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룽지조아 Nov 29. 2023

1. 마무리: 중얼거림

제8장 행복에 대하여

[기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수용하며,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한다.


외부 존재에 대해 일어나는

생각ㆍ감정ㆍ의욕에 집착하지 않는다.


현재 순간의 내게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하며,

나도 남도 존중하고 타협하며 포용하고,

환경도 내 일부분임을 깨닫고,

환경 흐름의 방향을 바라보고 흐름에 맡긴다.


태어나고 살아 있음에 항상 경외하고,

이미 완벽한 지금 여기에 감사합니다.]


어느 날 엄마에게 큰딸이 자퇴하고 싶다고 했다. 밤 10시쯤 큰딸을 학원에서 태우고 집으로 왔다. 큰딸에게 산책 갈래?라고 물었다. 큰딸은 “오키”라고 대답했다. 둘이 고등학교 운동장을 걸었다. ‘기대하지 않고, 현재의 나에 집중한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한 바퀴를 돌고, 그다음에 질문할 수 있게 했다. 큰딸은 한 바퀴 돈 후 첫 질문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이 다가오지 않는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으로 어떤 것이든 변하므로 내 생각을 어느 한 곳에 고정시키지 않고, 거기에 얽매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런 의미라면 큰딸은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다.


두 번째 질문은 현재의 나에 집중한다는 말을 모르겠다고 했다. 현재에 집중과 나에 집중을 결합한 말로 과거 후회하지 않고 미래 두려워하지 않으며 현재 할 일 하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나에 집중한다는 말은 외부 사물이나 대상에서 오는 외부자극이 아니라 오직 나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라고 말했다. 친구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간섭하지 말고 그건 네가 알 바 아니고 너에게 신경 쓰라고 했다. 친구는 네가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고 그들은 그들 인생을 살아가도록 놔두라고 말했다. 큰애는 알았다고 했다.


다음 질문은 그 말 중얼거리면서 관계되는 것을 상상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것은 중얼거림이 아니라 잡념이라고 했다. 그 말에만 집중하거나 중얼거리면서 걷는 움직임에만 집중하고 딴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한 5바퀴 돌고 딸은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고 했다. 자기 전과 일어난 후 그 문장 암송하면 흡수가 더 잘되, 고등학교는 운 좋은 수련기간이라고 말해 주었다.


1주일 정도 잠잠하다가 다시 자퇴하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 금요일 학교에 지 않았다. 엄마하고 우면산 정상에서 읽으라고 지하철  플랫폼에서 쭈그려 앉아 쓴 카톡 편지를 보냈다. 딸은 산에 갔다 온 후 침대에 드러누웠다. 엄마는 아는 친구, 선생님, 전문가 등에게 말했고 만나거나 통화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자퇴의 논리에 변화는 없었고 더 강화한 것 같았다. 토요일에 이공계 대학 졸업하고 수능 다시 보고 입학해 내과 의사를 하고 계시는 분과 딸이 통화했다. 딸의 마음을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잘 보듬어 주었다. 딸의 주장을 듣고 딸이 가졌던 자퇴의 낭만적인 생각에 대해 현실적으로 조언을 해주었다. 생각을 돌리는데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시험기간인데 친구들 엄마에게 양해를 구하여 친구를 초대했다. 그렇게 토요일을 보내고 잠이 들었다.


일요일이다. 딸은 아빠하고 대면해서 이야기할 마음을 아직 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아빠는 침대에 누워 '자퇴 소동에서 아빠가 배우다'라는 글을 카톡으로 보냈다. 아침 산책 갔다 와서 딸 방에 들어가 아빠 편지 읽어봤냐고 물었다. 딸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마음 잡았다고 했다. 가슴이 뛰었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고민을 짧게 끝낼 수도 있을 것 같아 천만다행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는 3일 동안 잠 잘 자지 못하고 먹지도 못했다. 딸과 장기전을 치르려 엄마의 정신과 육체 건강이 중요했다. 엄마가 힘에서 밀리고 있어 기분 전환 겸 작은애와 동네 산책을 나갔다. 아내의 긴장을 풀어 줄 희소식을 전화로 알렸다.


