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 기다림

by 누룽지조아

세상은 스스로 시시각각 변화한다. 때가 있다. 억지로 변화시키고자 하면 오히려 망한다. 가는 것은 가게 내버려 두고, 강한 것은 강하게 내버려 둔다. 나도 내버려 두고 남도 내버려 둔다.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 하기보다 일단 피하고 때를 기다린다.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느림의 미학 구간이다. 아무 때나 기다리는 게 아니다. 세상의 흐름이 아직 오직 않아 불가피한 경우 뜸 들이는 시간이다. 위기가 아니라 어쩌면 기회다. 좋은 것을 기다리는 때는 설레고, 좋지 않은 것을 기다리는 때는 두렵다. 초조하지 않고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도중 눈사태가 일어나면 바위 뒤로 숨는다. 밤이 와도 마찬가지다. 어디에 걸터앉아 때를 기다린다. 용기 있게 전진하면 죽음뿐이다.


내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환경, 관계, 때, 장소 등의 인연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기발한 제품도 때가 되지 않아 잘 안 팔릴 수 있다. 잘 맞을 것 같은 여자친구도 때가 되지 않아 나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다.


현대 사회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그 빠름을 좇아가지 못하면 낙오되고 능력 없다고 한다. 느리기만 한 느림은 힘이 없고 답답해 죽는다. 속도를 내는 것이 힘이 크며 강하다. 그러나 강함만을 추구할 수는 없다. 강하기만 하면 유연성이 없어 부러질 수 있다. 또한, 계속 힘을 주면 에너지 소모가 많아 금방 퍼진다.


부드러움 속에 강함을 감춘다. 빠른 스피드를 지닌 사자가 바위에 엎드려 쉬고 있는 모습이다. 근육, 뼈와 인대를 단련하고 힘 빼는 연습을 하며, 꼭 이기려는 강한 의지나 두려움을 꺾는다. 수련으로 얻은 빠름으로 몸은 무의식적으로 움직여 빠르고, 마음은 승부욕과 조급함을 버려 느리다. 빠름과 느림이 균형을 이룬 상태다.


때가 오면 기다림은 끝난다. 빠름의 미학 구간이다. 때가 온 순간이 느림에서 빠름으로 변하는 변곡점이다. 때가 오면 맹수처럼 빠르게 움직인다. 마치 사자가 목표물을 낚아채는 때가 그려진다.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던 사자가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홀쭉해졌다. 목표물의 가속도가 떨어져 최저라고 생각하는 순간까지 기다린다. 사자가 목표물에 조심스럽게 접근한 후 정신을 집중하고 폭발적인 스피드로 달려든다.


서퍼는 파도가 오도록 할 수 없다. 파도의 높이, 간격이나 방향도 어떻게 할 수 없다. 때를 기다릴 때 균형감각, 기술, 체력, 인내심, 자연에 대한 겸손, 힘 빼기를 연마한다. 때가 오면 기다림은 끝나고 보드를 들고 잽싸게 바다로 뛰어 나간다. 서퍼는 높고 거친 파도가 몰려오는 바다에서 물과 맞서지 않는다. 힘을 빼고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파도 속으로 들어갔다 위로 솟아오른다. 물과 친구가 되어 자유롭게 노닌다.


때를 기다리면서 몸은 반복 훈련으로 무의식 중에 반응이 나올 정도로 빠르고, 마음은 승부욕과 조급함을 버려 느린 상태로 연마한다. 때가 오면 사자처럼 조심스럽게 접근한 후 정신을 집중하고 폭발적인 스피드로 달려들어 먹이를 낚아채 즐긴다.


인생에 기다림과 때는 반복된다. 기다림은 길고 먹이 먹는 때는 짧으나, 여유있게 기다려서 좋고 배고픈데 먹을 수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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