하면 인연법칙에 따라 다른 여러 측면이 존재할 수 있다. 단점과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나, 남과 환경은 에너지다. 그것들은 입자이자 파동 에너지다. 그것들의 생각, 말과 행동은 에너지가 있다. 파동을 치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상대가 나에게 화를 내거나 인격 모독하는 말을 해 내 기분이 나빠졌다면 말의 에너지가 나에게 흡수된 결과다. 그 말에 동요되지 않고 쓰레기라고 생각해 버렸다면 그 에너지가 흡수되지 않아 내 기분이 나빠질 리 없다. 또한 에너지는 파동이므로 상승과 하락이 있다. 실패로 인해 하락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실패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늘 있는 일이다.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다시 도전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상승할 때 겸손하고 하락할 때 두려워하지 않으면 상승 추세를 그린다.
나는 자본주의와 경쟁에 대해 배웠지 행복에 대해 적절히 교육을 받지 못했다. 딸들이 아빠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세상살이가 힘들거나 행복을 찾는 사람에게 조그마한 위안과 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3년 5월
누룽지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