딸에게 말해 주었다. "동네방네 소문났다고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아라. 인생에 상승과 하락은 당연한 거야. 아빠는 딱지를 100번쯤 맞았는데 멀쩡해. 오히려 친구들이 괜찮냐고 물어보면 큰 열병을 앓고 잘 쉬었다고 말할 수 있을 거야. 이제 자퇴하려는 학생들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자퇴 전문가가 되었어." 쓰러졌다가 일어난 것을 너무 부끄러워하지 고 기술 하나 터득했으므로 자신 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어머님, 누님들, 매형들과 여행을 떠나 집에 없었다. 마음 다잡았다는 딸이 일요일을 잘 보내고 월요일에 몸도 움직여 학교 잘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월요일 아침에 애 엄마에게 전화해 보니 딸이 일어나 학교에 갔다고 다. 마음속으로 자퇴 소동 종료를 선언하고 어머님과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부모나 딸을 격려해 주시고 딸과 대화로 과거 경험을 나누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렸다.


수년간 중얼거리니 좋아진 게 있다. 아침에 눈이 떠지고, 일하는 것이나 회사 가는 게 싫지 않다. 가정생활도 더 바라는 게 없다. 그냥 이대로 좋다.


오늘도 걸어간다. 중얼거리면서. ‘기대하지 않고, 현재의 나에 집중하며, 나도 남도 존중하고, 지금 여기에 감사합니다.’



<별첨 1: 딸에게 쓰는 편지>

요즘 딸이 힘든가 보다. 잠잠하던 자퇴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와 엄마는 자퇴에 동의할 수 없다. 딸이 힘들다고 아침에 울었다. 딸은 학교에 안 갔다. 그날따라 딸 마음처럼 바람이 차가워 롱패딩 걸치고 엄마와 우면산에 갔다. 아빠는 외근이 있어 언제나처럼 출근했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딸을 생각하며 지하철 플랫폼에 쭈그려 앉아 카톡 편지를 썼다. 산 정상에서 아빠의 편지를 보라고 엄마에게 전화했다.


[! 상상해 보자. 아빠가 자유를 찾겠다고 선언하고 회사에 안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너희들에게 미칠 영향을? 네가 힘들어해도 아빠는 성실히 일하러 가야 여러 일들이 꼬이지 않음을 알고 있어. 가슴으로 울어줄 수밖에 없구나!


어려운 난관에 부딪힐 때 아빠는 이렇게 생각해. 잘 되면 고맙고, 돼도 괜찮아. 결과는 나 이외의 남이나 환경의 영향을 받아 내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거든.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과를 완전히 수용하는 것뿐이야.


그렇다고 결과에 자기가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말은 아니야. 나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 ~~ 하면 ~~ 더 열심히 할 거야. 조건 다는 이런 류의 생각은 하지 않아. 펼쳐진 현재와 나에 집중하거든. 완전 몰입이지. 주변이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고 더 막 나가지 않아. 결과가 더 꼬일 걸 알고 있거든.


고민은 딸이 풀어야 할 일이야. 미래에 희망 가득하고 현재를 후회하는 사람은 행복하게 살기 힘들거든.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격려하고 밥하고 청소 열심히 해 환경 조성해 주는 일이야.


아빠는 낙담하지 않아. 상승  흐름에는 자만하고 건방진 마음이 들어 하락의 힘을 쌓거든. 반면 하락 흐름은 겸손하고 자기를 잘 들여다볼 기회를 주거든. 다시 상승할 휴식을 줘.


아빠는 기다릴 거야. 여러 생각으로 복잡할 때 그 감정을 바라보고 놔두어야 해. 생떼 부리는 애처럼 설득하거나 스스로 논리를 강화시키면 더 힘들어져. 몸이 감정을 일으킨데. 외로울 경우 사람 만나는 일과 운동이 도움이 되더라. 우울한 경우 내 감정 속으로 땅굴 파고 들어가면 안 풀리고 더 악화되더라고. 친구, 상담 선생, 부모, 전문가 등과 이야기하면 좋아. 운동, 걷기, 산행 등 몸을 움직이고 딴 곳에 집중해야 시간이 지나면 풀려.


! 더 잘 안 해도 이대로 아빠에게 소중한 존재야. 힘내라! 딸.]


사춘기가 이제 온 것 같다. 거센 바람이 부는 언덕에 서 있는 그런 느낌이 든다. 잔가지는 꺾일 수 있으나 줄기가 부러져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가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딸의 짐을 덜어주고 싶은데 내 몸과 마음이 아니어서 한계가 있다. 애 엄마가 친구들에게 사정 이야기했친구들이 시험기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고맙게도 초대에 응해줬다. 딸은 방에서 케이크 먹으며 친구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어떤 상황이든 아빠는 슬픈 마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기다리련다.


