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은 한 집에서 동거하다가 출가하여 독립하는 존재다. 미성년자로 동거할 땐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운다. 성년이 되어 독립하면 간섭하지 않는다.
애들을 언제 독립 주체로 인정할 것인가? 1살 먹을 때마다 의사결정권을 5%씩 인정해 20살이 되면 독립적으로 선택, 판단과 행동하게 한다. 대학, 학과, 회사, 배우자, 살 집 등은 애들이 결정하게 놔둔다. 부모는 그 기간 거꾸로 수양한다. 자기 배에서 낳고 키웠더라도 매년 5% 씩 애들 놔주고 그 후 기대지 않는 연습을 한다. 부모는 애들이 둥지를 떠날 때까지 도우미 역할을 하는 존재에 만족한다.
애들의 성장기에 부모와 부딪힌다. 아빠는 애에게 친구와 노래방을 가지마라고 했다. 애는 쌓인 스트레스를 노래방에서 풀려고 하는데 왜 못 가게 하는지 부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일로 아빠를 너무 미워할 필요는 없다. 어른이 다 맞는 것은 아니다. 엄마는 애들과 있을 때 니 아부지 이상하다고 애들의 말에 동감해 주면 꼬이기 시작한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데 이상한 아빠를 닮은 이상한 자녀라고 인정하는 꼴이다. 엄마는 조용히 아빠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음을 애에게 설명해 준다. 아빠가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아빠가 자란 환경, 겪은 일, 성격 등으로 인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아빠가 좋아 보이면 아빠와 자녀의 역할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애들은 싫다고 한다. 부모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밥, 청소, 빨래, 돈 벌기, 깨우기 등 자기보다 더 힘들 것 같다고 말한다. 서로를 이해하는데 좋은 방법이다.
시무룩한 딸
애가 부모에게 욕하거나 폭력 행사할 때는 조용히 있지 말고 문제의 심각성을 확대시킨다. 애가 그런 행동 처음 보일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가 중요하다. 언어폭력, 무력 행사는 해서는 안 되는 금지행동이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모욕죄, 존속 상해죄 등으로 형법상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큰 죄이다. 가족회의를 열어 어떤 사람이든 존중해야 하며, 먼저 폭력을 가하는 행위는 어떤 경우든 허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또한 자식에게 욕먹고 맞는 부모가 얼마나 슬픈지 느낀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부모 말 안 듣는 애들 때문에 너무 낙담할 필요 없다. 부모 말만 듣는 애들은 부모의 수준을 넘을 수 없다. 부모의 말이 꼭 정답이 아니고, 부모가 정답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부모도 자본주의 경쟁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교육을 받거나 수련한 적이 없을 수 있다. 부모가 받은 교육은 비교와 경쟁에 특화된 교육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쟁력 있는 상품이 되는 교육만 받았다. 이런 교육은 행복과 거리가 멀다. 남과 비교하여 내 것이 열등해 보이고 남과 경쟁하다가 나를 잊는다. 부모가 자랑스러운 자식으로 교육시키고 싶은 욕구가 오히려 자식을 망칠 수 있다.
애들이 대드는 다른 이유는 부모를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일 수 있다. 부모의 직업, 외모, 학벌, 부부 싸움에서 거친 말, 폭력 등으로 피해의식이 있을 수 있다. 나와 관계없는 사람 중에 나에게 밥도 돈도 주고 교육도 시켜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부모는 잔소리를 했든 안 했든 나에게 그것들을 주었다. 자녀는 그것만으로도 부모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또한 부모는 못나지 않았을 수 있다. 내 기준이 왜곡되어 잘못 판단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못났다고 생각하더라도 나와 결부시킬 필요 없다. 나는 나다. 그런 일은 내가 한 게 아니므로 내가 열등감을 가질 만한 이유가 못 된다.
부모는 애에게 부모와 자식관계는 대립하여 싸우는 관계가 아니라고 알려준다. 부모는 애들이 독립할 때까지 도우미 역할을 하는 존재다. 선택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몫은 애들이다. 이런 믿음이 있을 때 부모와 자식 간의 신뢰가 회복된다. 예를 들면 아침에 학교에 가야 하는데 애가 안 일어나면 부모는 깨운다. 창문 열고, 이불 개고 얼굴에 물 뿌린다. 너무 싫다고 하면 애의 바람대로 음악을 크게 틀어준다. 애가 싫어하는 과목 숙제가 있으면 부모는 조용히 옆에 앉아 퍼즐 맞추며 같이 있어 준다. 숙제 안 하면 학원 가기도 싫다. 부모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애들을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다. 제 때 약속을 지키는 습관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는 행동이다. 부모가 대신 일어나거나 공부해 줄 수 없기에 부모가 고등학교 3년 내내 짜증 내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은 환경 조성하고 옆에 있어 주는 일뿐이다.
애들이 불만이 많을 때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그럴 거면 왜 낳았어! 좋은 질문이다. 무슨 이유나 목적을 가지고 낳은 게 아니다. 네가 태어난 것 자체가 축복이고 감사할 일이다. 애들은 하늘이 부모에게 준 선물이기에 자기편이 아무도 없고 어떤 상황이더라도 애들은 부모에게 소중한 존재이다. 왜 낳았는지는 모르나 태어난 세상이 즐겁고 살 만하다고 말해준다. 부모가 진짜 살 만하다고 느껴야 말이 쉽게 나온다.
훌륭한 교육은 애들이 행복한 교육이다. 핸드폰 마음껏 하고, 놀러 가며, 맛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주고 숙제 안 해도 된다면 애들은 좋아한다. 그러나 부모가 해준 그것들은 애들에게 오래가지 않는 행복이다. 부모가 행복하게 사는 매일의 삶 그 자체가 애들 교육이다. 부모가 기대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고 존중하며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삶을 사는 경우 애들도 크게 이탈하지 않는다.
또한, 동거인인 배우자에게 하는 것처럼 애들에게 존중과 이해, 경청, 부드럽고 약하며 따뜻하게 말하기, 바라보고 기다리는 교육을 한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지만 사는데 필요한 가사, 생활습관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