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 나: 자아 정체성 2

by 누룽지조아

아빠! 자아가 있든 없든 무슨 의미가 있어? 딸! 나를 고정된 틀에 가두지 말라는 이야기야. 자기를 고정시키면 가능성이 축소되고, 자기를 하나로 맞추느라 괴롭지. 여러 명의 자아가 있을 수 있다고 마음을 열어봐. 수많은 자아를 받아들이면 자아들끼리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더 자연스럽게 살 수 있어. 생각해 봐. 외향적인 자아라고 해도 조용히 있고 싶은 나,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싶은 나, 학원 가기 싫은 나도 있고.


그런 나들을 무시하면 문제가 생겨. 잘난 자아나 못난 자아도 차별하지 않고 인정해야 해. 하나의 나로 고정시키면 나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거지. 부담감도 점점 늘어나 삶이 무거워. 부담감으로 우울해지고 그게 커지면 터지고 말아. 예로 남에게는 친절한데 자기 엄마에게 모질게 대하는 학생이 있어. 엄마는 그런 애를 무서워해. 그 학생은 자기도 모르게 억누르고 있는 자아가 비난하지 않고 받아줄 것 같은 엄마에게 분출되는 거지. 그런 억눌린 나들을 달래주어야 폭발하지 않아. 바라보고 놔두는 연습이 필요하지.


바라보는 연습은 체중을 재는 것과 비슷해.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고 자책하지 않고, 현재 몸무게를 수용하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훈련이야. 만약 몸무게가 지나치면 스스로 먹는 거나 운동으로 조절하지.


아빠! 그 엄마가 애를 무서워하고, 바라보고 놔두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지 않아. 딸! 아빠가 말하는 바라보고 놔두는 연습은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야. 내가 한 말이나 나 때문에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겨낼 수 있게 옆에서 도와주는 거지. 학생에게 이렇게 말하고 진짜 이렇게 생각해. “뭐 하나 한 것 없어도, 이룬 것 없어도 자책하며 불안하거나 아파하지 않아도 돼. 태어나고 살아가는 것 그 자체로도 소중한 존재야. 옆에 있는 것만으로 내 즐거움이지.” 학생이 묻기 전에는 말하지 않아. 상처 있는 애에게 아물기 전에 성급하거나 강요하는 말로 또 상처가 날 수 있거든. “지금 이게 사는 거니. 너 때문에 못 살아. 쓰레기 치우고 살아라. 학원 안 가니? 좀 어디라도 나가라. 이제부터 정신 차려. 잘할 수 있어.” 조언이나 충고랍시고 자기 의견 말하는 것은 애에게 도움 되지 않아. 말해야 한다면 감정에 공감하는 말을 부드럽고 약하며 따뜻하게 말하지. “밥 먹었니? 오늘 기분 어때?” 이런 상황에도 엄마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받고 있다는 마음이 닿아야 관계가 살아나고 내게로 오지. 그 엄마는 언제 정상적인 생활을 할지 몰라도 초조하거나 괴롭지 않아. 진짜 옆에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즐거우니 기약 없어도 좋다고 생각해. 엄마는 이미 가버린 것은 후회하지 않고 가게 놔두고, 오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고 오게 놔두어. 어쩔 수 없으니까.


영유아일 때는 복잡한 자아가 없어.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아 사회적 관계로 생기는 자아가 없는 거지. 사회관계가 형성되면 자녀로서 나, 학생으로서 나, 친구로서 나 등이 생겨. 자아도 많아지지. 그런 자아들은 인정을 받고 싶어 해. 그리고 인정받도록 훈련을 받아. 엄마나 선생님이 봤을 때 잘하면 애에게 스티커 주고 맛있는 거, 용돈도 줘. 그 기대에 못 미치면 한 소리 듣고 스티커 등도 안 주니 불안해지지. 사회가 기대하는 자아상이 만들어져.


남이 기대하는 자아는 항상 우리를 따라다니고 무의식에 잠재해 있어. 그런 자아가 외칠 때 거기에 맞춰 살면 힘들고 누구를 위해 사는지 후회가 밀려와. 갈등을 일으키는 자아를 바라보면서 달래 주고 사그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그러면 폭발하는 일도 없어.


딸! 우리라고 생각하는 자아, 바라보며 달래주는 자아가 변화가 적은 자아야. 어떤 감정이나 생각도 바라보며 달래주어야 하기에 어떤 편에도 속하지 않고, 어떤 감정에도 속하지 않아. 바라보는 자아를 보통 보편적 자아라고 하지. 아빠는 신성, 불성, 도, 양심, 본성이라고 생각해. 예상하지 못한 자아가 나올 때 자꾸 억누르면 당하는 자아는 복종을 강요받고 죽임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 위협을 느끼고 숨어 버리지. 그 후 세력을 키우고 싸울 만하면 반란을 일으켜. 감정 폭발이야. 바라보고 달래 주는 자아와 다른 무수한 개별적인 자아가 내 몸과 마음을 빌어 공존하며 살고 있어.


아빠! 그러면 어떤 것이 진짜 나야? 응. 그건 여러 모습이 모두 나지. 사람들은 변하거나 존재를 특정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 그래서 바라보는 자아가 텅 비었다고도 표현하지. 어쩌면 바라보는 자아가 상황에 따라 이런저런 개별적 자아를 낳는 것 같아. 우리는 개별적 자아만 느낄 수 있는 거지. 바라보는 자아는 영사기의 빛과 같아. 화면에는 움직이는 물체가 있는데 따라가 보면 바라보는 빛만 있고 아무것도 없어.


딸! 이런 훈련도 해 봐. 코끼리를 코로 생각하거나 코, 머리, 몸통, 다리로 생각하지 않고 폭넓게 생각하는 훈련이야. 코끼리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방법이지. 코끼리를 그릴 때 코끼리와 관계되는 다른 것까지 그리는 거지. 코끼리의 코, 머리. 몸통, 다리뿐만 아니라 주변에 관계있는 다른 것도 그려 넣어 봐. 물, 땅, 풀, 공기, 나무, 먹이, 사육사 등도 같이 그려 넣는 거지.


아빠! 아빠 생각은 알겠는데 시험 볼 때 그렇게 답하면 안 될 것 같아. 딸! 맞아. 교과서에 자아 정체성이 뭐라고 나왔는지 아빠가 몰라서 답하기 어려워. 아마 개념으로 보면 시간적으로 동일하고 연속성이 있다고 기술했을 것 같은데. 다만 시험을 진리 탐구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리는 모순을 포함하고 있어 참과 거짓으로 나누지 않거든. 시험이란 게 출제위원과 학생들 간의 약속이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 같아. 사람끼리 약속한 정답이 참이고 그 이외는 거짓이지.

명심할 것은 세상은 사람들 간의 약속대로 움직이지 않아. 시험지처럼 참, 거짓을 쉽게 나눌 수도 없지. 세상은 절대자의 뜻대로 움직여. 세상의 작동 원리나 법칙이라고 해. 절대자와 피조물 간의 약속이지. 늘 세상의 작동 원리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세상은 움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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