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구간 1
양포항(良浦港).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양포리에 있는 국가어항이다. 양포항에는 문어, 아귀, 방어, 가자미, 임연수어, 미역 등을 실은 어선이 드나든다.
양포리는 양포항 서편 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달이 뜨면 제일 먼저 달빛이 비치는 곳이라 하여 양월이라 한다. 양포항은 감포-구룡포 간의 도로와 양포 - 포항 간의 도로가 지나는 교통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 또 남, 북, 서의 세 방향에 높은 산이 둘러싸고 있고, 항내로 양포천이 흐르는 미항이다.
텅 빈 수협 위판장 앞을 지나간다.
비린내가 난다. 물청소를 하고 있다. 경매를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아나 보다. 경매를 마친 상인들은 주차장 앞의 용궁다방, 일송정다방, 초원다방에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선창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에게 다가간다. 가늘고 흰 그물을 가리키며 묻는다.
"수고하십니다. 이 그물로 무엇을 잡습니까?"
"아구(아귀) 잡는 그물입니다. 노란 통발은 문어 잡는 것이고요."
오늘 문어와 아귀가 많이 들어왔나 보죠하고 묻고 싶지만 참는다. 한국말이 어눌하다. 외국인 노동자인 것 같다.
주변에 일제강점기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장기읍성이 있다. 갈 길이 바빠서 둘러보지는 못하고, 공연장을 갖춘 양포항복합공원을 거쳐 동쪽 방파제에만 올랐다 간다. 해녀 포차에는 아침 겸 점심을 먹는 사람이 여러 팀 앉아 있다. 축양장이 이어진다.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듯, 물고기는 보이지 않는다.
창바우마을.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위가 많다. 앞바다는 평평한 암반이 넓게 펼쳐져 있다. 거랑돌, 진돌, 큰바들, 오금방, 말방. 병풍선돌 등 바위섬도 있고 우는바위, 옥샘바위와 같이 내륙에 자리 잡은 바위도 많다. 이들 바위는 마을의 자랑이자 성장 동력이다. 바위에 돌미역, 성게, 전복, 소라, 고동(보말)이 서식한다.
창바우마을은 어촌체험마을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운영한다. 후릿그물체험장, 통발체험장, 고동잡기체험장, 가두리낚시체험장, 맨손물고기잡기체험장 등 다양한 어촌체험거리가 마련되어 있다. 마을카페와 물놀이장, 오토캠핑장 등 다양한 휴양 시설과 성게 덮밥, 성게 국수 등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이색적인 먹거리도 갖추고 있다.
마을 입구, 병풍처럼 포구를 막고 서있는 커다란 바위 앞에 제단이 놓여있다. 풍어제를 올리는 곳인 듯하다.
장기 일출암. 신창간이해수욕장이 끝나는 곳에서 장기면을 가로질러 내려온 장기천은 바닷물을 만난다. 뭍에서 조금 떨어져 우뚝 솟은 바위가 예사롭지 않아 이리저리 카메라를 갖다 댄다.
장기 일출암이다. 옛날부터 바위틈에서 생수가 솟아난다고 해서 일명 '날물치' 또는 '생수암'이라고도 부르던 바위다. 육당 최남선은 "바위 틈새로 그림처럼 붙어 자라는 소나무와 그 사이로 떠오르는 아침 해의 조화가 실로 절경"이라며 '장기 일출'을 조선 10경 중의 하나로 꼽았다.
장기면의 옛 지명도 해돋이와 관련이 있는 지답현(只沓縣, 只沓 : 물이 끓어오르는 모양)이라고 불렀다. 날물치 해송과 해 돋는 바다가 어우러진 자태가 아름다워 이 바위를 '장기 일출암'이라고 부른다. 다리 너머 상류 쪽에는 물새가 놀고 있다.
따라 걷던 해안 길을 축양장이 막는다. 야트막한 산을 넘는다. 날씨도 더운데 산을 오르려니 살짝 짜증이 난다. 그 기분은 금방 해소된다. 황죽이 군락을 이룬 오솔길을 타고 골바람이 분다. 댓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상쾌하다. 골바람은 등짝에 배인 땀을 식힌다.
황죽 군락은 허리춤까지 자란 풀밭으로 바뀐다. 노란 꽃을 단 인동덩굴과 하얀 땅찔레가 길섶을 덮는다. 풀밭을 기는 뱀딸기가 붉은 열매로 허영심을 드러낸다. 홍자색 꽃을 층층이 단 부처꽃, 소박하고 청초한 개망초가 높이 솟아오른다.
소나무 숲을 오르내린다. 소나무 고사목이 많이 보인다. 고사목에 한입버섯이 무리 지어 부생하고 있다. 소나무 밑은 온통 해국이다. 가을에는 해국의 연한 자주색 꽃으로 산을 뒤덮겠다. 그 장관을 보려 가을에 다시 와야겠다.
산 아래로 영암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영암항 방파제 끝에 낚시꾼이 앉았다. 선창에는 "멍게, 홍합, 고동 판매합니다"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그 아랫마을 여인들이 막 풀은 홍합을 다듬고 있다.
대진마을. 해파랑길을 걸으며 처음 만난 농촌마을이다. 키 큰 옥수수가 울타리를 대신한 농로를 지나간다. 마늘을 수확하고 있다. 맞은편 고추밭은 수국이 울타리다. 물 댄 논에는 벼가 질서 정연하게 줄지어 자란다. 장기면의 특산품인 장기산딸기(복분자)가 빨갛게 익어간다. 고구마 모종은 아직 줄기를 길게 뻗지 않았다. 담쟁이덩굴이 담장과 지붕을 완전히 덮은 농가도 보인다.
