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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Jul 18. 2024

가야 건국설화를 품은 은하사

김해 1

강원도 태백의 함백산에서 발원하여 가락의 동쪽을 휘감아 돌던 낙동강은 대동수문에서 본류와 서낙동강으로 나누어진다. 서낙동강이 다시 평강천과 갈라지는 즈음에 중국민항기 사고가 났던 돗대산이 솟아 있다. 산맥은 이곳에서 북서 방향으로 김해평야를 가로질러 가야 건국신화를 간직한 구지봉으로 연결된다. 주능선길을 따라 군데군데 기암절벽의 바위 봉우리가 있다. 금관가야 시조 수로왕과 허황옥 왕비의 신화가 전해지는 신비로운 산, 신어산이다.

신어산 중턱에 자리잡은 은하사 전경

광활한 김해평야의 한가운데 솟은 신어산 정상에 오르면 무척산, 토곡산, 금정산의 고당봉과 파리봉, 나지막한 구지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해 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낙동강을 따라 발달한 김해평야의 빼어난 경치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산 중턱의 소나무 숲과 대밭으로 둘러싸인 곳에 가야 설화가 서린 아담한 절이 있다. 가락국 초기에 김수로왕의 왕비인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오빠 장유화상이 창건한 두 절, 서림사와 동림사다. 두 절 모두 가락국의 번영을 위하여 창건되었다고 한다. 사찰의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다. 뿐만아니라 임진왜란 때 병화까지 입었다. 조선 중기 이전의 건물은 모두 소실되었고, 1600년대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두 사찰 중 서쪽 자락의 서림사가 지금의 은하사이고 전설 속의 창건연대가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네비게이션으로 은하사 주차장을 검색하면 신어산 산림욕장을 지나 200m쯤 떨어진 곳, 간이 주차장을 가르킨다. 오른쪽에는 동림사 일주문, 왼쪽은 은하사 표지석이 서 있다. 작은 쉼터로 공중화장실도 있다. 몇 차례 은하사를 방문했지만 기억에 없던 동림사를 오늘에야 의식한다.

역사의 상처를 안고 있는 소나무

아름드리 소나무로 울창한 솔밭길을 200여m 올라가면 은하사 밑의 작은 주차장이 나온다. 이곳의 소나무는 나무마다 밑동이 파이는 역사의 상처를 안고 있다. 일제 말기, 자원이 부족했던 일본군은 송탄유를 연료로 사용했다. 조선 사람을 강제로 동원하여 송진 수탈을 한 흔적이다. 한 세기가 가까이 지난 지금도 소나무껍질을 벗겨 송진을 채취한 V자 모양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자연스러운 맛을 살리려 다듬지 않은 너럭바위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진입로 돌계단

주차장에서 신어산 바위 봉우리를 쳐다보고 오른다. 진입로는 돌계단길이다. 자연스러운 맛을 살리려 다듬지 않은 너럭바위를 이용하였다. 시멘트 하나 쓰지 않고 태를 부리지 않은 돌계단 군데군데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산사의 고즈넉함을 느낀다. 무릎이 좋지 않은 사람을 위해 왼쪽으로 우회하는 경사가 완만한 길이 따로 있다.

거울못

돌계단길을 오르다보면 절 입구에 작은 연못이 있다. 거울못이다. 연못에는 작은 관세음보살상이 세워져 있다. 뒷편의  대나무숲에서 바람소리가 들린다. 경내로 들어가기 전 거울못에 비친 자신을 살펴보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쌍어(두마리의 물고기)가 새겨진 돌다리

거울못에는 돌다리가 놓여 있다. 연못의 다리를 건너는 것은 속세에서 석가가 교화하는 땅, 사바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제부터 경내임을 알리는 일주문인 셈이다. 돌다리에는 두마리의 물고기(쌍어)가 새겨져 있다.  한 쌍의 물고기 문양은 인도 남방불교의 전래를 확인하는 증거인 셈이다. 쌍어는 금관가야의 상징으로 김해 지방에서만 알려져 있는 독특한 불교 문양이다.


경내로 들어서는 높은 돌계단 위의 문에는 금강역사가 그려져 있다.

은하사 대웅전(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38호)

은하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된 조선 중기 이후의 건물이라 알려져 있다. 다포집 맞배지붕의 간결한 형태를 한 단층 목조 건물이다. 대웅전 내부의 벽화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2호로 지정되었으며, 수미단에 인도 아유타국과의 관련을 짐작하게 하는 두 마리의 물고기 문양이 있다.

고요하고 그윽한 정현당. 스님의 수행공간으로 은하사의 옛 명칭인 '서림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대웅전 오른편, 기와를 얹은 담장 안에 '고요하고 그윽한 집'이 있다. 은하사의 옛 명칭인 '서림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정현당이다. 은하사의 창건 초기의 이름인 '서림사(西林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요사채 뒤를 소나무가 둘러 싸고 있고, 험준한 바위산이 올려다보인다. 낙엽이 진 후에는 높은 소나무 너머로 신어산 바위 봉우리가 높은 소나무 너머로 그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겨울 은하사의 절경이다.

대웅전에서 범종루를 내려다보는 절마당(위 : 겨울, 아래 : 여름)

은하사는 사철 아름다운 절이다. 나무 잎이 나고 꽃이 피면 아담하지만 격조 높은 절집의 모습을 보여준다.

봄에는 신록의 아름다움이 풋내음과 함께 어우러지고, 수국이 여름을 연다. 염천의 뙤약볕 아래 핀 진분홍색 배롱나무 꽃 등 정원수는 요사채가 통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살짝 가린다. 가을에는 진입로의 단풍나무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는다.

낙엽이 떨어진 앙상한 나무가지 사이로 절집의 속살이 드러난다. 지금은 '전통문화 전시관' 등 각종 불사가 진행 중이라 어수선하다.

아기동자 모습의 작은 불상들이 너럭바위 위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은하사는 영화 '달마야 놀자'(2001, 박철민 감독,  박신양 정영진 김수로 출연)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새 잎이 돋아나는 봄날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며 명품 돌길을 조심스레 내려간다. (20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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