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10.29 이태원 참사 시민 추모제

by 정순동


2022. 12. 16 경복궁 답사를 마치고 이태원역으로 간다. 저녁 6시, 이태원역 도로에서 시민추모제가 열린다.

지하철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부터 해밀톤호텔 옆 사고 현장 골목에 추모글이 빽빽하다. 사진, 사연을 적은 글, 인형, 소주, 커피, 음료수, 과자, 핫팩이 꽃다발과 함께 놓여 있다.


70대 노인은 추모글을 읽다가 젊은이를 붙들고, "그렇게 정의와 상식을 외치며 법치를 강조하는 대통령의 말은 공염불이다. 이 나라에 그런 게 있는가. 사고 현장에 와서 사진을 보고 추모글을 읽으니 더 가슴이 아프고 화가 치오른다. "라며 울분을 토한다.

해밀톤호텔 옆 이태원 참사 현장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붉은 목도리를 두르고,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라고 적힌 검은 마스크를 쓴 유가족들이 시민추모제 장소로 입장하면서 "우리가 왔다"고 외친다. 녹사평역 시민분향소에서 추모 집회를 마치고 행진하여 왔다


저녁 6시, 시민 추모제는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가 공동 주최하는 시민 추모제가 시작된다. 고 이지한 배우의 아버지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추모제의 시작을 알린다.


추운 날씨에도 우리 아이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참석해 주신 시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아들딸들이 더 좋은 세상에서, 더 좋은 부모의 아들딸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추모제를 시작하겠습니다”

4개 종단(개신교, 원불교, 천주교, 불교)의 종교의식과 추모사를 시작으로, 이태원 참사 당시 '위험 상황'을 최초로 경찰에 신고한 시각인 '6시 34분'에 맞춰 추모 묵념을 한다.


"애도는 기억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애도는 결코 잊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세월호 참사와 똑같은 이태원 참사, 이게 나라입니까. ​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수진이 아버지 김종기 님(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세월호 참사와 닮은꼴인 참사가 반복되는 현실에 분통을 터트린다.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도, '반갑습니다'라는 말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화가 납니다. 엄동설한 도로 한복판에서 49재를 해야 하는 게 무슨 경우입니까. 길을 가다가 국민 158명이 억울하게 죽어야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경우입니까. 세월호 참사 때와 지금 이태원 참사 때가 똑같습니다. 이게 나라입니까."


"평상시 좋은 일로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아픈 일이 있고 난 뒤에 만나 뵈니 너무 고통스럽고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8년 전 세월호 참사 때도, 10.29 이태원 참사 때도 국민의힘이 여당일 때입니다. 왜 권력을 잡을 때마다 아까운 생명이 죽어야만 합니까. 국민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권력 나누기에만 몰두하면서 정쟁을 일삼기 때문이 아닙니까. 책임 있는 여당으로서 참사를 당한 유가족과 부상당한 피해자 가족을 위로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다시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게 재발 방지 대책을 약속해도 모자랄 판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허가한 행사가 아니다', '유류품으로 마약 반응 검사를 한다'는 등의 망언을 서슴없이 합니다. 희생자에게 그 책임을 미루려 합니다. 이를 보면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유가족 여러분 마음껏 우십시오. 그러나 참지는 마십시오. 그 억울함과 분노로 끝까지 싸워 나가십시오. 여러분 뒤에는 똑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그리고 시민들이 든든하게 손을 맞잡고 함께 하고 있습니다. 힘내십시오."


‘강민지, 김단이, 김도은 ㆍ ㆍㆍㆍ’ 희생자의 이름과 영정사진이 전광판에 올라온다. 참석자들은 '민지야', '단이야'하며 함께 이름을 외친다.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말도 차례차례 올라온다. 유가족은 오열한다.


"내 손이 너를 죽였구나. 2번 찍은 손으로 너의 영정을 들다니"


피맺힌 절규다. 마침내 울음바다가 된다.

비엔나에 있는 오스트리아 교민 고 김인홍 씨의 어머니는 “한국 정부는 왜 (희생자) 가족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막습니까. 숨기는 것도 모자라 막기까지 하십니까. 고통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유가족의 연락처를 달라는 것이 무리한 요구일까요. 우리가 서로 대화하고 위로할 수 있도록 의사소통을 주선할 것을 요구합니다"라고 하며, 유가족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남긴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맙시다. 여러분 힘냅시다, 우리의 억울한 아이들을 위해서."

고 김용건 씨 숙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이들을 두 번 죽이지 마십시오. 저는 정치를 잘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단지 우리 젊은 청춘들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 씌워진 참혹한 오명을 벗겨주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들에게 남겨진 숙제이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나왔습니다.”


'영정과 위패가 놓인' 시민 분향소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용산구 녹사평역, 용산구청 합동분향소가 있던 이태원 광장에 '영정과 위패가 놓인' 시민분향소를 마련했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줄을 이었다.

시민분향소에는 영정 79위와 희생자 이름이 적힌 위패 17위가 있었다. 동의하지 않은 유족의 희생자는 영정이 놓일 자리에 꽃을 걸어 놓았다. 우리는 영정이 없는 희생자 앞에 헌화했다. 헌화대에는 국화와 함께 과자, 음료수와 편지도 보인다. 영정 옆에 놓여 있는 핫팩은 차가운 길바닥에서 서서 죽어간 젊은이들을 연상시켜 슬픔을 더 한다.


분향소 코앞에 요런 것도 있다.

‘이태원 참사 추모제 정치 선동꾼들 물러나라’, '이재명 구속', '윤석열 잘한다'라고 적힌 대형 펼침막을 단 봉고차다. 신자유연대란다. 스피커를 이용하여 분향소 설치를 노골적으로 비난한다.

시민들은 보수단체를 향한 불쾌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 사람들 봐라. 추모 반대 시위가 오히려 추모를 정치 이슈화하고 있다”,


“자신의 의사 표시가 아니라 상식에서 벗어난 패륜적 망동이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나."


단순한 불쾌감의 표시가 말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연두색 형광빛 옷을 입은 경찰은 양측의 중간에 서 있을 뿐이다.


이건 나라가 아니다.

정부의 사과와 진정한 반성,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함께하겠다는 말을 이 글을 통하여 유족들께 전한다. (2022.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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