큰길로 나와 대화천을 건넌다. 국도변의 산딸기 노점은 이 마을이 산딸기 산지임을 알린다. 모포마을 바닷가로 깊이 들어간다.
"모포분굔데요, 학생 세 명이 다녀요."
장기초등학교 모포분교장 앞에서 만난 마을 노인은 손가락으로 셋을 가리키며 허탈해한다.
황죽이 우거진 언덕을 오른다.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해병대 초소였던 곳이 있다. '군사시설 접근금지'라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지만 별 시설은 없다. 참호일 뿐이다. 참호 위에는 붉은토끼풀이 덮여있다. 최근에 제초작업 하여 상큼한 풀 내음이 난다. 다시 31번 국도를 만나 보도가 없는 아스팔트 길을 걷는다. 구포휴게소에서 신발 끈을 풀고 다리도 뻗으며 쉬었다 간다.
멀리 보이는 광정산 앞으로 상정천 흐른다. 길 옆 습지에 달뿌리풀이 자주색 꽃을 달고 바람에 하늘거린다.
국도와 헤어져 다시 구평마을 바닷가로 내려간다. 오래된 마을이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에 울긋불긋 색칠한 집들이 골목골목 이어진다.
시멘트 바닥의 틈새에 양귀비꽃이 피어있다. 끈질긴 생명력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마침내 꽃을 피운 양귀비에서 룰라 대통령의 등을 감싸 안고 활짝 웃는 소년공 출신 대통령의 얼굴을 본다. 그렇게 죽이려고 해도 살아남아 대통령이 된 그를 이곳 사람들은 왜 그토록 싫어할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떠오른다.
31번 국도변에 낚시용품점이 하나둘 보이더니 커다란 '장길리복합낚시공원' 입간판을 만난다. 해파랑길은 국도와 헤어져 바다로 돌출된 장길리 곶으로 들어간다. 장길리는 원래 포항의 낚시 명소로 알려진 어촌 마을이다. 여기에 장길리 복합 낚시 공원을 조성했다.
잔잔한 내해에 부유식 낚시터와 수상 펜션이 둥둥 떠 있다. 잔디공원, 물놀이장을 거쳐 데크를 따라 바다 위를 건넌다. 산책로는 전망카페가 있는 언덕으로 오른다. 장길리 곶의 동쪽 끝이다.
보릿돌 낚시터. 곶의 끝에서 바다 가운데 떠 있는 바위섬을 긴 해상 인도교가 연결한다. 낚시꾼은 다리를 건너 바위섬에 붙어 낚싯줄을 던진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철썩철썩 높은 파도가 갯바위를 때린다. 하얀 포말이 인다. 염기를 품은 작은 물 입자가 몸을 적신다. 얼굴이며 손이며 노출된 곳은 염분이 묻어 끈적끈적하다. 휴대폰 액정이 부였게 된다. 얼른 몇 컷 찍고 자리를 떠난다.
바위섬은 '보릿돌'이다. 큰 갯바위는 '안 보릿돌', 좀 더 먼바다 쪽에 떨어져 있는 작은 갯바위는 '바깥 보릿돌'이다. 이 바위섬 아래 바다에는 미역이 많이 난다. 옛날 장길리 사람들은 여기서 나는 미역 덕분에 힘든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정리, 병포리 작은 포구를 거쳐 구룡포항으로 들어간다.
구룡포 남방파제를 지나며 구룡포항 전경을 바라본다. 큰 항구다. 전경이 한 컷에 담기지 않는다. 통발공장, 냉동공장, 과메기 냉동창고, 과메기 가공공장이 연이어 나타난다.
후동천을 건넌다. 도로 건너편에 구룡포시장이 보인다. 해파랑문화쉼터 옆, 넓은 주차장에 콜택시가 대기하고 있다. 구룡포환승센터다. 구룡포 - 양포간을 운행하는 마을버스는 여기서 탄다.
아라광장. 어선 선수(船首)를 형상화한 조형물 위의 어부 동상은 입을 꽉 다물고 그물을 걷어올린다. 경상도 사람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을 한 이 어부는 아마 청어나 꽁치를 잡고 있을 것이다. 바로 옆에 '과메기 문화거리 아라광장'이란 빗돌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추정해 본다. 빗돌에 새겨진 과메기 이야기를 옮겨 적는다.
동해안의 한 선비가 겨울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려 가는데 민가는 보이지 않고 배는 고파왔다. 해안 마을을 지나다가 나뭇가지에 눈이 꿰인 채로 걸려있는 물고기를 보았다. 이를 걷어 찢어 먹었는데 너무나 맛이 좋았다. 과거를 보고 돌아온 그 선비는 겨울마다 청어나 꽁치를 그 방법대로 말려 먹었다.
<소천소지(笑天笑地)> _ 1918 , 최창선
'나뭇가지에 물고기의 눈을 꿰어'의 관목(貫目)이 관매기, 과메기로 변천한 것으로 보고 있다. 빗돌의 과메기 이야기는 이규경(1834~1845)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청어는 연기에 그을려 부패를 방지하는데 이를 연관목(煙貫目)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고 적고 있다.
'영일만의 토속식품 중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선정된 식품은 영일과 장기 두 곳에서 생산된 관목청어뿐(경상도읍지)'이었고, '매년 겨울이면 청어를 주진(지금의 영일만 하구)에서 맨 먼저 잡아 나라에 진헌한 후 모든 읍에서 고기잡이를 시작했다. (동국여지승람 영일현 편)'고 한다.
구룡포환승센터에서 마을버스 막차(18:00)를 타고 아침에 승용차를 주차해 놓은 양포항으로 돌아간다.