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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Jun 15. 2024

다듬이질 소리와 새소리가 정겨운 해미읍성

서산 1

[대문 사진] 해미읍성 진남문(남문)


우리의 문화유산을 소중하게 여기고 탐방하는 것은 거기에 그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갔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어 의미가 있다. 시간이 멈춰버린 성벽의 크고 작은 돌들에서 조선시대 선조들의 손길을 더듬어 보고 아름다운 누각에서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 서산 해미읍성(사적 제116호)을 찾아간다.

잠양루(동문)

해미는 정해현과 여미현을 합친 지명이다. 읍성은 지방 관청과 마을을 둘러쌓은 성을 말한다. 조선초 해안에 왜구들이 자주 출몰하여 노략질을 하였다. 이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하려니 덕산에 있던 충청병영을 해안가인 이곳으로 옮겨 온다. 그 후 해미읍성은 일반적인 행정 기능을 하는 읍성이 아니라 조선 전기 충청병마절도사의 병영성으로 축성되어 230년간 충청지역의 군사권을 행사하는 성이었다.

동헌가는 길 우측에 당시 사용하던 병장기가 전시되어 있다.

성의 정문은 남쪽의 진남문이다. 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동헌과 동헌 뒤의 동산에 청허정, 산너머 북문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좌우로 서문과 동문이 있다. 가운데로 동헌가는 길 우측에 당시 사용하던 병장기가 전시되어 있다.

장터를 재현한 곳, 입구에 해미현감의 현상수배 방문이 붙어 있다.

좌측은 초가집 몇 채로 장터를 재현했다. 주막, 찻집, 연 판매소, 기념품 판매소 등을 운영하고 있다. 옛날 장터 입구에 해미현감의 현상수배 방문이 붙어 있다. 범인의 용모파기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카페, 탱자성 사랑방

해미읍성을 탱자성이라고도 한다. 성곽 둘레에 탱자나무를 심어 적의 접근을 막았던가 보다. 카페가 있다. 탱자성 사랑방이다. 교황이 탱자성 사랑방에서 마늘빵을 드신 모양이다. 교황 마켓팅을 하고 있다.

자성루(서문) 앞, 잔디밭에 연 날리는 사람이 보인다.

왼쪽의 넓은 잔디밭의 쉼터에는 연 날리는 사람이 보인다. 그 뒤가 서문인 자성루다. 서문 밖에는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했던 자리개돌이 남아 있다. 해미읍성은 천주교 박해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라,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찾았을 때 해미순교성지와 해미읍성을 방문하였다.

순교 기념비

조선 후기 서학을 통해 전파된 천주교는 기존의 유교 중심의 전통가치체계를 뒤흔드는 사교로 인식되어 박해를 받는다. 조선 후기 강화도에 침입한 프랑스 함대가 일으킨 병인양요와 남연군 묘 도굴 미수 사건으로 천주교 박해는 더욱 심해진다. 당시 내포지방의 군사권을 쥐고 있던 호서좌영은 이곳 해미읍성에 있었다. 내포지역 천주교 신자 1천여명이 이 읍성에서 처형된다.

천주교 신자들이 매달려 고문받던 회화나무. 충남도 지정 기념물 제172호

옥사 앞에 일명 호야나무라고 부리는 300여년된 회화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1866년 (고종3년) 병인박해 때 잡혀온 천주교 신자들이 이 나무에 매달려 고문받았다고 전해진다.

해미성 옥사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투옥했던 해미성 옥사. 1935년 발간된 '해미순교자약사'를 토대로 복원되었다.


옥사 뒤로 동헌과 객사, 내아 건물이 있다. 소나무길을 따라 뒷 동산을 오르면 청허정이 있다. '맑고 욕심없이 다스리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청허정에 일제는 신사를 세웠다 한다.

동헌

동헌으로 들어간다. 조선시대 관찰사나 수령이 정무를 보던 지방관서다. 일반 행정 업무와 함께 재판도 이곳에서 행해진다.

관사

동헌의 쪽문으로 나가면 관사로 연결된다. 관리와 가족들이 생활하던 관사다. 일제강점기 동헌은 면사무소로, 관사는 학교로 사용되었다.

읍성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지만 성안의 마을은 옥사 동쪽, 동문 가는 길에 초가집 몇 채가 세워져 있을 뿐이다. 1973년 원래 읍성 안에 있던 마을 건물은 모두 헐어 버리고 공원을 조성하였다한다. 지금 있는 이 민가는 조선시대 부농, 말단관리, 상인의 집을 관광용으로 재현해 놓았다.

다듬이질 소리가 초가집 울타리를 넘어 낭랑하게 울려 퍼진다. 집 앞의 감나무 위에 앉아 빨갛게 익은 감을 쪼는 새소리가 다듬이질 소리와 어우러져 정겹게 들린다.

다듬이질 소리와 새소리가 정겨운 해미읍성 민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친다. 지게도 짊어져 본다.

낙안읍성과 같이 실제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이 남아 있으면 이 곳에 옛 사람들의 삶이 배어 있을 터인데 세트장 같아 아쉬움이 있다.

성벽 위의 둘레길은 걷지 못한다. 해미읍성 주변을 조망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이 또한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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