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가는 길

익선동 한옥길 / 국악로 / 노무현시민센터 / 창덕궁길

by 정순동

숙소인 인사동에서 탑골공원을 지나 5호선 종로3가역에서 걸음을 멈춘다. 익선동, 다다익선 한옥길 안내판이 서 있다.

다다익선 한옥길 안내판

갈매기살 고깃집이 이어지는 골목길을 들어가 본다. 일제 때의 한옥이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색적인 분위기이다. 일제강점기 개량된 한옥들이 오밀조밀 모인 좁은 길에 다시 현대적 감각으로 리모델링한 카페와 식당, 소품가게들이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손님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국악로 / 서울 우리소리박물관​

다시 '돈화문로'로 나온다. 돈화문로는 조선시대 임금이 행차하던 길이다. 임금과 민초가 만나는 소통의 장소였다.


한편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시대 '장악원'을 계승한 '이왕직 아악부'와 '조선성약 연구회관', 해방 후에는 국립국악고등학교의 전신인 '국악사양성소'가 있어 국악 예술인들이 활동하던 곳이다.


현재도 '서울 돈화문 국악당', '서울 우리소리박물관'. '우리소리 도서관' 등의 국악 전수소와 국악기 판매점이 모여 있는 거리다. 국악의 전통을 이어가는 '돈화문로'는 '국악로'라고 불리고 있다.

국악로

돈화문로는 창덕궁 돈화문 앞에서 율곡로를 만난다. 돈화문 교차로다. 서울시는 2019년 11월 21일, 이곳에 서울 우리소리박물관을 열었다. 한국 민요의 수집, 정리, 연구, 보존을 위하여 설립된 국내 첫 민요 전문 박물관이다. 종묘 쪽으로 돈화문로를 건너면 서울 돈화문국악당이 있어 국악 문화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 우리소리박물관

전국 904개 '민요의 고장'에서 담아낸 우리의 소리를 한옥의 정취를 느끼며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민중의 삶을 소리를 통해 사람 사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우리의 소리를 한옥의 정취를 느끼며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창 밖으로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이 보인다.

한쪽 벽면의 대형 스크린에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사계절이 가득 찬다. 자연에 어우러지는 우리의 소리를 최적의 음향 시스템을 통해 듣는다. 마치 소리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듯이.

우리의 소리를 최적의 음향 시스템을 통해 듣는다.

시민 민주주의의 힘을 키우는 노무현시민센터


창덕궁 서쪽 담장을 따라 난 창덕궁길을 걷는다. 현대 본사가 있는 현대원서공원이 그 유명한 북촌마을의 들머리다. 오른쪽은 창덕궁 돌담이고, 왼쪽은 갤러리, 공연장, 아트홀, 문화원, 카페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LG상남도서관을 지나고, 빌라와 게스트하우스들이 나타나는 즈음에 '노무현시민센터'가 있다.

노무현시민센터. 한국 정치의 기반을 만드는 곳, 시민 민주주의의 힘을 키우는 공간

조선시대 임금이 생활하던 공간, 쿠데타로 왕권을 거머쥔 태종이 건설한 왕궁의 탐방길에 앞서 인근에 있는 노무현시민센터를 방문한다. '사람사는 세상'의 기치를 걸고 집권에 성공한 노무현 대통령의 흔적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란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또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2022년 9월 23일 개관)이라 어떻게 꾸몄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노무현재단은 이곳을 '한국 정치의 기반을 만드는 곳, 시민 민주주의의 힘을 키우는 공간'으로 만들기를 희망한다.


입구에 들어서니 대형 미디어 캔버스가 손님을 맞이한다.

기부자의벽 시민의창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귀향한 뒤 2008년 4월 봉하마을 노사모자원봉사센터 개소식 때 직접 남긴 글귀입니다. 강물은 굽이굽이 흘러 결국은 바다로 향하고, 수많은 고비와 난관을 뚫고 흘러 마침내 거대한 바다를 이룬다는 뜻의 노 전 대통령 어록 중 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모토로 수많은 입자와 흐름을 강물, 바다와 같은 움직임과 그래픽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시민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미디어 캔버스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스튜디오 아텍
강물은 굽이굽이 흘러 결국은 바다로 향하고, 수많은 고비와 난관을 뚫고 흘러 마침내 거대한 바다를 이룬다.

지하 2층, 지상 3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공연장, 시민 스스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미디어 센터, 강의실, 서가, 시민단체가 사용하는 오피스, 도서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노무현의 길에서 노무현의 살아온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연보와 화보를 간단하게 전시해 놓았다. 초등학교 4학년 봄 소풍 때 찍은 사진만 오려내어 내가 아는 김종대 선생(동명이인)께 보낸다.

고 노무현 대통령(뒷줄 왼쪽 첫번째)의 대창초등학교 4학년 봄소풍

노무현의 서재를 거쳐 3층 카페 '커피사는세상'으로 올라간다. 창덕궁 숲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곳에서 쉬어간다. 대여섯 명의 교사들이 모여 체험학습 평가회를 하고 있다.


원서동 한옥마을​


리기태 전통연공방, 궁중음식연구원, ○○스튜디오, ○○사진관, ○○갤러리 등의 간판을 단 한옥들이 이어지는 창덕궁길을 따라 원서동 안쪽으로 들어간다. 원서동 한옥마을에는 솟을대문이 있는 큰집은 몇 채 남아있지 않고, 대부분 일제 말기와 5,60년대에 지은 개량 한옥이 밀집한 도시형 한옥 주거 단지다.

원서동 한옥마을은 대부분 일제 말기와 5,60년대에 지은 개량 한옥이 밀집한 도시형 한옥 주거 단지다.

창덕궁길은 중앙고등학교 앞으로 휘어지고 우리는 창덕궁 외삼문 쪽으로 곧장 간다. 창덕궁 담장을 만난다. 담장 아래로 물이 흘러나온다. 궁궐의 궁인들과 일반 백성들이 함께 이용하던 '원서동빨래터'다.

계단길을 몇 계단 올라서면 막다른 길이다. 대단한 규모의 한옥을 마주친다. 서울시 민속자료 제13호로 지정된 '원서동 백홍범 가옥'이다.

서울시 민속자료 제13호로 지정된 '원서동 백홍범 가옥'
이 집은 1910년대에 지어졌다. '원서동 백홍범 가옥'이란 이름은 문화재 지정 당시의 소유주의 이름을 따른 것이고, 한때 상궁이 살던 집터로 전해진다. 이 집은 원래 별채에 해당하는 곳이고, 안채 자리는 양옥이 들어서 있다. 이 집은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한옥과 1930년대 집장사가 지은 개량 한옥 사이의 과도기적 형태를 보이고 있다. / 현지 안내문 발췌


지금 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 이런 정도 규모의 집에 상궁이 살았다니 그 위세가 정말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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