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히 가수 이창섭(비투비)과 댄서 가비가 나오는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가비는 자신이 요즘 안무를 만드는 일을 주로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직접 플레이어가 돼서 춤을 추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젊은 친구들 대비 나이가 너무 많아서 고민이라고 했다. 그러자 이창섭은 가비의 고민을 듣고 우리가 한 직업에 종사하며 나이가 듦으로써 우리는 퇴물이 아닌 베테랑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아주 센스 넘치는 대답을 해주었다. 또한 해는 노을 질 때 가장 아름다우며 베테랑이 된 것이 노을과 같다고 말했다.
그 영상을 보고 나니 많은 나 스스로 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늘 스스로를 어떤 점에서는 베테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어떤 점에서는 아직 미숙하다고 생각해 왔다. 동기들과는 다르게 꽤 많은 프로젝트를 혼자 돌아다니면서 수행해 온 덕분에, 어지간한 트러블이나 이슈에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을 강철멘탈을 갖춘 점, 어떤 기술적인 업무든 이제는 적당히 감으로 파악이 가능하고 금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점, 직접 기술을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고할 문서도 만들고 제안서도 작성하는 등 다양한 범위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베테랑이라고 생각해 왔고, 그럼에도 아직 기술적으로는 선배들에게 전화로 물어볼 때가 있으며, 업무 범위를 넘어가면 아는 너무 겉핥기식으로만 알거나 잘 알지를 못해서 똑똑한 고객을 만나면 밀릴 때가 있다는 점, 업무를 하면서 때로는 감정 조절이 잘 안 된다는 점에서 미숙하다고도 생각해 왔다.
그런데 저 영상을 계기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사실 베테랑이 아니라 퇴물이 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 업무 역량은 베테랑이라고 자처할 수 있을 만큼 괜찮은 편이긴 하다. 부서에서도 내 업무영역의 일들이 대부분 나를 거쳐갈 정도로 나름 인정을 받고는 있다. 하지만 점차 기술의 발전으로 이 업무의 영역이 축소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지금 수행 중인 프로젝트에서도 원래 업무 영역에 국한되어 일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업무를 수행하기를 기대받고 있다.
마치 나는 10년 동안 김치찌개를 만들어왔는데 이제 김치찌개는 마트에서 밀키트를 사 와서 만들면 되니까 너는 된장찌개, 부대찌개, 순두부찌개등 모든 찌개에 대해 잘 알고 만들 수 있어야 하고 그걸 바탕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요받는 셈이다. 심지어 저 된장찌개, 부대찌개, 순두부찌개도 곧 밀키트가 나올 예정이기에 점점 내가 설 자리가 줄어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다 보니 김치찌개를 직접 만들어야 하는 세상이었다면 나는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고객들이 나에게 김치찌개를 만들어달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밀키트를 사서 끓여 먹는 세상이 되었으니, 나는 퇴물이 된 셈이다.
결국에는 급변하는 세상에 잘 적응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해 왔던 지난날은, 사실 내가 속한 좁은 영역에서의 변화에만 잘 대응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큰 그림을 보고 큰 변화에 맞춰 나를 변화시켰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서 혼자 남겨지고 고립되어서 이제는 갈 곳을 잃은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지금이라도 그런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고는 있지만 아직은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조금은 서글프고, 때로는 많이 우울하기도 하다.
그래도 이제는 어떻게든 변화해야 할 때임은 맞으니 어떻게든 참고 견뎌볼 뿐.
당신은 퇴물인가요, 베테랑인가요?
전 퇴물입니다.
그래도 베테랑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