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 태극기

by 누룽지조아

태극기는 있음과 없음을 아주 오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백, 태극과 괘로 이루어져 있다. 여백은 없음을, 태극은 있음을, 괘는 있음의 구성 요성와 변화를 의미한다. 태극은 반원의 음과 양을 이어 붙여 만들어지고 음양의 비중이 변함에 따라 4괘가 나타난다. 4 괘는 멈춤으로 볼 때 만물을 구성하는 4 원소를 의미하고, 움직임으로 볼 때 만물의 생성, 머묾, 변화와 소멸을 설명하고 있다.


흰 여백은 무(無)고, 밝음과 순수를 상징한다. 무(‘영’)는 음양이 아직 분화되지 않아 음양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이다.


무가 분화하여 음과 양이 드러난다. 음은 축소·저장·끌어당김을 의미하며 이기적이다(자리自利). 양은 확장·창조·발산을 의미하며 이타적이다(이타利他).


분화한 음양이 뭉쳐 원 모양의 태극을 만든다. 태극은 물질의 근원을 상징한다. 원자와 유사한 개념이다. 태극(‘하나’)은 음양이 혼재되어 균형 상태이므로 음양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나도 남도 좋은 자리이타, 서로 다른 것을 존중하고 공존하는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무(‘영’)와 태극(‘하나’)은 실체는 같고 이름만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태극은 중성이고 조화·균형을 상징한다. 태극은 음과 양의 에너지가 균형을 이루며 2개의 반원이 S자로 붙어 있다. 음양이 S자로 물리면 웬만해서는 풀리지 않는다.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의 완벽한 조화이다. 또한, 태극의 모양은 원이다. 원은 시작과 끝이 같고, 끝없는 순환을 의미한다. 원은 각이 지지 않아 남을 해하지 않고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뜻을 담고 있다.


그 후 태극이 겹겹이 뭉쳐 물질을 만들고 물질이 물체, 물체가 우주를 이룬다. 물질은 하늘(건乾, 공기), 불(이离), 땅(곤坤, 흙), 물(감坎)의 4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 하늘은 극히 공정함(至公), 불은 광명(光明), 땅은 풍요, 물은 지혜를 상징한다.


물질은 음양의 변화에 따라 생성, 머묾, 변화와 소멸 과정을 거친다. 4 괘는 건, 이, 곤, 감, 건으로 좌에서 우로 회전하며 순환한다. 형태가 있는 것은 소멸 과정을 거치고, 다시 에너지가 모여 태극을 이루며 4괘처럼 반복 순환한다.


계절도 4괘처럼 음과 양의 세기에 따라 변한다. 건(☰), 이(☲), 곤(☷), 감(☵)으로 변한다. 여름은 양이 왕성한 건(☰)이고, 가을은 양이 줄어들고 음이 시작하는 이(☲)다. 겨울은 음이 왕성한 곤(☷)이고, 봄은 음이 수그러들고 양이 시작하는 감(☵)이다.


태극기의 여백은 없음('무')이고 인식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을 ‘있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없음’이라 한다. 무를 인식의 대상으로 삼아 개념화하는 순간 ‘있는 것’이 된다. 그러면 무는 전혀 인식할 수 없는 존재인가? 그렇지는 않다. 무를 사고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무의 본질을 직접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이다.' 무는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뭐라고 직접적으로 개념 정의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은 아니다.’라는 부정문 형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무를 유의 기능을 통해 간접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이다.' 무가 유를 작동하게 하므로 유의 기능으로 무를 간접적으로 파악하는 방법이다. 존재는 비존재와 뗄 수 없는 관계다. 예를 들면 물의 흐름을 설명할 때 없음이 개입되어야 한다. 비어 있는 쪽으로 물이 움직인다. 없음이 있음의 움직임을 만든다. 유리병은 유리로 만든 병 모양과 빈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리병을 이해할 때 빈 공간도 고려한다. 병 안의 빈 공간이 담을 수 있는 기능을 가능하게 한다. 없음이 있어 있음의 작용이 가능하다.


없음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있음 속에 있는 없음이다. 다른 하나는 있음을 둘러싸고 있는 없음이다. 사물을 통찰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유형의 없음을 고려해야 한다. 없음은 감각기관으로 인식하지 못하여 파악하기 쉽지 않다.


인간도 없음을 개입시켜야 인간의 존재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없을 가능성이 있는 존재다. 죽음으로 인해 없어질 수 있다. 죽음이란 일정한 시점에 다가오는 사건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이 항상 붙어 다니고 삶과 죽음의 비중이 달라진다.


인간은 환경 속의 일부로 살고 있다. 환경은 인간을 둘러싼 없음의 한 유형이다. 환경과 분리된 개별적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환경까지도 나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환경 속에서 환경과 관계하는 인간만 존재한다. 하이데거는 이런 의미에서 인간을 세계 안에 존재하는 존재자로 표현했다. 인간은 환경 속에서 사는 수용자이자 환경을 변화시키는 자율적 주체이다. 관계를 인연 또는 천망(天綱, 하늘의 관계망)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환경 즉 세계와 그물망처럼 관계를 맺고 교섭하는 존재이다.


태극기는 있음과 없음의 우주 원리를 담고 있다. 여백에서 생기게 하는 에너지를 느끼며, 태극과 4괘에서 생성, 머묾, 변화, 소멸의 변화무쌍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