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 나: 자아 정체성 1

by 누룽지조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밤에 딸이 자아 정체성에 대해 물었다.


“아빠! 내 정체성은 무얼까? 내가 누구야? 내가 나를 알아야 나답게 살 수 있잖아. 그런데 잘 모르겠어. 딸! 지루하고 긴데 잘 들어줄 수 있니? 그래 노력해 볼 게. 딸!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야. 여러 주장이 있을 수 있어. 나를 몸, 감정과 생각, 과거 추억 등으로 생각할 수 있어.


딸! 먼저 나를 내 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야. 그런데 자아는 몸이 아닌 것 같아. 몸은 수시로 변하고 앞으로도 변해. 사고 나서 팔, 다리 잘릴 수도 있고. 기분에 따라 표정이 변할 수도 있어. 피부 세포는 1달, 제일 오래 걸리는 뼈세포는 7년이면 다 교체돼. 이렇게 수시로 변하는데 어떤 몸이 나일까? 현재의 내 몸은 영속적이지 않아. 영속적이지 않는 몸을 자아라고 특정 지을 수 없어.


딸! 나를 생각이나 감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그런데 생각도 몸과 마찬가지로 수시로 변해.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있어. 한 생각 있다가 다른 생각이 생겨나지. 남자 친구를 좋아했다가 싫어질 수도 있고. 이렇게 수시로 변하는데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나일까? 내 생각이나 감정을 자아라고 말할 수 없어.


딸! 나를 과거 경험이나 추억을 간직한 게 나라고 주장할 수 있지. 내가 알던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의 과거 경험이나 추억이 다른 경우 딴 사람이라고 의심하지. 기억상실증이나 치매 걸려 기억이 없거나, 사고로 뇌 다쳐 과거에 대해 생각나지 않는 경우 사건 발생 전의 그 사람이 아닐까? 과거 경험이나 추억을 간직한 걸 가지고 자아라고 말할 수 없어.


딸! 자아 정체성 찾는다고 고생할 필요 없을 것 같아. 무수히 많은 내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지. 순간순간 그 모습, 생각, 감정, 경험이나 추억이 모두 나야. 다른 말로 하면 무수히 많아 고정시킬 수 있는 내가 없다는 말과 같아. 내 것인 내가 없다는 말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너는 몸, 생각, 감정, 의욕, 전체를 통괄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런데 그것들은 사실 늘 변해 무수한 자아가 있고, 내 것으로 만들어진 게 아무것도 없어. 이것저것 자연에게서 빌려왔지. 원래 내 것이 없고 내가 그것들의 원주인도 아니야.


딸! 내가 어떤 것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해 봐. 자기의 몸, 생각, 성격 등 이렇게 생긴 게 나라고 써 놓고 20 년이 지난 후 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 몸, 생각, 성격 등 너무 달라 그때 왜 나를 이렇게 생각했지라고 의아해할 거야. 내성적인 사람이 스피치 학원 다니고, 사람 많이 만나는 직업인으로 생활하다 보니 외향적으로 변할 수 있어. 번개 맞은 충격처럼 어떤 느낌이 와서 변할 수도 있고. 인간은 안 변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쉽지는 않지만 변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아빠 생각으로는 외향적으로 바뀌었으면 숨어 있던 외향적 성격이 겉으로 드러났고 내향적 성격이 숨었다고 봐야 할 것 같아. 원래 외향적 성격이 없었다면 스피치 학원 등으로 어떻게 생기겠어. 순간순간의 자아가 모이고 모여 또 다른 자아를 되고 그 자아는 또 변하지.


무수한 자아가 있다고 해도 맞고 고정된 자아가 없다고 해도 맞아. 자아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야. 알뜰신잡에서 이런 실험을 했어. 진짜 손과 동일하게 고무손을 만들어 놓고 진짜 손과 동일하게 움직이게 해. 그다음에 망치로 고무손을 내려쳤어. 망치로 맞은 사람은 경악을 했어. 그 가짜손이 자기의 일부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지. 인간은 착각하기 쉬운 동물이야.


아빠! 사람들이 고정된 내가 없고 너무 자주 바뀌어 나를 신뢰하지 않으면 어떡해? 딸! 그래서 잘 안 변하는 양심이나 세상의 작동 원리를 탐구하고, 거기에 따라 살도록 마음 수양을 하는 거지. 만약 세상이 바뀌면 나도 바뀌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겠니! 아빠가 보기에 안 바뀌는 것이 더 이상한 것 같은데. 조심할 게 있어. “어떻게 사람이 변하니!”라고 신뢰성을 공격 무기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어. 네가 안 바뀌어야 예측하기 쉬워서 다루기 편하지. 그런 꼼수에 당하지 마. 환경 변화에 민감한 상대는 이미 바뀌었을 걸. 안 바뀌었다면 어리석은 사람일 수 있어. 전쟁이 났는데 적이 잘 바뀌지 않아 행동이 예상 가능하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쉬운 적이야.


아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있는데 왜 자꾸 없다고 해? 딸! 내가 있다는 생각을 바꾸는 것은 진짜 어려운 일이야. 사람들은 보통 나를 내 몸과 부속기관이라고 생각을 가지고, 나와 남을 구분하고 나에게 이로운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아빠의 말은 네가 지금 없다고 하는 말이 아니야. 네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딱 부러지게 뭐라고 규정할 고정된 네가 없다는 말이지. 무수한 자아가 존재하므로 네가 생각하는 자아는 그중에 하나지. 지금 네가 너라고 하는 너도 순간의 너이기 때문에 아주 틀린 말이 아니지.