<별첨 2: 자퇴 소동에서 아빠가 배우다>

지금까지 인간관계 잘하는 방법이 존중과 이해, 경청, 부드럽고 약하며 따뜻하게 말하기, 놔두고 바라보기라고 글을 많이 썼는데 게 절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진행 중인 자퇴 소동을 다시 새긴다. 딸을 얼마나 존중하고 이해했는지. 솔로일 때 여자 친구 대하듯 딸을 대했는지 생각해 본다. 카톡 편지 주기 며칠 전 식사하고 있는데 딸이 아빠 뭐하는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식사한다고 했다. 같이 산책하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식사를 끝내고 산책하러 갔다.


아빠에게 자퇴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세 바퀴 돌면서 자퇴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사실 무조건 반대였다. 딸이 정시에 더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번 중간고사 시험에 집중했는데 자기가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았다. 딸은 실망했고 더 열심히 할 자신 없다고 했다. 자퇴하면 아침 일찍 일어나 스터디카페 가고 인터넷 강의 듣겠다고 했다.


아빠는 딸의 성적을 묻지 않았지만 엄마를 통해 듣고 있었고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딸이 자퇴를 절실하게 부르짖는 것, 1학년이면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정시에 집중하겠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딸에게 회피, 도피라고 말했다.  입장에서 현재 자퇴가 확신에 차 있을 수 있다. 틀릴 수 있고 지나치게 쓸데없는 걱정일 수 있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아빠 보기에 약간의 청소년기 우울증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일수록 침대에 누워있기보다  일상생활하고 움직여야 빨리 벗어날 수 있을 데라고 속으로 안타까워다. 또한 시험이 곧 오는데 시험 망치고 다시 제자리 찾는 게 더 어려울 수 있는 상황으로 갈 수 있다. 미래가 그려져 더 안쓰러웠다.


딸이 구정물 속 물고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이 더러워도 물고기는 그 물에서 적응해야 한다. 구정물이 싫어 물 밖으로 나오면 물고기는 죽는다. 자퇴하고 실력을 증명하려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같은 조건이면 검정고시보다 정상적으로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나온 사람을 뽑을 것 같다. 혼자 떨어져 나오면  더 외로울 수 있어 친구들 속에서 자기중심을 잡아야 외로움을 극복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학교 다니고 시험 보는 게 스트레스 쌓이지만 아빠 입장에서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설령 그 현실이 불합리적이더라도.


자퇴라는 단어에 대해 아빠의 거부감이 크다. 웬만해서 한 번 나선 길을 바꾸지 않는 스타일이다. 국민학교 때부터 회사 생활하는 때까지 아프더라도 학교 등에서 죽자는 생각인 것 같다. 아빠의 고집이고 집착일 수 있다. 그런 생활태도는 아빠에게 적용되는 아빠의 생각이고, 상황이 다른 딸에게는 다를 수 있다. 그 마음까지도 받아들인다.


내가 솔로 때 여자친구 생각하는 것처럼 딸 말을 경청하지 않았다. 법정대리인으로서 자퇴하는 것에 100% 반대한다고 말했다. 1%의 가능성도 인정해 주고 싶지 않았다. 어찌 보면 위협하는 말이다. 아마 여자친구였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친구를 아낀다면 그녀의 말을 존중하고 잘 들어주었을 것이다. 그 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세게 말하지 않고 잘 들었을 것 같다. 


아마 애들이 아빠를 신뢰하고 아빠에게 어려움을 쉽게 털어놓으려면 아빠가 자기를 인격체로 존중하고 약점을 말하더라도 아빠가 남들에게 까발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사람을 존중한다는 말은 비록 딸이지만 나와 동등하다는 생각을 깔아야 한다. 딸에게 그 정도 무게 존중으로 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말한 관계 잘하는 법을 실천하는데 출발점부터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지 못했다. 존중과 이해를 슬픈 마음으로 다시 배운다. 아빠는 태풍에 제자리 잘 지키고 견디겠다. 애들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수천 번 말을 경청하고 수백 번 부드럽약하게 말할 각오를 다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11. 태극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