종교 서적 등에서 진리에 대한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코끼리를 말할 때 코끼리는 ‘코다.’라고 말하면 어이없겠지. 코끼리는 ‘코가 아니다.’라고 말하면 틀리지 않지. 진리라고 하는 것은 ‘~이다.’라고 단정적인 표현을 하지 않지. 양면을 포함하고, 모순까지 포함해야 진리이니까. 그래서 보통 ‘~아니다.’라고 표현해. 그것 말고도 더 있고, 부분이 아니고 관계되는 전체라는 뜻을 부정문에 담는 거지.


예를 들어 세상에는 음, 양이 있어. 음양이 있는 세상을 음이다, 양이다, 음과 양이라고 표현하지 않아. 음이 아니고, 양이 아니라고 표현해. 음과 양의 한 면만 있는 것이 이니라는 말이지. 또한, 음과 양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관계를 맺고 있어 음양이 같지 않고 다르지도 않다고 표현해. 즉 두 가지는 혼재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표현이야.


아빠! 궁금해. 고정된 자아나 집착할 자아가 없으면 무엇이 있어? 딸! 아주 수준이 높고 어려운 질문이야. 나무를 예를 들어 볼 게. 나무는 뿌리, 줄기, 가지, 나뭇잎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지. 꼭 맞는 말은 아니야. 나무 말고 다른 것도 있어. 물, 흙, 공기, 햇빛, 사람, 자동차, 그 옆의 다른 나무 등 관계되는 많은 것들이 있지. 다음 중 어떤 대답이 맞겠니? 나무는 뿌리, 줄기, 가지, 나뭇잎이다. 다른 대답은 나무를 구성하고 있는 것과 관계되는 것들의 합이다. 두 번째 대답이 멋있지 않니? 집착할 내가 없는 경우 나를 포함한 우리 또는 공동체가 있는 거지. ‘나’라는 자아에서 ‘우리’, ‘공동체’로 자아가 확대돼.


아빠! 어려워. 딸! 어쩌면 내가 독립적 존재가 아니고 나를 포함한 관계 맺는 것들의 존재인 거지.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나는 나를 온전히 통제할 수 없고, 환경 등과 연결되어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의미지. 앞에서 예를 든 나무를 다시 생각해 보자. 나무는 물, 땅, 뿌리, 줄기, 가지, 나뭇잎, 차, 공기, 사람 등에 영향을 받지. 나무를 뿌리부터 이파리까지만 나무라고 확신할 수 있겠니? 나무는 나무를 포함한 환경도 나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고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나를 우리 또는 공동체로 확대한 개념이야.


어떤 사람이 굶는 노인을 위해 점심 무료 배식을 한다고 생각해 봐. 내 몸과 정신만 나라면 나에게 도움 안 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겠어. 생각을 바꾸어 내가 우리 또는 공동체라고 생각해 보자. 우리 식구 중에 굶는 사람이 있고 내가 여유가 있는 경우 굶는 식구에게 밥 주는 게 당연하지 않겠니! 굶는 식구가 있는데 모른 척하는 게 더 이상한 것 같은데.


아빠! 내가 없고 내가 누군지 모르는데 어떻게 나답게 살 수 있어? 딸! 응~. 그건 순간순간이 너이므로 순간순간 조용히 너에게 물어보고 네 마음의 소리를 듣는 거지. 할까 말까? 내가 좋아하나 싫어하나? 네가 하려고 하는 게 세상의 작동법칙에 맞는지 네 마음에 물어보고 네 마음이 들려주는 대로 사는 거지.


아빠! 고정된 내가 없으므로 내 마음 가는 데로 살면 되는 거지! 딸! 수양하지 않는 맘으로는 인간의 한계 때문에 세상을 있는 그대로를 못 봐서 흐름대로 살기 어려워. 있는 그대로 보려면 세상을 세상의 작동 원리에 따라 바라보는 훈련을 긴 기간해야 해. 그다음에 네 마음을 세상의 흐름에 놓아버리고 내맡기면 돼. 네 마음대로 살아도 그 흐름에 벗어나는 법이 없어.

아빠! 세상의 원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 내가 없으면 의사 결정을 어떻게 해야 해? 딸! 세상의 작동 원리는 이래. 세상은 확정되어 있지 않고, 인과 관계에 따라 변해. 상호 작용하며, 내가 보는 것과 남이 보는 것은 다르다는 거지.


의사 결정할 때는 우리가 좋은 것을 선택하면 될 것 같아. 우리라고 생각하는 경우 나와 남이 구분되지 않는 상태야. 만약 내 것이 생겨 내 이미지가 생기는 경우 나도 남도 보호해야 해. 그래서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것을 선택하지. 우리 가족의 일에 적용하면 이해가 편해. 휴가를 어디로 떠날까 고민할 때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곳을 선택하면 돼. 나와 우리가 갈등할 땐 어떤 선택이 세상의 작동 원리와 더 어울리는지 고려하지. 그렇게 생각한 후로 아빠도 의사결정이 좀 쉬워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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